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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흔적이라도...” 팽목항서 1000일 동안 눈물 흘린 허다윤양 부모

입력
2017.01.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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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도 접고 컨테이너서 버텨

인양 늦어지며 억장 더 무너져

해명조차 못하는 박 대통령과

함께 사는 게 부끄럽고 참담

딸 또래 여학생 보면 말 걸어…

분향소에 사진 올리는 게 소원”

세월호 참사 실종자인 경기 안산 단원고 허다윤양 부모인 허흥환(오른쪽)씨와 박은미씨가 전남 진도 팽목항의 컨테이너 안에서 '허다윤' 이라는 이름이 적힌 곰인형을 들고 있다. 인형은 지난달 31일 10차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허씨 부부에게 시민들이 선물한 것이다. 김정현 기자
세월호 참사 실종자인 경기 안산 단원고 허다윤양 부모인 허흥환(오른쪽)씨와 박은미씨가 전남 진도 팽목항의 컨테이너 안에서 '허다윤' 이라는 이름이 적힌 곰인형을 들고 있다. 인형은 지난달 31일 10차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허씨 부부에게 시민들이 선물한 것이다. 김정현 기자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이 곳에 남아 같은 말만 되뇌고 있어요. 우리 다윤이 흔적이라도 찾게 해달라고.”

8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만난 허흥환(53)씨에게 조심스럽게 1,000일의 삶을 묻자 어렵게 뗀 첫마디였다. 허씨는 세월호 참사 실종자(해당 가족들은 ‘미수습자’라 불리길 원한다) 9명 중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다윤양 아버지다. 그는 생업인 철제 가공일을 접고 부인 박은미(47)씨와 팽목항에 내려와 6.6㎡ 남짓한 컨테이너 안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살림이라고는 접이식 간이침대와 소형 냉장고, TV와 작은 서랍 그리고 다윤이 사진이 전부다. 실종자 중 단원고 학생 조은화양 부모와 권재근ㆍ혁규 부자 가족(재근씨 형)도 이웃한 컨테이너에서 같이 생활하고 있다.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딸 소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억장은 무너진 지 오래다. 허씨는 “세월호가 인양된 것도, 그렇다고 딸을 찾은 것도 아닌 부모 심정에 1,000일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는 “요즘에는 바지선 인양 작업을 보기 위해 바다에 나가는 일조차 두렵다”며 “딸 아이가 있을 세월호가 바지선 밑에 깔려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더 아려온다”고도 했다.

늦어지는 세월호 인양 작업은 실종자 가족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2015년 4월 정부가 세월호 선체 인양을 확정했지만, 인양 예정시기를 번번이 번복해 실종자 가족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그래도 허씨는 “올 4월이면 인양이 가능하다는 얘기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세월호 인양 공정률은 지난해 말 현재 75%수준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혹이 불거지고 있지만, 정부 주도의 인양 작업에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실종자 가족은 마음 놓고 비판도 못하고 있다. 허씨는 “지난해 7차 촛불집회에 다녀 오니 ‘저 사람들(실종자 가족)은 다른 이들보다 더 화가 날 터인데 정부 욕도 안 하느냐’는 얘기를 들었다”며 “다윤이 흔적이라도 찾고 나야 뭐라도 얘기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인양 때문에 숨죽이고 있는 이들도 참사 당일 무슨 일을 했는지 제대로 해명조차 못하는 박 대통령에 대해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게 부끄러울 뿐”이라고 참담해 했다.

실종자 가족의 심적 고통은 육신의 고단함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허씨는 “바지선에 쭈그리고 앉아 인양과정을 지켜보는 게 일상이다 보니 이제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 정도가 됐다”고 했다. 부인 박씨도 세월호 참사 이후 발병한 신경섬유종 때문에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지난 6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단원고 2학년 허다윤양의 어머니 박은미씨와 아버지 허흥환 씨. 김정현 기자
지난 6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단원고 2학년 허다윤양의 어머니 박은미씨와 아버지 허흥환 씨. 김정현 기자

그래도 허씨 부부를 버티게 하는 힘은 ‘다윤이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다’는 간절한 바람이다. 아직도 잊지 않고 팽목항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은 실종자 가족에게 큰 위안이 된다. 허씨는 “이곳을 찾는 여고생 중 다윤이랑 비슷한 애를 보면 먼저 말을 걸어 보기도 한다”며 “그러면 애들이 제대로 말을 못하고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허씨 부부의 컨테이너 옆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0416 팽목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실종자들은 영정이 없다. 대신 그 자리에 ‘세월호 속에 아직 ㅇㅇㅇ가 있습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다윤이 생각이 유독 간절한 날마다 이곳을 찾는다는 허씨는 “올해는 꼭 다윤이를 찾아 분향소에 사진을 올려두는 것이 소원”이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글ㆍ사진 진도=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전남 진도 팽목항에 마련된 '0416 팽목 분향소'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실종자인 허다윤 양 자리에 ‘세월호 속에 아직 다윤이가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김정현 기자
전남 진도 팽목항에 마련된 '0416 팽목 분향소'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실종자인 허다윤 양 자리에 ‘세월호 속에 아직 다윤이가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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