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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은 세상의 공감을 어떻게 얻었나

입력
2017.05.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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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한 독자가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입소문과 유명인사들의 추천에 힘입어 몇 주째 문학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lbo.com
1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한 독자가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입소문과 유명인사들의 추천에 힘입어 몇 주째 문학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bwh3140@hankooklbo.com

‘역대급 역주행’이라 부를만하다. 올해 상반기 문학분야 최고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소설 ‘82년생 김지영’(‘김지영’) 얘기다. 지난해 10월 소리 소문 없이 출간된 이 책은 입소문을 타고 지난해 말부터 판매 부수가 수직상승해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 문학분야 1위로 ‘장기 집권’ 중이다. 몇몇 대학교 사회학 교재로 쓰이기 시작했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이 소설의 한 장면을 패러디해 여혐 논란을 일으킨 만화 ‘92년생 김지훈’이 등장하는 등 ‘김지영’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돼 가고 있다.

소설은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난 가장 평범한 여성, 김지영의 생애주기를 통해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을 조명한다. ‘지영씨’가 대학 졸업 뒤 홍보대행사에서 근무하다가 서른한 살에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아 키우는 과정을 담담하게 좇으며 그 시기 각종 통계와 자료로 우리 사회를 고스란히 돌아본다. 평범한 여성의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가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셈.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넷이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김지영’ 현상을 짚어봤다.

뻣뻣한 캣츠걸(캣츠걸)=“대세는 대세인가보다. 문화부 기자 전원이 이걸 읽었다니. 각자 읽은 계기가 뭔가.”

감귤은 역시 재즈감귤(감귤)=“인터넷에서 이 책이 페미니즘 책인데, 굉장히 공감이 간다고 해서 읽어봤다. 페미니즘이란 말에 먼저 관심이 갔는데,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이 책, 학교에서 남학생들한테 의무적으로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침 없는 바나나(바나나)=“친구가 강력 추천해서 읽었다. 휴가 가는 비행기에서 거의 한 번에 읽었다.”

캣츠걸=“나는 굉장히 밋밋하다고 느꼈다. ‘몰랐단 말야?’하는 기분이랄까. 이 책 어떤 부분에 공감했나?”

감귤=“기승전결 없고 소설적인 맛이 안 난다는 친구도 있었는데 나는 소설적인 부분보다 설정에 공감하면서 읽었다. 이 책이 여성의 삶을 어릴 때부터 쭉 그리지 않나. 인생의 변곡점마다 ‘나도 이때 이랬는데’ ‘앞으로 내 모습도 이렇겠네’ 싶었다.”

하염없이 싸이는 뱃살(싸이)=“소설로는 좀 심심했다. 작가가 MBC 시사고발프로그램 ‘PD수첩’ 구성작가 출신이던데, 데이터 뽑아 사회 표준형을 제시한 것 같았다. 나는 책을 읽으며 ‘82년생이라더니 70년대생이네’ 생각했고, 어릴 적 내 주변 여자애들 생각이 났다. 대학가고 싶어서 여상 가라는데 엄마 몰래 여고에 원서 넣었다 들키고 그런 얘기들. 이 책에도 낙태 통계 같은 게 나온다. 공감대가 많았다.”

바나나=“‘표준형’이라는 말이 딱 맞다. 김지영은 전혀 특별한 여성이 아니다. ‘소설 속 이야기’라고 부르는 극적이거나 인위적인 사건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평범한 여성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차별과 폭력을 김지영도 겪는 것뿐이다. 나처럼, 내 언니처럼. 그게 여성 독자가 사무치게 공감하는 지점이다. 여성의 삶을 누군가 놓치지 않고 짚어줬다는 것 자체가 카타르시스를 줬고, 그거면 책이 문학으로서 충분한 기능을 한 게 아닌가 한다.”

싸이=“말하자면 이 책은 페이스북에 ‘좋아요’ 100만개 달린, 공감의 콘텐츠라 본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오찬에 참석한 뒤 "유례 없는 오찬 회동에, 김정숙 여사께서 직접 만든 음식까지 접대를 받았다. 보답의 의미로 문 대통령께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소설을 선물했으며 김 여사께는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라는 수필집을 선물했다"며 관련 사진을 트위터 자신의 계정에 올렸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오찬에 참석한 뒤 "유례 없는 오찬 회동에, 김정숙 여사께서 직접 만든 음식까지 접대를 받았다. 보답의 의미로 문 대통령께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소설을 선물했으며 김 여사께는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라는 수필집을 선물했다"며 관련 사진을 트위터 자신의 계정에 올렸다.

바나나=“책이 파장을 일으킨 건 소설이라는 형식 때문이다. 젠더 문제를 얘기하는 데 게으르거나 소극적이었던 소설이 아픔을 제대로 호명해준 거다. 소설은 인간 보편을 탐구하기 때문에 감동을 주지 않나. 나만, 내 자매와 친구만 겪는 아픔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것만으로 위로 받았다.”

