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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용 “승부조작? 애정 어린 말 한마디로 막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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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와 비교하면 거액의 연봉을 받고, 언론의 관심과 팬들의 사랑이 쏟아져 모두 선망하는 프로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연루되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치열한 경쟁을 이기고 프로구단에 입단한 엘리트 스포츠맨들이 왜 얼마 안 되는 돈의 유혹에 넘어가 밝은 미래를 포기하게 된 걸까. 쉽게 이해하기 힘든 그들의 내면을 알고 싶고, 또 프로 스포츠가 왜 불법도박 범죄자들의 표적이 되는지 궁금해 스포츠 기자들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답을 해줄 체육인들을 추천받았다. 그 중 가장 적임자가 신치용(61) 대전삼성화재블루팡스 배구단장 겸 제일기획 스포츠구단 운영담당 부사장으로 좁혀졌다. 신 단장은 삼성화재 감독으로 20년 활동하며, 창단 첫해를 제외하고 19번 챔프전에 출전해 그 중 16번 우승을 이끈 배구 감독이다. 2012년 프로배구 승부조작 사건 당시 소속 선수가 배구를 그만둬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는데, 그는 이러한 위기를 잘 수습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승부조작 유혹이 많고 선수가 승부조작을 하기 비교적 쉬운 단체 구기 종목이 바로 배구와 야구라고 한다. 신 단장은 늘 선수들이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 온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_요즘 문제가 되는 야구와 신 단장이 몸담고 있는 배구가 특히 단체 구기 종목 중 승부조작 사건이 많은 종목이다. 언제 처음 승부조작에 대해 알게 됐나.
“야구는 투수가 승부 조작 유혹의 표적이 되지만 배구는 종목 특성상 모든 포지션이 불법 도박단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배구는 선수들이 서브를 돌아가면서 하는데 특정 서브의 성공과 실패를 놓고 도박을 한다. 2010년 중국 광저우(廣州)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 당시 4강전이었던 한ㆍ일전 첫 서브를 놓고 큰 도박이 있을 거란 첩보를 들었다. 승부조작이 배구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확인한 순간이었다. 일단 ‘알았다’고 대답한 후 차마 선수들에겐 알리지 않았다. 결과는 아깝게 졌지만, 다행히 승부조작은 없었다.”
_전도유망한 젊은 프로 선수들이 왜 자꾸 그런 유혹에 넘어갈까.
“또래 직장인들보다 더 많이 버는 것은 사실이지만 늘 함께 지내는 동료들과 비교하면 그게 많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중ㆍ고교 때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프로선수가 되면 자연스럽게 화려한 주변 문화에 먼저 눈을 뜨게 된다. 또 일반인은 상상하기 힘든 승부에 대한 부담감을 못 이기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특히 입대하면 돈이 부족해 군 복무 중인 프로선수들이 불법 도박단 유혹의 타깃이 되기 쉽다.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어떤 선수는 친하게 지내던 운동 선배가 용돈 하라며 100만원을 줘 고맙게 받았는데, 나중에 “지난번에 100만원 받았으니 승부조작에 협조 좀 하라”고 협박해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더라. 이렇게 연루된 선수 중엔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1순위에 뽑힌 유망주도 있었다. 선수들이 이렇게 쉽게 유혹에 넘어가는 건 우리 세대를 포함해 선배들의 책임도 크다. 프로배구가 시작되기 전엔 심판에게 돈을 주고 싶으면 화투를 같이 치며 일부러 돈을 잃는 일도 적지 않았다. 시합이 지방에서 있으면 밤에 할 일이 없으니 감독과 심판이 같이 모여 포커, 화투 치는 일이 많았다. 해외 나가도 마찬가지다. 전문 도박도 아니고 판돈도 크지 않지만 그런 문화를 보고 자란 선수들이 도박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기 어렵다.”
_선수들에게 용돈을 주면서 접근하는 이들은 불법도박단과 연결된 사람들 아닌가.
“2012년 승부조작 당시 알아보니, 심지어 특정 팀에는 선수 중에 불법도박업자와 내통하는 선수도 있었다. 업자는 조작에 가담한 선수 1인당 500만원씩 준다고 제안한다. 그러면 내통하는 선수가 다른 선수들 몇 명을 모아 시합 전에 작전을 짜서 승부를 조작한다. 시합이 끝나고 나오면 불법업자가 내통하는 선수에게 돈을 주고 그 선수가 돈을 동료들과 나눈다고 했다.”
_지도자로서 선수가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어떤 노력을 했나.
