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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세월호와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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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빈둥거린 참사 당일 7시간
DJ, 2차 연평해전 대응과 비교는 억지
명백한 과오 감싸면서 보수라고 하나
세월호 침몰 순간 선실 내부를 담은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아 다시 봤다. 이미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선실 내부가 많이 기울었다. 그래도 “현재 위치에서 절대 움직이지 말고 대기해주기 바랍니다”는 안내방송이 계속 나온다. 학생들은 서로 구명조끼를 나눠 입고 선실안과 복도에 모여 앉아 농담을 나눈다. 천진스러운 모습들이다. 안내방송을 믿고 구조를 의심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배가 조금 더 기울자 한 학생이 휴대폰으로 엄마 아빠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둘 다 사랑해.” 9일로 참사 1,000일이 지났건만 한동안 잊었던 울컥증이 바로 도진다.
생떼 같은 어린 학생들이 침몰하는 배에 갇혀 시시각각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전 국민이 TV중계로 지켜봤다.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었다. 그 기억은 유가족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치유하기 어려운 집단적 트라우마로 남았다. 세월호 참사가 일반 사건사고와 뭐가 다르냐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가슴 속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다.
국가는 숨져가는 학생들을 구조하기 위해 아무 일도 못했다. 누구보다 선두에서 구조를 지휘해야 할 박근혜 대통령은 그 시간 청와대 관저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성형시술인지 뭔지 떳떳하게 밝힐 수 없는 일을 하며 빈둥거렸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고도 박 대통령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며 할 일을 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7시간 만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타나 물은 게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였다.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돼 있었다는 얘기다. 전 국민이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볼 때 박 대통령은 TV 켤 생각조차 않았거나 건성으로 봐 넘긴 게 틀림없다.
세월호 비극과 한일 월드컵의 환희. 한 보수 논객이 전혀 어울리지 않은 두 사건을 연관 짓는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연평해전 때 축구(2002 한일월드컵 경기)를 보러 갔지만 탄핵은 안 됐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이 불분명한 게 탄핵 사유가 되기 어렵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억지다. 급박한 안보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한가하게 축구경기나 구경하러 갔다는 전제를 깔고 하는 얘기다.
팩트도 맞지 않는 명백한 상황 왜곡이다. 2차 연평해전이 발발한 2002년 6월 29일 김 대통령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당일 저녁 국무위원들과 함께 청와대 본관에서 한국-터키 한일월드컵 3ㆍ4위전을 시청하려던 계획은 취소했다. 다음날 일본 요코하마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폐막식 참석은 예정대로 진행했다. 공동 주최국 대통령이 예정된 행사에 불참하면 국민 불안감이 높아지고 외국 투자자들의 동요를 부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북한군 동향 등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함께 이뤄진 뒤였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을 여기에 비교하려는 발상은 억지다. 나는 박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받고 대처했다고 해도 인명 구조 결과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현장의 초기 조치 부실로 골든 타임이 지나 버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최선을 다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긴급한 상황에서 청와대 안보실장은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를 알지 못해 최초 상황보고를 본관 집무실과 관저 두 곳에 했다. 화급한 안보위기상황이었다고 해도 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입만 열면 안보를 걱정하는 보수 인사들은 바로 이 대목을 문제삼아야 한다. 보수 가치와 거리가 먼 박 대통령의 행태를 감싸기로 일관하면서 보수로 자처하는 것은 낯 두꺼운 짓이다. 사이비 종말론자들이 세상의 종말로 예언한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종말론을 합리화하는 논리를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 탄핵심판 박근혜 법률대리인단과 박사모의 논리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저 차가운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를 잔인하게도 왜곡된 이념의 바다에 또 밀어 넣었다. 그 이념의 바다에서도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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