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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코스] 춘천엔 닭갈비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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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닭갈비 골목 → 진아하우스 → 이디오피아 벳 → 춘천 막국수체험박물관
드라이브에 있어서 맛집은 중요하다. 맛 좋은 음식을 파는 식당과 분위기 좋은 카페는 드라이브의 훌륭한 목적지임과 동시에 달려야 할 당위성이 된다. 수도권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호반 도시 춘천엔 흥미진진한 맛집과 가슴 뚫리는 도로가 그득하다. 온종일 먹으러만 돌아다녀도 모자랄 정도로 곳곳에 숨어 있는 거점들은 드라이버들의 마음을 충분히 설레게 한다.
‘춘천’ 하면 닭갈비, 명동 닭갈비 골목
춘천이 왜 닭갈비로 유명해졌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명동의 닭갈비 골목에 있는 어느 식당 사장님의 말에 따르면 옛날부터 홍천에서 닭갈비라고 부르는 요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홍천의 닭갈비는 팬이나 냄비에 육수를 넣어 닭을 자작하게 끓이거나 쪄 먹는 것으로 춘천의 방식과 다르다.
춘천시에 따르면 1960년 돼지고기를 팔던 김 모 씨가 닭을 토막 내 돼지갈비처럼 양념에 재워 팔기 시작한 것이 ‘춘천 닭갈비’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후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술안주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특히, 휴가 나온 군인과 대학생, 서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춘천 닭갈비는 일반적으로 큼직하게 썬 닭고기를 매콤달콤한 양념장에 재운 뒤 양배추, 고구마, 떡 등과 함께 커다란 무쇠 철판에 넣어 볶아 먹는다. 기호에 따라 면 사리를 넣어 먹기도 한다. 백미는 남은 양념을 활용한 볶음밥이다. 이 외에도 숯불에 구워 먹기도 하는데, 이땐 타지 않게 자주 뒤집어 주는 게 관건이다.
춘천의 중심인 명동엔 닭갈비 골목이 있다. 가장 가까운 지하상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취향에 맞는 집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일부 가게는 저녁 9시가 넘으면 문을 닫기도 한다. 철판, 숯불 등 모든 종류의 닭갈비 식당이 저마다 오리지널을 강조하며 옹기종기 마주 보며 모여있다. 40년 가까이 된 집이 있는가 하면, 여러 매체에 소개돼 명성을 얻은 집도 있다. 이 중 명동본가닭갈비에서 먹은 철판 닭갈비의 맛은 훌륭했다. 굳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먹을 만했다.
40년 전통의 수제 햄버거, 진아하우스
추억의 옛날식 햄버거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명동 닭갈비 골목 건너 춘천고등학교 근처에 있다. 근처에 마땅한 주차장이 없으므로 차를 지하상가 주차장에 두고 명동에서 걸어서 이동하는 게 좋다. 간판에는 ‘진아하우스’라고 적혀 있지만 ‘진아의 집’이라고도 한다. 과거엔 근처에 미군 부대가 있어 미군들도 즐겨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메뉴판은 한글과 영어로 표기돼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요즘엔 보기 어려운 낡은 인테리어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벽에 빼곡히 그려져 있는 낙서에선 지난 세월의 흔적이 엿보인다. 햄버거 이외에도 메뉴판엔 각종 분식류와 술안주도 적혀 있다.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억누르고 메인 메뉴인 햄버거를 주문해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마가린으로 구운 빵과 육즙 가득한 패티의 느끼함을 케첩과 마요네즈로 버무려진 양배추와 양파가 휘어잡으며 입안에서 부드럽게 섞였다. 주문할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나론 모자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 예상은 적중했다. 은박 포일 위에 고이 놓여 있던 햄버거 두 개는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에티오피아의 정통 커피, 이디오피아 벳
한국전쟁 당시 아프리카의 북동부에 있는 유서 깊은 나라 에티오피아는 황제 근위병을 유엔군으로 파병해 한국군을 도왔다. 총 6,037명이 참전해 춘천 일대 중동부 전선에서 200여 차례의 전투에 나섰다. 121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다쳤다. 에티오피아 군인들은 휴전 후에도 1965년까지 전쟁고아를 도왔다. 그 공과 희생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춘천시 근화동엔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관’이 마련돼 있다. 그 옆엔 에티오피아의 커피를 음미할 수 있는 ‘이디오피아 벳(집)’이 자리 잡고 있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이 카페는 원두커피라는 것조차 생소했던 1968년에 문을 열었다. 한국전쟁 당시 파병 결정으로 한국을 도왔던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슬라세 1세 황제가 춘천을 방문한 해이기도 하다. 하일레 황제는 카페 오픈을 축하하며 외교부를 통해 황실의 커피 생두를 보내주기도 했다. 초기엔 마땅한 로스팅 기계가 없어 프라이팬에 원두를 볶았다고 한다.
이디오피아 벳은 1970년대 들어 젊은이들의 입소문을 통해 전국적으로 명성이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엔 소개팅과 미팅, 맞선의 성지로 떠올랐다. 테이블이 모자라 바닥에 앉아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1991년 크리스마스이브엔 에티오피아 커피만 1,260잔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이곳에서 탄생한 수많은 커플의 요청으로 3층을 새로 지어 결혼식장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메뉴판을 들여다봤더니 전통만큼이나 가격이 만만치 않다. 에티오피아 원두를 내린 핸드 드립 커피는 1만원 대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커피 한 잔은 무려 7만원에 이른다. 이마저도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 에티오피아 남부 고원인 이르가체페(Yirgacheffe)에서 생산된 원두를 핸드 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맛보았다. 바리스타는 이 커피는 ‘커피의 귀부인’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맛이 일품이라고 일러주었다. 과연 진득한 과일 향과 신맛의 풍미가 뒤섞여 입과 코를 한참 동안 자극했다. 창밖의 공지천을 바라보며 한참을 두고 음미할 수밖에 없었다.
국수를 직접 막 뽑아서 먹을 수 있는 막국수체험박물관
막국수는 사실 메밀국수다. 메밀국수를 막 뽑아서 먹는다 하여 막국수라고 이름 붙여졌다. ‘맑은술을 떠내지 않고 그대로 막 걸러 짠 술’이란 뜻을 지닌 막걸리의 ‘막’과 일맥상통한다. 메밀은 춥고 척박한 지역에서도 잘 자라 강원도에서 구황 곡물로 많이 먹었다. 과거 강원도의 곡식은 춘천으로 모였다. 춘천이 댐과 함께 관광 도시로 급부상하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 덕에 예스러운 메밀국수의 명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춘천 막국수협의회가 운영하는 춘천 막국수체험박물관에 가면 막국수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배우고 직접 국수를 만들어 먹어볼 수 있다.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다. 최소 2인분 분량의 메밀가루가 제공되는데, 밀가루처럼 끈기가 없어 반죽을 꾹꾹 눌러서 만든다. 반죽을 분틀에 넣고 물이 펄펄 끓는 솥 위로 눌러 떨어뜨려 익힌 다음 찬물에 식혀주기만 하면 면은 완성이다. 여기에 기호에 맞게 양념이나 동치미 국물을 얹어 먹으면 된다.
음식은 갓 만들었을 때 먹어야 가장 맛있는 법이다. 막국수는 그 이름에 ‘막’이란 글자가 붙어서인지 그 의미가 더 각별하다. 막 뽑아낸 막국수의 면발은 꼬들꼬들하고 쫀득거렸다. 확실히 그동안 식당에서 먹었던 막국수의 맛과는 다르다. 주위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그들의 생각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춘천=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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