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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순보다 반짝반짝 ‘오돌뼈’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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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이후 달달하면서 웃기고 설레는 드라마가 없어 섭섭했는데, 그 아쉬움을 채워준 게 ‘힘쎈 여자 도봉순(JTBC)’이다. 도봉순은 종영까지 2회만을 남겨두고 결말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초반 신선하고 재미있던 드라마가 최근에는 좀 산으로 간다는 느낌이 든다. ‘힘쎈 여자 도봉순’은 로맨틱 코미디, 여기에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만화 같은 코미디, 또 스릴러까지 섞여 있다. 이게 초반에는 잘 어우러졌는데, 갈 수록 장르가 따로 놀면서 최근에는 다소 ‘고구마 전개’로 이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도봉순에 대한 집중력이 뚝 떨어진 계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10회에 도봉순(박보영)이 아인소프트에 정직원으로 입사하고 상사 오동표 팀장(별명 오돌뼈)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오 팀장은 배우 김원해가 극중에서 1인2역으로 소화하고 있는 코믹 캐릭터다. 김원해는 도봉순을 괴롭히는 백탁파 용역깡패 김광복이자 아인소프트 기획실 오돌뼈 팀장이다.
김광복이 약속을 깨고 ‘연장’을 마구 휘두르는 야비한 건달인데 웃긴다면, 오돌뼈는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코믹 캐릭터다.
극중에서 오 팀장은 전형적인 게이(동성애자)다. 여자 같은 말투, 매니큐어와 짙은 아이라인의 눈 화장, 목에는 초커 목걸이를 하고 몸에 달라붙는 의상을 입고 나온다. 안민혁 대표(박형식)를 진심으로 좋아했다며 대성통곡하는 장면도 나온다.
일부 팬들은 이 드라마가 동성애자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웃음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며 ‘불편함’을 제기한다. 하지만 나는 그와 별개로 ‘아인소프트의 능력 있는 오 팀장’의 사회적인 인격을 도봉순이 모독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 중 하나가 “여자가 힘 세서 뭣에 쓰려고” 같은 봉순 엄마의 노골적인 대사에서 나오듯 ‘힘 센 여자’, 즉 여자에 대한 편견을 다룬 것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엄청난 능력(봉순이의 경우는 힘)이 있는데, 사회적으로 여자는 그 능력에 대해 인정받지 못해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억압받고 숨겨야 한다는 점을 조명하는 속뜻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드라마에서 억압받고 억울한 건 도봉순이 아니라 오 팀장이다.
사회적으로 오돌뼈 팀장처럼 하고 다니면 누구나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오 팀장도 그런 시선을 느끼면서 평생 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오돌뼈 팀장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아인소프트 핵심부서 팀장 자리까지 올랐다. 사내에서 성질 더럽고 신경질적인 것으로 악명 높지만, 오 팀장이 마음 먹고 ‘조진’ 후배들이 일 하나는 제대로 배운다는 평가도 받는다. 업무 능력도 뛰어나면서 후배들 교육까지 잘 하는 캐릭터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슈퍼맨’인데.
하지만 이런 오 팀장 앞에 낙하산 도봉순이 등장한다. 사장 친인척도 아닌, 무려 사장이 좋아하는 젊은 여자다. 게임 개발에 관심은 있다고 하나 실무 경험이 전무하며, 성공적인 성과를 낸 분야는 게임이 아니라 ‘경호’였다. 그런데 게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정직원이 되어 회사의 핵심부서(기획실)에 단번에 배치 받은 것은 물론이고 대표 직속으로 대표실에 별도 자리까지 마련됐다. 대표는 툭 하면 ‘워크숍을 가자’는 둥, ‘회식을 하자’는 둥 뻐꾸기를 날리며 공사 구분을 하지 못하고 봉순이랑 데이트할 핑계를 만든다.
하지만 우리의 오돌뼈 팀장은 어떤가. 편견을 이겨내고 그동안 숱한 성과를 냈으며, 자신이 매번 강조하듯 “대한민국 육군 병장 제대”한, 그 어떤 특혜도 받은 것 없이 성실하게 맡은 바 의무를 다 한 인물이다.
그런데 낙하산 도봉순이 나타나더니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질 않나, 무거운 탁자를 밀어서 팀장을 구석에 가둬 놓질 않나, 무거운 짐을 드는 모습에 놀라 “너 정체가 뭐야”라고 소리 질렀더니 “사실 저 외계인이에요”라고 상사를 놀려먹는다. 마치 ‘내 뒤엔 대표님 있어’라고 시위라도 하듯이.
아아, 나는 지난 몇 주 간 아인소프트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그만 복장이 터지고 말았다.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를 보다가 뒷목을 잡은 것도 퍽이나 새로운 경험이었다. 시청자로서의 감정선이 이쯤 되니 봉순이와 안민혁 대표의 바닷가 키스신도, 봉순이가 힘을 잃은 뒤 이어지는 안 대표의 헌신적인 러브스토리도 별 감흥 없이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힘쎈 여자 도봉순’은 jtbc의 역대 드라마 시청률 기록을 새로 쓰면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일등공신은 단연 ‘뽀블리’라 불리는 박보영이다.
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빛나는 주인공은 박보영도, 박형식도, 지수도 아닌 김원해라고 생각한다. “머어떠 머어떠(김만복이 미이라처럼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똥술 먹었어, 먹었어’ 라고 보스를 놀리는 말)” 같은 슬랩스틱 코미디부터 “이 기집애가”라고 앙칼지게 소리치는 오돌뼈의 코미디 연기까지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는 배우가 또 누가 있겠는가.
지난주 ‘도봉순’이 허전했던 이유도 오돌뼈 팀장님의 부재 때문이었다. 사실 고백을 하나 더 하자면, 배우 김원해가 최근 드라마 ‘김과장(KBS)’ 종방연에서 한 말 때문에 진심 반하고 말았다. 김원해는 “드라마 김과장이 너무 현실 같아서 좀 답답하셨죠. 하지만 시청자 여러분들의 현실은 드라마처럼 늘 즐겁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도봉순’ 속 러브라인과 슈퍼파워 설정은 그야말로 판타지 드라마지만, 배우 김원해의 내공과 진심이 담긴 연기는 실로 리얼하다. 박보영-박형식 커플을 두고도 오돌뼈에 반해버릴 정도였으니, 나는 드라마 ‘도봉순’을 보다가 오돌뼈 팀장에게서 현실에 실재하는 슈퍼파워를 본 느낌이다.
마더티렉스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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