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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시집 기사 안 써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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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시집 기사 안 써줘요?”
지방에 출장 가 있는 동안 한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최근 시집을 낸 시인은 한국일보에서 자신의 시집 기사를 쓰지 않은 것에 서운함을 토로했다고 했다. 읽은 시집이다. 그러나 나는 시집에 대한 기사를 쓰지 않았을 뿐더러 토요일자 신문 맨 뒤에 시 한 편씩을 소개하는 ‘주말의 시’란에도 싣지 않았다.
시는 여러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부적응의 언어다. 세계에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한 시인들은 세계 밖의 언어로 말한다. 어떤 시인은 중언부언하고, 어떤 시인은 욕하고, 어떤 시인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단말마를 내지른다. 시를 읽는 일은 저 언어 아닌 언어들 사이에서 내 언어를 찾는 일이다. 벌어진 세계의 틈 사이에 내 자리도 있는가 보는 일이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말 일이지만, 자리 확인은 때때로 절박한 일이 된다.
앞서 말한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속시’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가 젊은 한때 통(通)했던 속(俗)의 야만성이 행간마다 선연하다. 여자가 해준 밥을 먹고, 여자의 몸을 품평하고, 여자가 던진 원망의 눈길을 변명 삼아 다른 여자에게로 이동하는 일이 낭만으로 여겨졌던 시절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그는 언뜻 세계와 불화하는 듯도 하다. 가진 자와 성공한 자들에 비해 처량하고 궁상맞은 자신의 신세를 노래한다.
그러나 ‘죄라고는 사랑한 죄 밖에 없는, 가난하고 불쌍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 낭만적인 나’의 서사 밑엔 늘 여자가 방석처럼 깔려 있다. 그는 세계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한탄하지만, 여성을 착취하는 세계의 메커니즘에서 내려올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 시절에 여자가 ‘밥 혹은 몸’이었듯, 그의 시에서도 여자는 ‘밥 혹은 몸’이다. 야만의 세계를 꼭 빼 닮은 야만의 시에 여자의 자리는 없다.
최근 페미니즘이 화두가 되면서 몇몇 문예지가 관련 글을 실었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읊고 한국 사회에서 왜 이게 화두가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은 많지만 문단 내 성차별에 대해선 침묵 일색이다. 이 와중에 ‘21세기 문학’에 실린 김현 시인의 글 ‘질문 있습니다’는 기록할 가치가 있다. 어린 시절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미스 김”이라 불렸다는 시인은 갖은 성희롱 끝에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당도한다. “왜 수치는 당하는 사람의 몫일까”.
군대 선임들로부터 “대리 여성” 취급을 당하고 엄마와 누나가 가정폭력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가운데 시인은 데뷔해 문단에 나오게 된다. 그가 거기서 본 것은 여자 시인들 이름을 열거하며 “따먹고 싶은 순으로” 점수를 매기는 남자 시인들, 동료 여자 시인에게 “걸레 같은 년”이라고 욕하며 스스로 ‘명예 남성’을 자처하는 여자 시인들이다. “아 저 개새끼가 말로만 듣던 그 개새끼구나. 술에 취하면 여자 시인들 아무한테나 걸레 같은 년이니, 남자들한테 몸 팔아서 시 쓰는 년이니 하는 바로 그 개새끼로구나. ‘술이 죄지, 술에서 깨면 사람은 착해’라는 말을 들으며 점점 개새끼가 된 그 개새끼구나.”
한때 세계 바깥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왜 세계의 폭력을 그대로 답습하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문학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라 할 때, 그 인간과 세계에 당연히 여자도 포함될 거란 기대가 누군가에겐 얼토당토 않은 일이었나 보다.
김현 시인은 우리 모두가 “잠재적 방관자”라며 다음과 같은 제언으로 글을 맺는다. “문단의 페미니스트 여러분! 문단에서 벌어진 여성혐오, 범죄 기록물을 ‘독립적으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에겐 필요한 언어”가 있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왜소해진 한국 문단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며 ‘광광’ 우는 자들의 목소리가 벌써 들려오는 듯 하다. 그러나 세계의 견고함을 찢는 문학의 불온함은 안온한 착취 메커니즘 위에선 결코 가동하지 않는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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