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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반성문…“조직문화 몽땅 다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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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노트7 사태 이후 자성 목소리
과도한 내부 경쟁으로 힘 허비
계열사 간 힘겨루기 양상까지
수직적 문화도 시대 안맞아
쌍방향 소통으로 창의성 도출해야
“기술 안되는데 두께만 줄여”
사내 게시판에 역량 부족 지적도
“매년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맞춰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이 들고 나가 소개해왔던 제품 중 기능 검증이 끝난 제품은 거의 없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한 직원은 13일 갤럭시노트7 사태와 관련, “제대로 익지도 않은 감을 따 포장만 그럴 듯하게 해 내 놓으니 사고가 나는 건 당연한 게 아니냐”며 이렇게 말했다. 삼성전자는 매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에서 갤럭시S 시리즈, 9월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가전박람회(IFA)를 전후해 갤럭시노트 시리즈 신제품을 출시해 왔다. 그러나 일정에 쫓기다 보니 제품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공개한 경우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직원은 “제품이 먼저지 시기가 먼저냐”며 “막무가내식 지시와 상명하복식 조직 문화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갤럭시노트7 사태는 언제든 재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삼성전자 직원도 이날 “이번 단종 사태는 애플 아이폰보다 무조건 먼저 내놓으려고 제대로 문제 해결도 안 된 제품으로 무리하게 전량 회수ㆍ교체(리콜)하다 사달이 난 것”이라며 “솔직히 지금 이 시간까지도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제대로 파악도 안 된 상태”라고 토로했다.
갤럭시노트7 단종 결정 이후 삼성전자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가장 뜨거운 논란은 소통 부족과 조직 문화에 대한 문제다. 시대에 맞지 않는 ‘상하간ㆍ부서간 소통의 단절’이 삼성의 암이 되고 있는 조직 문화를 몽땅 다 바꿔야 한다는 게 반성론의 골자다. 물론 과거 선두 기업을 모방하면서 성장할 때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수직적인 문화가 경쟁력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삼성에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도출될 수 있는 쌍방향 소통과 자율성이 중시되는 유연한 조직 문화가 더 중요하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갤럭시노트7 사태는 밑에서 ‘노(No)’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부서간 소통 단절도 심각한 상태다. 이날 삼성 내부게시판에는 “개발, 마케팅, 기획, 검증, 디자인 등이 뿔뿔이 흩어져서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소모적이면서 불필요한 경쟁을 조장하는 문화도 비판 받고 있다. 애플과의 경쟁에서 나타난 조급증과는 별개로 과도한 내부 경쟁이 구성원의 힘과 조직의 역량을 허비하게 한다는 불만이 적잖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한 직원은 “한 팀에서 새 기능을 개발하면 다른 팀에서 무조건 더 좋은 기능을 내놔야 한다”며 “지금 스마트폰에 들어가 있는 기능 중에 한 번도 쓰지 않는 기능도 태반인데 이런 보여주기식 기능을 개발하려고 과열 경쟁을 쓸데 없이 한 셈”이라고 말했다.
9월 2일 전량 회수ㆍ교체(리콜)을 결정하는 과정에선 계열사간 힘겨루기 양상도 드러났다. 한 교수는 “삼성전자 정보기술ㆍ모바일(IM)사업부가 기득권을 잡은 상태에서 1차 사고 시 삼성SDI 배터리로 원인을 너무 쉽게 결론 낸 것은 파워게임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노키아가 2008년 애플의 운영 체제에 대항할만한 ‘마에보’나 ‘미고’를 갖고 있었는데도 내부 힘 겨루기에서 밀려 ‘심비안’을 고집하다 결국 몰락한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고의 원인을 아직도 확인하지 못한 것은 ‘기술의 삼성’에겐 아픈 대목이다. 8월19일 갤럭시노트7 출시 직후부터 발화 사고가 속출하면서 삼성은 수백명의 직원에게 문제점을 찾을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누구도 발화 사고를 재연하지 못한 상태다. 사내 게시판에는 ‘전자 소재에 대한 이해도와 관리 역량 부족이라는 약점이 드러났다’‘기술은 준비가 안 됐는데 두께만 줄이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최고가 아닌 분야에 대해선 자만심을 버리자’ 등의 반성이 이어졌다. 이창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불량 원인을 밝히는 게 좀 더 어렵다”며 “사람이 사망한 경우 무엇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건강을 악화시켰는지 역추적하는 것과 같은데, 경로가 매우 다양하다”고 말했다. 홍채인식, 방수방진, S펜 강화 등 첨단 기능을 갖추면서도 얇고 가볍게 만든 갤럭시노트7에는 사고를 유발한 매우 복잡한 변수가 존재하는데도 삼성이 원인을 배터리 문제로 몰고 간 것은 성급했다는 게 삼성 안팎의 비판이다.
전문가들은 경직된 조직 문화를 바꾸고 리더십을 강화하는 게 변화의 시작이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경묵 교수는 “경영진이 제품의 사양과 성능을 정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방식은 혁신 선두 기업 삼성에 걸맞지 않는다”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더십 강화를 요구하는 의견도 나왔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삼성이 도약하려면 의사 결정자가 책임지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등기이사가 되는 27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직접 ‘이런 문제가 있으니 어떻게 해결하겠다’고 밝혀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하부 조직이나 실무진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을 때 의사 소통이 원활해져 누구나 자신의 의견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내놓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밖에 “삼성이 비대해지고 공룡화ㆍ관료화하면서 혁신 능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데 계열사들을 분할해서 조직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이기주의 형식주의 권위주의 등 고질적 병폐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삼성 사내 게시판엔 그러나 새로운 각오와 응원 글이 훨씬 더 많았다. “단기적 손실과 비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로 삼자”“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법인 만큼 한번 실패했다고 좌절해선 안 된다”“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똘똘 뭉쳐 위기를 극복하고 삼성이 왜 초일류 기업인지 다시 보여주자”등 서로 격려하는 댓글도 눈길을 끌었다. 삼성 관계자는 “자성의 계기가 돼야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힘 내서 다시 잘해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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