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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성추문 문학과지성사도 책임 있다”

입력
2016.11.04 12:20

지난달부터 잇따라 성추문이 제기된 시인 상당수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시집을 낸 것이 이 출판사의 ‘문학권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송승언(30) 시인은 3일 밤 온라인 메모장 에버노트에 공개한 ‘문학과지성사에 고합니다’는 글에서 “가해 지목자 다수가 문지에서 시집을 낸 시인들이라는 점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최근 폭로된 성추문이 문지의 문학권력을 등에 업고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이 시창작 강의, 과외를 운영하는 데 있어 ‘문지에서 시집을 낸 시인’이라는 점이 간과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리커처를 자랑스러워 하며, 그 캐리커처를 이용해 직접 SNS상에서 시봇(詩-bot) 등을 운영하는 나르시시즘을 보였다는 점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 시인은 또 이들이 “사석이나 습작생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다른 문지 시인들과의 친분을 대단한 것인 양 과시하기도 했으며, ‘자신을 거치지 않으면 문단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식의 발화를 가해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면서 “문지가 주로 출신 문인들을 앞세워 강좌를 운영했던 ‘문지문화원 사이’ 또한 권위에 기댄 성폭력의 현장이 되었음은 덧붙일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지의 원고 심사도 문제 삼았다. 출간을 결정하는 방식이 불투명한 탓에 결과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작가들의 죄를 눈감게 된다는 것이다. 송 시인은 “문지에는 심사를 거치지 않고, 문지 동인 개인의 권한으로 무조건 출간시킬 수 있는 책이 연간 ○종 정해져 있다고 들었다. 이런 권한을 통해 다른 동인들의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온 책들도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작품 지향이라는 껍질을 통해 작품의 수준 낮음과 작가의 윤리적 결함을 은폐시키는 행위”라고 했다.

송 시인은 “문지가 의사 결정이 느린 집단임을 감안해도 사안의 심각함에 비해서 문지가 직접 사고를 통해 밝힌 ‘사회적 정의와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입장과 조치’가 너무 늦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며 “그 의구심은 문지가 이대로 아무런 합당한 결과도 내지 않고 없었던 일처럼 침묵하거나 변명하는 데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학과 사회’라는 이름을 단 계간지를 전면에 내세운 문지가 사회 윤리에 이토록 무감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송 시인은 이어 이번 사태에 일정한 책임을 지고 반성한다는 의미로 죄질이 나쁜 시인을 제명하고 이들이 시집을 낸 문지 시인선 400번대에 “구멍”을 남겨 “반성과 치욕의 사례”로 삼자고 제안했다. 그는 인맥 출판의 통로로 작용하는 출판경영 내규가 있다면 재정비하고, 문지문화원 강의 계약서와 출판 표준계약서에 성폭력 관련 조항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편집 동인들의 권위와 위계를 드러내는 ‘의전 행위’를 금지할 것도 요구했다.

2011년 등단한 송 시인 역시 지난해 문지에서 시집 ‘철과 오크’를 냈다. 송 시인은 문지가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일개 시인으로서 문지라는 권력에 기대지 않는 것으로 개인적인 작은 행동을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문지 관계자는 “박진성ㆍ배용제 시인의 시집을 출고 정지했고 추가 조치를 계속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송승언 시인. 문장 웹진 사진
송승언 시인. 문장 웹진 사진

송승언 시인 ‘문학과지성사에 고합니다’글 전문

https://www.evernote.com/shard/s163/sh/86c68861-d815-4e9b-a030-e61d8074d454/04d9889d9882a6dbe14afc76be7438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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