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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창업재단의 표류…미르재단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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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동원해 자산 4,000억원 재단 설립
대표적 사업인 보증 사업은 4년째 중단…보증 남발로 부실 급증 탓
직접 투자도 68억원 수준에 그쳐…결국 현 정부 성장사다리펀드 자금 대주는 역할로
은행권 “관치의 전형…정권 바뀌면 누가 챙기겠나”
청년 일자리 창출과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지원하겠다며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가 은행들을 동원해 설립한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제 역할을 방기한 채 표류하고 있다. 4,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은행으로부터 끌어 모았지만 투자처를 찾지 못한 출연자금의 절반은 은행계좌에서 잠자고 있고, 주요 업무였던 보증 사업은 3년 가까이 중단된 상태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사업에 밑돈을 대는 게 현재 이 재단의 가장 큰 역할일 정도다.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정권이 바뀐 이후 그 동력이 크게 식어버린 결과다. 금융권과 재계에서는 “미르나 K스포츠재단의 다음 정부 때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얘기들이 흘러 나온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설립이 추진된 것은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 2월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 해 1월3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창업에 나서는 젊은이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1인 창업 및 팀 창업을 지원하는 조치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힌 직후였다.
총대를 멘 금융위원회는 예비창업자에게 창업자금을 대출해주거나 20~30대 청년이 설립한 창업 3년 이내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청년창업지원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놓았고, 불과 3개월 뒤인 그 해 5월 재단이 출범했다. 5,000억원의 재원은 18개 국책ㆍ시중은행들이 3년 동안 갹출하기로 했다. 창업 기업에 대한 ‘통 큰 지원’을 약속했지만, 정권 차원의 은행 팔 비틀기라는 논란이 비등했다.
4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순차적으로 4,000억원의 출연금이 모였지만, 정작 운용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상태다. 현재 출연된 자금 중 절반인 2,000억원 가량은 은행 계좌에 묶여 있다. 은행들을 압박해 돈을 끌어 모았지만, 투자처를 적극 발굴하지 않은 결과다.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애초부터 자금 규모에만 집착한 나머지 수요 조사나 세심한 시장 파악이 이뤄지지 않은 결과”라고 말했다.
재단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보증 업무 중단이 대표적이다. 설립 당시 금융위와 재단은 보증재원 2,500억원을 통해 2배까지 대출 보증이 가능하다며 5,000억원 규모로 창업 보증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실제 보증이 이뤄진 금액은 850억원에 그쳤고, 2013년 10월 이후에는 아예 신규 보증을 중단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설립 초기 실적을 내기 위해 보증을 남발했다가 부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 올해 8월말 기준으로 대신 갚아준(대위변제) 금액이 140억원 안팎에 달하며, 향후 부실에 대비해 쌓아놓은 충당금만 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이 창업기업을 직접 발굴해 투자한 자금은 4년여간 고작 68억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 특히 작년 이후 이뤄진 신규 직접투자는 6억원에 불과할 정도다.
대신 재단은 현 정부의 대표적인 창업 지원 정책인 ‘성장사다리펀드’에 대한 간접투자에 치중하고 있다. 성장사다리펀드는 박근혜 정부가 ‘창업→성장→회수’의 자금흐름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벤처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취지로 지난 2013년 8월 만든 정책 펀드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이 참여해 총 1조8,500억원을 조성하기로 한 이 펀드에 재단은 3,500억원의 출자를 하겠다는 약정을 체결했다. 그 해 44억원을 시작으로 2014년 215억원, 2015년 615억원, 올해(8월말 현재) 450억원 등 총 1,320억원 가량을 넣은 상태다. 재단 업무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말에 설립된 재단이 현 정부에서 동력을 잃은 상태에서 비슷한 취지의 정책이 등장한 것“이라며 “이후 자금 운용 대부분을 성장사다리펀드와 맞추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MB 정부에서 만들어진 재단이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적극 떠받치는 자금줄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렇다 보니 재단의 현재 상황이 현 정부가 기업들을 압박해 설립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나 K스포츠재단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는 지적들이 쏟아진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정권마다 기업들을 옥죄어 새로운 재단을 만들고 정권이 바뀌면 용두사미가 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미르나 K스포츠재단 같은 곳의 업무를 누가 챙기겠느냐”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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