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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도시 대전 발전의 견인차였지만 어느덧 쇠락해 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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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두뇌집단이 모여 있는 과학도시, 국토의 균형 발전을 기대하며 지어진 정부청사가 위치한 도시, KTX 고속철도의 심장이 위치한 도시. 대전이다. 대전은 1905년 경부철도 개통 시 설치된 대전역을 모태로 만들어진 신도시다. 일제강점기의 신도시가 대부분 수탈을 위해 바닷가에 만들어졌는데, 대전이 내륙에서 대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서울과 부산 중간에 위치한 교통 중심이라는 지리적 요인이 컸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후에도 철도는 교통의 상징이었다. 1932년에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된 배경에도 철도가 있었다.
그런 철도가 지금은 대전에서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도청이 대전으로 옮겨오면서 대전역에서 구도청을 잇는 1.3㎞에 달하는 중앙로 주변이 도심으로 성장했다. 해방 후에는 대덕연구단지(1974)와 정부대전청사(1991), KTX 고속철도(2004)가 대전의 성장을 지원했고, 2009년에는 한국철도공사 본사도 대전으로 이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은 여느 도시처럼 성장 중심 정책으로 인한 원도심 퇴락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더 쾌적한 삶과 업무공간을 찾아 도시 중심이 신시가지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전의 성장을 촉발시켰던 도청이 80년 만에 홍성으로 떠났다. 다행히 고속철도가 도청의 공백을 열심히 메우고 있지만, 도심을 관통하는 철로는 오히려 원도심의 재생에 장애가 되고 있다.
도심 속 철로의 동쪽은 성장이 멈춘 지 오래다. 이곳에는 대전을 위해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온 철도관사와 각종 지원시설이 위치해 있다. 아무리 퇴락했다고 하지만 대전역전 광장과 비교하면 대전역 뒤는 도심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주차장 너머에는 야트막하게 가지런하지만 퇴락한 주택지가 있다. 소제동 철도관사다.
1927년 대전역 뒤에 위치했던 소제호가 매립되어 대동천으로 정비되면서 천변에 철도관사가 지어졌다. 1970년대 초 철도관사가 일반에 불하되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40여 채의 마을과 골목길 곳곳에서 관사촌이 지내온 세월과 대전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문제는 퇴락한 관사촌이 스스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전은 국내 어느 도시보다 철도의 역할이 중요했고, 지금도 철도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해가고 있는 도시다. 고속철도 이후 10년 만에 대전역사가 증축되고 있다. 개발 논리가 이곳을 덮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퇴락해버렸음에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소제동 철도관사의 모습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최근 국립철도박물관을 소제동에 유치하여 소제동의 도시 재생을 꾀하려는 노력이 있지만, 그곳의 가치는 박물관의 유치를 넘어 시민들의 관심과 지원 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진정성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소제동의 가치를 인식한 시민사회의 활발한 움직임에 대한 기대가 큰 이유다. 2015년 내셔널트러스트가 대전시민이 제안한 ‘소제동 철도관사’를 ‘꼭 지켜야 할 유산’으로 선정한 것도 같은 뜻이다.
안창모 경기대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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