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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어가 손해배상 청구 통보" 납품일 놓친 수출기업들 발동동

입력
2016.09.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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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주협의회, 정부에 대책 촉구

입항거부·억류 등 161건 피해 접수

대체물량 발송 추가 비용 부담 커

선박지원 등 정상화 방안 요구

부산 해운 항만업계 상경시위

"대량 실직 우려… 한진 살려라"

한진해운살리기 부산시민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7일 서울 중구 대한항공 빌딩 앞에서 한진해운 살리기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이날 아침 부산에서 상경했다. 배우한기자
한진해운살리기 부산시민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7일 서울 중구 대한항공 빌딩 앞에서 한진해운 살리기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이날 아침 부산에서 상경했다. 배우한기자

80만달러 어치의 선재(원통형 철강재)를 수출하기 위해 한진해운 컨테이너선과 계약을 한 D사는 최근 수출품을 실은 배가 미국에서 입항이 거부된 뒤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선재에 녹이 스는 등 변형이 생기기 때문에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손해를 고스란히 떠 안아야 한다. 당장 추가로 제품을 생산해 다시 보내는 것도 쉽지 않다. D사 관계자는 7일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가 유예기간을 주거나 관련 기업들에 미리 주의를 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달 30일 한진로마호가 싱가포르에서 가압류되면서 12만8,080달러어치의 금형 공구 수출길이 막힌 T사도 최근 바이어로부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20만달러를 추가로 들여 다른 경로로 제품을 긴급 제작하고 있지만 빨라도 4주 이상 걸릴 것으로 보여 바이어가 받아줄 지는 미지수다. T사 관계자는 “한번 등을 돌린 바이어를 다시 되돌리려면 수년 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회사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초콜릿을 들여와 국내에 공급하는 수입업체 N사도 고객사인 편의점과 이달 말 제품을 입고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3만5,000달러 어치의 초콜릿을 실은 한진해운 선박은 현재 상하이 앞 바다에서 기약 없이 대기 중이다.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피해가 커지고 있는 수출입 화물 업체들로 구성된 한국화주협의회가 7일 오후 4시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 모였다. 회의 시작과 동시에 입장한 10여개 화물 업체 관계자들의 표정은 결연했다. 생활용품 기업 한웰의 박정부 회장은 “무엇보다 중소 수출 기업들이 납기일 지연, 대체 물량 발송에 따른 추가 비용 발생, 바이어 클레임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무협에 설치된 수출화물 무역애로 신고센터에는 총 161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N사처럼 해외에서 선박이 입항을 거부당하거나(54건) 억류된(58건) 경우가 가장 많았다. 화물이 제때 입고되지 못하면 납기일이 늦어지고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협의회는 이날 ▦한진해운이 모든 선박과 화물 정보를 즉각 투명하게 공개할 것 ▦정부와 한진그룹은 무역업계를 위한 수출물류 정상화 방안을 조속히 수립할 것 ▦대체 선박 수를 충분하고도 신속하게 늘릴 것 등을 촉구했다.

이날 서울 중구 대한항공빌딩 앞에서도 “한진해운을 살려내라”는 부산 시민들의 절규가 쏟아졌다. 부산에서 상경한 부산항운노동조합, 한국선박관리산업협회 등 25개 단체로 구성된 ‘한진해운살리기 부산시민비상대책위’와 한진해운 협력업체 근로자 등 500여명은 실직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23년 간 한진해운 선박의 래싱(컨테이너나 선박을 고정시키는 작업)을 담당했던 이모(48)씨는 “한 달에 많게는 25일 가량 밤낮으로 일했지만 법정관리 이후에는 출근해도 일할 배가 없어 수 백 명이 놀고 있다”며 “한진해운 파산으로 물동량이 줄어들면 노임이 급락하고 결국 대량 실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4년간 한진해운 미주ㆍ유럽 노선 컨테이너선에서 항해사로 일했던 김모(28)씨는 “기관사와 항해사 등 1,000여명의 한진해운 선원들을 국내 중소 선사들이 흡수할 여력은 없어 보인다”며 “대체복무인 승선근무예비역으로 일하고 있는 선원들은 탈 배가 사라지면 군에 입대해야 하는 상황인데 정부가 이런 부분까지 고민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국내 수출입 산업 전반으로 퍼질 파장에 정부가 경각심을 가져 달라고 입을 모았다. 부산항운노동조합 소속으로 하역 업무를 담당하는 이모(45)씨는 “부산항 물동량에서 비중이 20%에 달하는 한진해운이 무너지면 과거 일본 고베항이 1995년 대지진으로 몰락한 것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씨는 “부산항이 마비된 틈을 타 중국의 닝보항과 칭다오항이 물동량을 흡수하기 위해 벌써부터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며 “여기에 머스크 등 해외 선사들이 한진해운 물동량을 집어 삼키면 결국 국내 수출입 업체들은 비싼 운임을 주고 화물을 실어 나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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