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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지금 왜 ‘개헌’ 꺼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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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을 공식화했다. 전격적이다. 한국 헌정사는 독재자의 집권연장을 위한 헌법 파괴로 점철된 굴절과 질곡의 역사였다. 1987년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립한 9차 개헌, 1960년 내각제 개헌안을 의결했던 3차 개헌과 4ㆍ19 혁명 결과 3ㆍ15 부정선거 관련자 처벌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부칙을 개정했던 4차 개헌만이 예외다.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삼선개헌, 유신 등이 왜곡된 헌정사를 대변한다.
개헌은 한국 정치사의 고비마다 등장했다. 1990년 당시 집권당이던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3당 합당에 합의했으나 민주자유당 합당 이후에 휴짓조각이 되었다. 1997년에도 내각제 개헌을 조건으로 이른바 DJP(김대중과 김종필의 조합) 연합이 이루어졌으나 이 역시 DJ의 집권 후 없던 일이 되었다. 2007년 참여정부 임기 마지막 해 1월에 노 전 대통령은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으나 지지율이 낮은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동력을 받지 못했다. 이렇듯 개헌은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지금의 권력구조는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뿐 아니라 사사건건 대립하면서도 공생하는 ‘여야 적대적 공존’의 기형적 정당체계를 유지해주는 문제도 안고 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은 구조적으로 측근 비리를 잉태한다. 대통령이 법률안 제출권과 거부권을 모두 가지고 있어 순수 대통령제가 원리로 삼고 있는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여당이 청와대에 종속된 구조도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대통령제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다. 국회의원과 국무위원 겸직 가능 또한 대통령제에서 가당치 않은 제도다. 유명무실한 국무총리도 대통령제의 취지와 어긋난다.
따라서 개헌의 당위성은 차고 넘친다.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확립한 19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해 새로운 권력구조와 기본권 조항, 경제 관련 조항들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공감도 형성되어 있다. 문제는 개헌의 방향이다. 그런데 대선을 1년 2개월 앞둔 기간 여야가 합의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권력구조를 도출할 수 있을지 지극히 회의적이다. 여야 대선 주자들이 개헌을 고리로 하는 연대를 놓고 계산법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개헌을 제기한 시기도 묘하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개헌이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라며 경제 살리기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경제 상황이 나아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입장이 바뀐 것은, 최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최순실 씨, 미르ㆍK스포츠 재단 의혹 등으로 정권이 수세에 몰리고 지지율 하락 국면을 겪으면서 국면 전환이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대통령의 말대로 개헌 제안이 모든 이슈를 삼켜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성취는 온 국민의 열망이었고, 보수와 진보, 여야를 초월한 시대적 당위 그 자체였다. 6ㆍ29선언 이후, 12월의 13대 대선까지의 불과 6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 개헌과 선거는 그래서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여야와 대선주자 등은 각자의 셈법에 따라 충돌하고 이합집산할 것이다. 국민과 정치권의 일치된 개헌 방향이 부재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개헌 정국을 주도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대통령의 전격적인 개헌 제안이 국면을 전환하고 국정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승부수로 읽힐 수 있는 이유이다.
그래도 대선 전 개헌을 한다면 권력분립 원칙이 붕괴되고 선거민주주의와 권위주의 통치가 결합한 현재의 위임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의 폐해를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 선거가 최고권력자에게 권력을 집중시켜주는 절차 정도로만 간주되고, 민주주의가 권위주의 통치를 정당화시켜주는 기제로 작동하는 현재의 정치적 퇴행을 원천적으로 막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최창렬 용인대 중앙도서관장ㆍ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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