캣츠걸=“이 책을 보고 남자들이 몰랐다, 놀랐다는 얘기를 하던데, 나는 이 반응 보고 더 놀랐다. 인터넷 리뷰 중에 ‘85년생 남자’라고 밝힌 분이 이 소설 읽고 여성이 일상적으로 성폭력에 노출돼있어 충격 받았다고 하더라. 중고등학교 시절 겪는 ‘바바리맨’부터 취업 때 면접관의 질문이나 온라인의 ‘맘충’(자기 아이만 지나치게 싸고도는 엄마에 대한 비하)이란 표현까지.”

바나나=“성폭행만 성범죄라고 생각하니까. 성차별, 성희롱, 성추행 같은 성폭력을 한번도 겪지 않는 여성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거다. 강남역 10번 출구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면 어쩌면 성별 차이가 세대 차이보다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캣츠걸=“이 책의 리뷰 중에 ‘이건 소설이 아니다’란 의견도 많더라. 르포 형식 소설이 한 군집으로 생기는 듯한 인상도 받는다.”

감귤=“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소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참전했던 여성들 인터뷰,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글이다. ‘김지영’도 소설로 보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싸이=“‘문학이란 이래야만 한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꼭 구애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바나나=“책은 가볍게 읽히지만 무겁게 다가온다. 대단한 문학적 장치나 반전이 있고 멋들어진 문장이 쉼 없이 나와야 소설로 성립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로와 감동이 관건이다. 읽는 내내 궁금했다. 작가가 일부러 건조한 형식을 취한 건지, 소설 작법이 원래 그런 건지. 하지만 ‘마담 보봐리’나 ‘여자의 일생’같은 스케일 큰 정통 소설이었다면 책이 이렇게 큰 공감을 부르진 않았을 것 같다. 문학적 감수성을 배제하고 쓴 게 나에게 통했고 시장에도 통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 작가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책을 깔아 보는 시선을 전혀 감추지 않는 건 불편했다. ‘나는 원래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은 아닌데, 한 번 읽어 줬다’는 식이다. 그리고 ‘문학적으론 별로다’는 평을 부주의하게 또는 의도적으로 덧붙이더라. 그것 자체가 한국 문학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반영하는 게 아닐까.”

캣츠걸=“이 책 뜨면서 소설 한 대목을 패러디한 ‘92년생 김지훈’이 등장했다. 어느 군인이 휴가 나와 스타벅스 이벤트 줄 서는데 뒤에서 ‘돈은 여자들이 벌어주는데 공짜 커피는‘고기방패’가 받아간다’고 비아냥거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나나=“사실 모두의 삶이 팍팍하다. 그런데 일부 남성이 자기 몫을 빼앗아간 여자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피해의식에 갇혀 있다. 엉뚱한 곳에 화풀이한다. 평등과 젠더 감수성도 제대로 교육 받지 못했고.”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주 작가가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서점에서 독자와의 만남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82년생 김지영'을 쓴 조남주 작가가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서점에서 독자와의 만남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캣츠걸=“입소문으로 떠서 역주행한 대표적인 책이다. 입소문을 타면서 정치권에서 언급하고 칼럼에도 나오면서 누적 발행부수가 반년 만에 6만7,000권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때에 강남역 사건이나, 여혐 논란이 벌어지면서 사람들이 더 찾은 것 같기도 하다.”

감귤=“페미니즘 소설이 없었던 건 아닌데, 책에 나오는 한국의 소소한 얘기들이 공감이 잘 된다. 읽으면 다른 사람들도 읽어봤으면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여성 현실을 집약해 놓은 책이다.”

캣츠걸=“2시간 만에 읽고 2시간 떠들 수 있는 책이다. 일상에서 드라마 얘기하듯이 쉽게 읽고 말할 수 있어 입소문을 탄 게 아닐까.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렇게 많이 팔려도 대화의 주제가 되지 않았다. 이 책 읽지 않더라도 관련 주제에 대해 다 한마디씩 얘기할 수 있다.”

바나나=“그만큼 여성이 차별과 불합리를 호흡하며 살면서도 억눌려 있었다는 거다. 억압 받고 힘 없는 사람에겐 동지가 있다, 언젠가는 연대해서 싸울 희망이 있다는 게 위로가 된다. 그 지점이 이 책이 입소문을 타고 계속 팔리는 저력이다. ‘금태섭 효과’도 조금 있겠지만.”

캣츠걸=“요즘 시장에서 1만부 팔리면 많이 팔리는 거다. 소설가 김영하가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20권 정도 책을 내서 ‘살인자의 기억법’ 말고 판매 부수 10만 부를 넘긴 적이 없다’ 고 했다. 반년 만에 6만부를 넘겼으니 대박이다.”

바나나=“작가가 상당히 괴로울 것 같다. 이렇게 큰 관심을 받았으니 계속 사회적 얘기를 써야 할지, 페미니즘 작가로 분류되는 게 과연 좋은 일일지… 갑자기 ‘소수자 대표’의 위치에 서게 된 사람이 부닥치는 고민일 거다.”

싸이=“전문가들이야 문장 따지고 서사 따지고 하겠지만,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견해를, 공감대를 넓히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미국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그걸 ‘시적 정의’라 부르던데, 그런 어려운 얘기가 아니라 해도 남자들이 이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는 게, 어렴풋한 정도로만 알고 있던 여자들의 고충에 대해 나도 좀 알아보고 싶다는 것 아니겠나. 그런 면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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