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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좌충우돌… 맨부커상, 성폭력 일파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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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문화계 결산<2> 문학
채식주의자, 밥 딜런, 문단 내 성폭력. 2016년 문학계를 달군 단어들이다. 5월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한국인 최초로 영국의 권위 있는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상을 받았다. 10월엔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미국 가수 밥 딜런을 선정해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같은 달 트위터에서는 문인들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글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 2016 문화계 결산<1> 미술 )
맨부커상 수상, 한국문학의 재발견
교보문고, 인터파크, 알라딘 등 주요 온ㆍ오프라인 서점이 집계한 올해 최다 판매 도서는 한강의 소설집 ‘채식주의자’(창비)다. 5월 16일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 선정된 이 책은 2007년 당시 판매량이 6만부 정도였다가 수상 직후 1분에 9.6권(알라딘 집계)씩 팔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창비 출판사에 따르면 12월 중순 현재 ‘채식주의자’ 누적 판매부수는 66만부다.
맨부커상이 일으킨 바람은 다른 한국 문학 도서 판매로 이어지며 국내 문학계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채식주의자’와 묶여 영미권 언론의 주목을 받은 한강의 장편 ‘소년이 온다’는 작가의 수상 후 판매량이 두 배(기존 6만부에서 현재 11만5,000부) 가량 뛰었고, 5월 출간된 정유정 소설 ‘종의 기원’, 7월 나온 조정래 소설 ‘풀꽃도 꽃이다’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채식주의자’ 수상은 한국 문학의 세계 진출에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계기로 이어졌다. 한강 작가와 함께 맨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영국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는 한국어를 배운지 7년 밖에 안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강 특유의 시적인 문체와 컬트적 감성을 자신의 문체로 소화해 ‘또 다른 채식주의자’를 써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문학번역원 등에서 진행해온 공역(한국인 번역가와 외국인이 공동으로 번역) 대신, 작가의 감성과 필력을 가진 외국인이 번역을 도맡아야 한국 문학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의견에 힘을 실었다. 조재룡 문학평론가는 채식주의자 수상에 대해 “번역의 승리”라며 “번역은 언어코드 조합이 아닌 글을 쓰는 일이며, 문학 한류의 희망은 스미스 같은 외국인 번역자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스미스는 한강 외에도 배수아, 황정은, 김연수 등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가 번역한 배수아 소설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10월 ‘A Greater Music’이란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간됐으며, 또 다른 소설 ‘서울의 낮은 언덕들’도 내년 1월 ‘Recitation’이란 제목으로 미국에서 나온다.
지난 10월 스웨덴 한림원의 종신서기 사라 다니우스가 북구식 발음으로 “봅 딜런”을 호명하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노벨문학상 116년 역사에서 대중음악가의 수상은 최초다. ‘노랫말이 문학이 될 수 있는가’란 의문이 국내외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시와 소설이라는 문학 고유의 영역을 무시하고 침범했다는 반대론과 문학을 전통적 분류 안에 가둬선 안 된다는 찬성론이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이 모든 논란은 딜런의 태도 앞에서 무색해졌다. 수상 후 아무 소감도 밝히지 않던 그는 약 2주 뒤에야 한림원에 수락 의사를 보냈지만, 시상식엔 참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유는 “선약이 있어서”다.
찻잔을 깬 태풍, #문단_내_성폭력
10월 중순 트위터에서 몇몇 문인들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글이 ‘문단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불씨를 당긴 것은 ‘#오타쿠_내_성폭력’으로, 서브컬처계에서 일어난 성폭력을 공론화하려는 움직임이 문학을 비롯해 여타 문화ㆍ예술계로 옮겨 붙은 것이다.
한 번 시작된 고발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원로 소설가부터 젊은 시인까지, 십 수명의 문인이 가해자로 지목됐다. 폭로글을 올린 이들은 주로 시인 지망생, 문창과 학생, 출판사 편집인, 신인 작가 등 주로 문학출판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유명 출판사에서 시집을 낸 시인임을 강조하며 SNS를 통해 접근하거나 대학 강의, 사설 문학강좌에서 강사의 위치로 만나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저질렀다.
문학을 향한 열정을 빌미로 성폭력이 자행되고, 그에 아무런 조치 없이 수십 년간 묵인돼왔다는 사실에 문단 안팎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문인 중 일부는 잘못을 시인한 뒤 사과문을 올렸고, 어떤 이들은 절필과 자숙을 약속하기도 했다. 출판사들은 해당 책을 출고 정지했으며, 문학과지성사 산하 ‘문지문화원사이’는 성폭력 발생 장소로 언급된 문학강좌를 폐쇄했다.
피해호소인들을 지지하고 재발방지책을 강구하는 모임도 속속 만들어졌다. 문학계 성폭력, 위계폭력에 반대하는 작가 모임 ‘페미라이터’는 “나는 성폭력 가해자가 되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포함된 서약서를 만들어 등 총 671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한국작가회의는 최근 내부에 성폭력 징계 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에 공지영 소설가를 임명했다. 구체적인 활동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문인들을 조사하고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제명 등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잇따른 폭로는 한 달여 만에 수그러들었지만, 다수의 문예지가 겨울호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논의를 발전시키는 중이다. 계간 문학동네가 개최한 좌담에서 여성학자 김신현경씨는 이번 사태를 1990년대 후반부터 온라인에서 강화된 여성 혐오와 지난해 메르스갤러리에서 촉발된 여성들의 반란이라는 맥락 위에서 분석했다. 그는 폭로하고 사과 받는 것에 대해 “사실은 사과가 필요한 게 아니라 법적 절차에 따라서 처벌을 받으면 되는 문제인데, 그게 남녀관계의 문제일 때 여전히 작동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가해자들이 하는 일이란 사과문을 빨리 발표한 뒤 사라지는, 일종의 면죄부를 얻는” 일이라면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문단의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1세기문학, 문예중앙, 문학과사회도 피해 호소인들의 글을 싣거나 좌담을 여는 식으로 논의에 동참했다.
이달 말에 출간되는 격월간 독립잡지 ‘더 멀리’는 이 화두에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이 잡지의 편집진인 김현 시인은 지난 9월 ‘질문 있습니다’라는 글을 통해 “문단에서 벌어진 여성혐오 범죄기록물을 만들자”고 제안, 사실상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의 단초 역할을 했다. 이번 잡지에는 애초 제안한대로 문학계 성폭력ㆍ위계폭력 피해자들의 제보 글이 실릴 예정이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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