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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마다 시끌 대통령 재단… ‘미르’의 생명 연장 꿈 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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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 권력 개입 역사 반복
전두환 ‘일해재단’ 5공 축소판
MB ‘청계재단’ 재산 피난처로
민간 장학재단에 외압 의혹도
공익은 뒷전 분란의 불씨로
‘육영재단’ 수 조원대 자산 놓고
박 대통령, 동생과 갈등 빚고
최태민 부녀 재단 전횡 논란도
정권마다 ‘미르’(용의 순우리말)의 재단이 있었다. 전직 대통령 예우법에 따라, 퇴임 이후 국고로 만드는 기념재단들과는 차원이 다른 권력자 개인의 재단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실세 개입 의혹으로 도마에 오른 미르ㆍK스포츠재단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건 이런 역사의 반복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이나 영부인들은 장학사업 등을 내세워 공익재단을 만들었지만 대부분 말로는 권력 개입 또는 비리 의혹으로 얼룩졌다.
전두환의 일해재단… ‘상왕의 아방궁’
대표적인 게 전두환 정권의 일해재단이다. 이름부터 전 전 대통령의 호를 따 퇴임 이후의 아방궁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재벌들에게서 약 600억원을 설립 자금으로 받아내 5공 비리의 축소판으로 거론된다. 특히 일해재단은 건물 설계 과정에서부터 권력 연장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게 당시 정부 인사의 증언이다.
전두환 정권의 청와대에서 의전비서관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일해재단의 설계도상으로는 지금은 없어진 당시 청와대 본관과 흡사한 구조이면서도 규모는 더 컸다”며 “퇴임 이후의 ‘상왕 궁궐’을 계획한 걸로 짐작됐다”고 말했다. 일해재단은 당시 경기 성남시의 공군비행장 부근 20만평(66만1,157㎡) 부지에 골프장, 영빈관, 연구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결국 5공 비리 청문회의 단두대에 올랐고, 이후 순수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로 바뀌었다.
DJ 아태재단은 측근 비리로 구설수
김대중(DJ) 전 대통령 때는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아태재단)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태재단은 DJ가 1994년 정계를 떠나 있을 때 한반도 통일과 아시아 민주화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세운 학술ㆍ연구재단이다. 그러나 재단의 상임이사였던 DJ의 측근 이수동씨가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인 2002년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정치 공세에 휘말렸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이희호 여사가 명예총재였던 결식아동 돕기 단체 ‘사랑의 친구들’까지 싸잡아 “(김대중 정부) 4년간 아태재단은 후원금 213억원, 사랑의 친구들은 90억원을 모금했다”며 권력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DJ는 결국 2003년 2월 재단 건물과 자료를 연세대에 기증했다. 이후 재단은 ‘김대중 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 정치권 원로는 “아태재단은 일해재단 등과는 차원이 다른 싱크탱크였지만, 이름에서부터 아시아태평양의 정치 지도자가 되겠다는 DJ의 원대한 포부를 담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MB 청계재단은 ‘사재 피난처’ 논란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재단도 툭 하면 도마에 오른다. MB는 2007년 대선 과정에서 ‘BBK 의혹’이 터지자, 재산의 사회 환원을 ‘맞불’ 공약으로 내놨다. 이후 MB가 감정가 395억원 수준인 건물 3채(서울 양재동 영일빌딩, 서초동 영포ㆍ대명주빌딩)를 출연해 장학·복지사업을 하려 만든 게 청계재단이다. 그러나 청계재단이 MB의 은행 빚 30억원까지 떠안고 있다가 빌딩을 담보로 은행에서 50억원을 빌려 이 빚을 대신 갚고, 해마다 은행 이자를 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건물 임대수입을 장학사업이 아니라 은행 이자 갚는 데 쓴다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은 설립 허가 당시 이행조건을 이유로 채무 상환을 압박했다. 청계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재단은 영일빌딩을 약 145억원에 팔아 은행 채무를 갚았다. 이에 반해 청계재단의 장학사업 규모는 지난해의 경우 3억5,000만원(177명)에 그쳤다. 야당은 그래서 청계재단이 MB의 재산 피난처 아니냐고 의심한다. MB의 고려대 동기로 제2롯데월드 인허가 업무를 주도한 장경작 전 롯데호텔 총괄사장이 재단의 감사로 재직 중이라는 사실도 알려져 논란이 됐다. 하지만 장 전 사장은 최근 그만둔 것으로 확인됐다. 청계재단 관계자는 “지난 달 임기가 만료됐고 여러 논란 때문에 연임하지 않겠다고 밝혀 후임 감사를 찾는 중”이라고 밝혔다.
민간 장학재단 흡수 의혹까지
MB는 민간 장학재단을 ‘정부 재단’으로 흡수하려 한다는 의혹까지 받았다. 삼성이 ‘X파일 사건’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책임을 지고 이건희 회장의 사재 8,000억원을 내놔 2006년 독립 공익재단으로 설립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현 삼성꿈장학재단)이다. 초대 이사장을 지낸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은 올해 3월 출간한 저서 ‘나의 인연 이야기’에서 당시 이명박 정부가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신 전 총장은 2009년 8월 당시 교육부 김차동 인재실장이 찾아와 ‘이 재단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 사회 헌납이나 국가 헌납이나 같은 것’이라면서 재단의 임원 교체를 강요한 사실을 공개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으로 이 문제를 파고 들었던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황상 법인을 해산한 뒤 정부에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의심됐다”며 “취업 후 학자금 대출 등 정부 사업을 시행하는 데 민간 최대 장학재단이 도움이 되리라 기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 연장의 꿈 탓에 정권마다 사달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어린이 복지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박정희 정권의 육영재단도 아직까지 분란의 불씨가 되는 대표적 재단이다. 박 대통령과 동생 근령씨가 이사장직을 놓고 갈등을 빚은 것은 수조원대로 추정되는 재단의 자산 때문이란 의혹이 일기도 했다. 미르ㆍK스포츠재단 개입 논란을 빚고 있는 최순실씨는 1980년대에 박 대통령과 함께 육영재단을 운영했던 ‘멘토’ 고 최태민 목사의 딸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대다수의 대통령들이 퇴임 후에도 정치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고 나아가 미래권력까지 창출할 수단으로 재단을 활용해왔다”며 “권력 연장의 욕심이란 덫에 걸려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르재단은 정부까지 대담하게 개입한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역시 박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대비한 재단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윤여준 전 장관은 “권력과 돈이 엮이면 아무리 좋은 목적으로 재단을 만든다고 해도 사달이 생기게 마련”이라며 “자신은 이전 권력자들과는 다르니 괜찮다는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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