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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야, 미안해… 나도 아줌마가 됐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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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의 제목이 ‘엽기적인 그녀’라기에 설마, 제목만 같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1회 첫 장면만 해도 정통 사극처럼 굉장히 무거운 분위기와 사연이 있는 액션 신으로 시작하기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모두가 알고 있는 전지현의 그 ‘엽기적인 그녀’가 시대만 조선시대로 옮겨져서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도 전지현-차태현과는 아주 다른 느낌의 오연서-주원이 ‘그녀’와 ‘견우’ 역할을 하면서.
4회까지 이 드라마를 그래도 진득하게 지켜본 이유는 있었다. 전체적인 연출 톤이 영화 ‘엽기적인 그녀’와는 아주 다르게,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가벼운 터치와 만화 같은 느낌이 주를 이뤄 보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유명한 히트작의 리메이크 버전인 만큼, ‘내가 알고 있는 그 내용이 주원과 오연서에 의해 어떤 식으로 이어져 나갈지’가 계속 궁금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에는 지뢰밭과도 같은 비호감 요인이 너무나 많다.
먼저 ‘그녀’다.
아무리 오연서가 엽기발랄한 조선시대 공주 역을 온몸으로 연기한다고 한들, 드라마에서 ‘그녀’의 매력은 보는 사람을 빠져들게 할 정도로 압도적이지가 않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와 그 바탕이 됐던 PC통신 소설(하아, 이것까지 알고 있으면 ‘아재 인증’인가)에서는 ‘그녀’가 극을 끌고 가는 동력 그 자체다. 얼마나 강렬하면, 끝날 때까지 이름 한 번 안 나오고 ‘그녀’라는 인칭대명사로만 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오연서는 참 예쁘고, 연기도 그다지 튀지 않고, 한복도 정말 잘 어울리지만, 과연 오연서가 16년 전 전지현의 ‘교복 나이트 입장’ 장면처럼 그 하나로 캐릭터를 모두 설명하고 매력이 폭발하는 씬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글쎄, 오히려 이 드라마에서는 극을 끌고 나가는 동력이 주원의 매력과 연기력이다.
또 한 가지 ‘엽기적인 설정’이 있다. 드라마는 영화와는 다르게 굳이 ‘그녀’를 먼 발치에서 흠모하는 남자와 ‘견우’를 짝사랑하는 여자를 넣어서 사각관계를 만들었다. 한국 드라마 애청자인 나 같은 아줌마의 눈에도 ‘사각관계’는 이제 구시대 유물처럼 낡디 낡은 설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사각관계’ 외에도 중전(윤세아)과 좌의정(정웅인)은 정말이지 너무나 판에 박힌, 평면적이기 그지없는 악역이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극 드라마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윤세아 중전’과 ‘정웅인 좌상’을 보아왔던 것이다. 이들 캐릭터가 너무나 입체감이 없기 때문에 주인공 오연서와 주원 마저도 밋밋하고 뻔한 캐릭터로 보이는 부작용이 생긴다.
이런 식의 구태의연한 설정이 최초의 전편 UHD(초고화질) 드라마로 방영되는 게 바로 ‘엽기적인 그녀’라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기본 설정의 큰 틀은 물론이고, 세부적인 에피소드는 더욱 엽기적이다.
1회에서 중국(청나라) 유학을 간 주원을 드라마가 처음 소개하는 장면에서 중국어가 어색한 중국 황제부터가 ‘에러’였다. 여기에 유학을 마치고 온 주원이 임금의 특별 하사금을 받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집에서 회포를 푸는 장면을 보면서는 거의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퓨전 사극이라지만, ‘단체 손님’을 방 별로 따로 받는 듯한 풍경은 ‘룸살롱’과 다를 게 없었다. 게다가 주원과 친구들은 각각 기생들을 한 명씩 옆자리에 앉혀 두고 술을 마신다. 진짜 조선 말기 양반들이 저렇게 술을 마셨다는 건가. 이 장면이 그저 ‘상상력의 산물’이라면, 대체 그 상상력은 어디서 나온 건지도 기가 막힐 지경이다.
여기에 주원이 ‘청나라에서 유행하는 혼돈주’라며 잔을 쓰러뜨려 폭탄주를 차례로 만드는 ‘도미노’를 설명하는데 한참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보면, 대체 지상파 방송은 얼마나 ‘술’과 ‘술 문화’에 관대하길래 청소년들도 볼 수 있는 드라마에 젊은 스타 배우가 주도하는 음주 장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넣는지도 의문이다.
사실 ‘엽기적인 그녀’의 원작 자체가 음주와 그 후 책임감 없는 행동들에 대해 가볍고 관대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그 설정을 그대로 조선시대로 옮겨서는 첫 회부터 오연서가 술 먹고 토하는 장면을 CG로 만들지 않나, 오연서와 주원이 가까워지는 장면으로 오연서가 막걸리와 홍탁을 설명하는 장면을 굳이 넣지를 않나, 남녀 주인공 모두 술에 대해서는 뭘 해도 너그럽게 봐 줘야 하고, 또 그게 매력적이라는 식으로 그린다.
웃음의 장치로 넣은 것으로 보이는 오연서의 ‘땅콩 갑질’이나 오연서와 주원이 옥지환을 찾아가는과정이 마치 ‘반지 원정대’처럼 보이는 등의 설정도 그렇다. 시원하게 ‘빵빵 터지는’ 게 아니라 쓴 웃음을 짓게 되는데, 이게 다 어설픈 설정과 평면적인 캐릭터, 그리고 개연성 없는 전개 탓이 크다.
앞으로의 전개도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공주 오연서의 숨겨진 슬픔과 사연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그리고 ‘악의 무리’에 대한 오연서와 임금의 역습이 이어지고, 이걸 주원이 도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원과 오연서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가까워질 것이다. 어쩌면 원작이 그랬듯 두 사람은 결국 이어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도,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흥행불패’ 주원의 힘이 발휘된다면 이 드라마가 평균치 이상의 흥행 성공을 거둘 가능성도 충분하다.
하지만 어떡하지. 견우야,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봐. ‘메가히트 영화’의 원작과 ‘흥행불패’ 배우 주원만 믿고 구태의연한 설정으로 범벅이 된 드라마 보다는, 자꾸 뭔가 부족하고 불쌍해 보이는, 그러면서도 풋풋하고 신선한 인물들과 함께 하는 고동만(박서준, KBS 월화드라마 ‘쌈, 마이웨이’ 메인 캐릭터)한테 자꾸 눈이 간다. 어쩌지?
※ ‘TV 좀 봅시다’가 20회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 동안 성원해 주셨던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마더티렉스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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