“선수생활을 할 때나 지도자 초기였던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배구계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화투 같은 도박에 관대했다. 합숙훈련을 하거나 원정경기를 할 때 훈련과 시합이 끝나면 선수들끼리 화투 포커 등을 많이 했다. 선수들 사이에선 ‘세터 돈은 따면 안 된다’는 말까지 있었다. 세터가 돈을 잃으면 다음 날 경기에서 자기한테 공을 안 주니까. 선수끼리도 하고 심지어 감독 코치도 하고 사무국 임직원들도 했다. 삼성 배구단 감독이 된 후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화투판을 뒤집어엎고, 앞으로 도박하다 걸리면 무조건 자른다고 호통을 쳤다. 실제로 도박을 한 선수를 배구단에서 내쫓은 적도 있다. 이렇게 강력하게 대처해 겨우 도박 관행을 없앨 수 있었다. 팀 문화를 제대로 조성하는 것이 감독의 가장 큰 책임이다. ”
_야구는 배구보다 선수단 규모도 크고 경기 수도 많은데.
“그래서 야구가 승부조작을 예방하는 관리가 제일 어려울 거로 생각한다. 특히 훈련도 분야별로 나눠 이뤄지기 때문에 감독이 일일이 선수들을 관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승부조작 유혹이 집중되는 특정 포지션이 있으니 특히 이 분야 선수들에 대해서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야구의 경우는 투수가 그 대상이고 배구는 리베로가 그런 포지션이다. 상대편 서브를 누가 넣든 리베로가 주로 서브를 받기 때문에 받는 척하다 실패할 수 있다. 스포츠는 감독이나 코치가 없어도 경기를 할 수 있지만, 선수가 없으면 할 수 없다. 그러니 지도자는 경기장 안팎에서 늘 선수들의 마음을 잘 챙기고 배려해야 한다. 선수의 심리를 파악하려면 평소 관심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은 물론 돈도 필요했겠지만, 그보다 외롭기 때문에 유혹에 넘어간다고 생각한다. 경기에서 졌을 때의 외로움은 선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이겨도 팀 내 몇 명 빼곤 외롭다. 이럴 때 따뜻한 말 한마디가 선수가 나쁜 길로 빠져드는 걸 막을 수 있다. 특히 부상당한 선수들이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데, 계속 관심을 기울이는 문화가 선수단 내에 조성돼야 한다.”
_도박의 기질이 보이는 선수가 있으면 어떻게 대응하나.
“시즌 중에는 선수들에게 인터넷도 금지한다. 기사나 댓글 보다가 마음에 병을 얻을 수도 있다. 자신에 대한 비난의 글을 보면 충격을 받고 기가 꺾인다. 그렇게 되면 감정변화가 커지고 기복이 심해진다. 선수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가장 큰 방법은 관심이다. 질책하더라도 선수가 자신을 위해 하는 쓴소리라고 느낄 수 있게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 목소리를 높이더라도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느끼면 선수는 더 힘을 내게 된다. 지도자로 변신하는 삼성 배구단 출신 스타 선수들이 찾아와 조언을 구할 때 늘 해주는 말이 있다. ‘잘난 척하지 마라, 선수들 눈높이에 맞춰라, 네 눈높이에 맞추면 절대 안 된다.’ 특히 비꼬는 말이나 비아냥거리는 말, 자존심 건드리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스타 플레이어가 왜 감독이 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을까. 그건 자기 눈으로 선수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의 조언이 위력을 발휘했는지, 2014, 15시즌에 삼성배구단 간판 스타 출신 김세진 안산OK저축은행 감독이 스승 신치용 감독을 꺾고 V-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_관심이 승부조작 예방뿐 아니라 수많은 우승의 비결이었던 것 같다.
“훈련을 지켜보면 어떤 선수의 어디가 안 좋은지 보인다. 그러면 불러서 쉬라고 말해주는데, 그 별것 아닌 말에 선수들은 대부분 감동한다. 선수들은 아파도 쉬겠다는 말을 잘 못 한다. 팀 패배의 원인이 됐을 때도 그렇다. 야구에서 투수가 홈런을 맞을 때 기분은 아무도 모를 거다. 그럴 때 누군가 유혹하면 넘어가기 쉽다. 유혹에 빠지는 선수들을 이해해달라는 말이 아니다. 그런 마음을 아니까 안타까운 거다. 승부조작에 연루된 선수만 비난할 게 아니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팀 리더인 감독은 확실한 자기 철학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행하고, 옳지 않다고 판단하면 어떤 압력에도 거부할 수 있는 팀 문화가 만들어진다.”
정영오 여론독자부장 young5@hankookilbo.com
정리=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신치용 대전
배구단장은
1971 ~ 1973 성지공고 선수
1974 ~ 1978 성균관대 선수
1979 ~ 1983 한국전력 선수
1983 ~ 1995 한국전력 코치
1991 ~ 1994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코치
1995 ~ 2015 삼성화재 블루팡스 감독
1999 국가대표팀 감독
2002 국가대표팀 감독
2008 국가대표팀 감독
2010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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