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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영 성균관 의례부장 “차례 과시욕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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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여드레 앞으로 다가왔다. ‘풍성한 한가위’의 정취에 흠뻑 취할 법한 시기지만, 우울한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추석을 앞두고 임금체불액이 사상 최고액을 향해 치솟았고, 예상 차례비용은 대형 마트 기준으로 33만9,659원, 전통시장 기준 27만221원으로 만만치 않다. 종일 맡을 기름 냄새에 피로와 다툼도 벌써 걱정이다. 꼭 홍동백서, 어동육서를 맞춰 상다리 휘어지는 차례상을 차려야 정성을 다하는 것일까.
박광영(43) 성균관 의례부장은 최근 서울 종로구 성균관 명륜당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과시욕으로 차리는 현 차례상은 전통과 무관하게 잘못 정착된 문화”라며 “차례(茶禮)라는 단어 자체가 간단하게 음식을 준비하라는 뜻을 내포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차례상 차리기에 대해 물었다.
-정부가 어동육서 등 차례규칙을 소개하며 율곡의 ‘격몽요결’을 근거로 삼는데.
“격몽요결에 나온 것은 기일에 지내는 제사 상차림이지 차례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라며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데,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다. 돌아가신 분께 지내는 제사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기제사다. 다른 하나는 세시풍속, 추석, 설날, 한식, 단오 등 명절에 지내는 것으로 바로 차례다. 예전부터 기제사는 돌아가신 분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가족이 모이다 보니 있는 정성 없는 정성을 다 하는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차례는 아니다. 명절 아침에 지내는 ‘차례(茶禮)’란 단어 자체가 ‘간단하게 음식을 준비하라’는 뜻을 지닌다.”
-정부가 근거 없는 지침을 발표하고 있나.
“기제사와 차례를 혼동하는 데서 잘못이 시작된 것 같다. 현재는 기제사를 등한시하고 차례를 보급하는 문화가 돼 있다.”
-제례 규칙은 언제 어떻게 시작돼 정착됐나.
“유교국가였던 조선시대에 ‘주자가례’가 들어와서 모든 제례가 활성화되고 정착됐다. 율곡 선생 때 사회적 약속으로 정착된 것이고 조선후기까지 이어졌다. 물론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이 묘사하는 것은 기제사 상이지 차례상이 아니다.”
-어동육서, 좌포우혜 등은 어디서 시작됐나.
“어느 정도 기본적인 형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서로의 기억을 더듬거나, 2차적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건 우리나라 기준이 아니다. 중국에서 보면 동쪽이 바다고 서쪽이 육지이니 생선을 동쪽에 육고기를 서쪽에 놓는다는 식의 일부 기록이 있다.”
-근거도 없는 규칙이 왜 점점 더 복잡하게 굳어졌을까. 과시욕이 문제인가.
“맞다. 1950~70년대 이런 문화가 잘못 정착됐다. 올바른 교육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저런 기억을 더듬어 종합하다 보니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제사만 해도, 조선 시대에도 일반 백성들은 자기 부모 제사만 지냈지, 2~4대 봉사는 벼슬 있는 집안만 했고 특히 4대 봉사는 아주 벼슬이 높은 집안에서만 하는 문화였다. 갑오경장이 일어나서 신분제가 철폐되고 반상의 구분이 없어지지 않았나. 그 이후 누구나 다 ‘4대 봉사 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 시기가 있었다. 2대 봉사를 하면 벼슬 없는 집안 취급 받는다는 거다. 이런 문화가 일제강점기 때 말살됐었다. 그런데 이후 광복이 되고 1960년대에 들어와 다시 ‘2대 봉사만 하면 우리 집안이 과거 상놈 취급 받는다’는 식의 인식이 퍼졌다.”
-차례상을 거창하게 차리는 것도 마찬가지 심리인가.
“차례는 특히 돌아가신 분 위주가 아니다. ‘예서’에서는 추석이나 명절에 “구할 수 있는 간단한 채소나 과일을 준비해서 올린다”고 얘기한다. 형편에 따라 지내라는 것이다. 복잡하게 현대에 와서 만든 차례상보다 훨씬 간단해야 한다. 사실 추석, 설날 때마다 이런 질문 나오는 게 불편하다. 명절이라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모이는 것이고 상도 간단해야 하는데, 4인 기준 차례상이 30만원에 달하는 일은 옳지 않다.”
-허례허식을 빼고 간소화한다면 어떻게 차릴 수 있을까.
“돌아가신 분께 술로 교접하는 거니 술은 갖추고 안주로 삼는다 생각하고 적, 떡, 과일 등을 한가지씩 갖추면 좋겠다. 별식으로 추석에는 송편, 설에는 떡국 등 그 시기의 대표적 음식을 올리는 것도 좋다.”
-빼도 되는 음식이 있다면.
“빼는 것보다 들어가야 할 것을 위주로 생각하는 게 낫다. 술을 중심으로 밥과 국, 적, 나물 등의 순서로 모인 가족이 먹을 수 있는 만큼 최소한만 준비하면 좋겠다. 꼭 가짓수나 양이 많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점은 제사는 돌아가신 분이 중심이더라도, 차례는 남은 가족들이 중심이다. 그런데도 차례상 때문에 며느리는 명절 내내 일만 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과거 음식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제사 음식은 남자가 하는 것’이라고 발언해 화제를 모았다.
“남녀는 평등하니 당연하다. 과거 궁에서는 대령숙수, 즉 남자가 음식을 했다. 지금도 종가에서는 남자들이 장본다. 음식도 같이 해야 한다. 조상을 모시는 데 남녀가 따로 있겠나. 아들 귀하면 며느리도 귀한 것은 당연하다. 한때 보면 어떤 집은 여자들이 제사에 얼씬도 못하게 했었다. 그것은 되레 우리가 유교를 오해한 건데, 유교는 절대로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다.”
-남녀가 같이 모시면 되나.
“맞다. 다만 유교는 아버지가 중심을 잡다 보니 가부장제라는 오해가 생기는 건데, 결코 여성을 천대하도록 가르치진 않는다.”
-요즘은 채식주의도 많은데, 이런 분을 모실 때는 어떻게 하나.
“앞서 설명했듯 차례는 남은 사람 중심, 제사는 돌아가신 분 중심이다. 차례는 돌아가신 분 생전에 좋아하던 음식 한 두 가지를 올린 뒤 준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올리면 된다. 가족들이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것,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올려도 된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의미도 고취시킬 수 있다. 못 먹는 음식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해 나누며 고인을 추억하는 게 자연스럽다.”
-즐거운 가족 모임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까.
“형식보다 정성이 중요하다.”
변해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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