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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만 80대 넘게 수집, 와쿠이 기요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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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카는 재산이라기보다 문화재, 소유한다기보다 잠시 맡아두는 것
헤리티지가 잊히지 않기 위해 복원과 코치빌딩 새로 시작해
“단순히 수집만 해선 헤리티지를 이을 수 없습니다. 자동차가 달릴 수 없다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죠. 헤리티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정신입니다. 후대는 그 정신을 잘 해석해서 지금의 것으로 재창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코치 빌딩을 새롭게 시작한 이유기도 하죠.”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수집가 와쿠이 기요하루 씨가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난달 일본 사이타마현 카조시의 조용하고 작은 마을에 있는 ‘와쿠이 뮤지엄’에 다녀왔다. 이곳은 와쿠이 기요하루 씨가 10년째 운영하는 클래식카 박물관으로 시대극에서나 볼 법한 오래된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차가 그득하다. 단순히 오래된 모델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차들도 보유 중이다. 일본인의 영웅으로 손꼽히는 시라스 지로가 애용했던 차와 함께 현존하는 벤틀리 중 가장 오래된 모델인 벤틀리 3ℓ(1924년)도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와쿠이 씨는 현재 총 80여 대의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를 보유 중인데, 이 중 반 이상이 벤틀리다. 수집한 모든 차는 도로를 달릴 수 있도록 정비한다. 그래서 와쿠이 뮤지엄은 쇼룸인 ‘헤리티지’와 정비가 이뤄지는 ‘팩토리’로 구성돼 있다. 팩토리엔 최근 코치빌딩 프로젝트가 추가됐다. 1953년에 생산된 벤틀리 R 타입의 섀시와 엔진을 기반으로 벤틀리 엠비리코스(Embiricos)를 오마주한 차를 수작업으로 제작 중이다.
와쿠이 씨는 6년 전에도 한국에서 기자단이 찾아온 적이 있다며 박물관 대문 앞까지 나와 반가이 맞아주었다. 박물관을 방문하기 전날 우리는 롤스로이스의 신형 팬텀이 은밀하게 공개됐던 도쿄 롯폰기 미드타운에서 간단한 첫인사를 나누었었다.
조두현(이하 조): 어제 함께 신형 팬텀을 둘러봤습니다. 어땠나요?
와쿠이(이하 와): 일단 선대 모델들이 지켜왔던 유산을 잘 계승했어요. 기존에 나왔던 팬텀보다 차체가 낮아졌고, 컴퓨터로 제어되는 각종 장치가 잔뜩 들어가 똑똑해졌습니다. 지금까지의 팬텀은 디자인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위압감이 상당했는데, 이번 모델은 아주 젊어진 것 같습니다.
조: 구매할 의향이 있는지요?
와: (손사래를 치며) 아닙니다. 난 가난해서 그럴 여유가 없지만, 어제 봤던 구매 의향이 있는 사람들은 금액은 별로 신경 안 쓰는 눈치였습니다.
조: 비싼 차들을 이렇게 많이 갖고 있는데 가난하다고요?
와: 많은 사람이 제가 부자여서 차를 수집한다고 오해를 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부자가 아닙니다.
조: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고가의 차들을 수집하게 됐습니까? 차가 롤스로이스와 벤틀리에 국한된 것도 궁금합니다.
와: 저는 차를 수집하기 전에 세이코라는 시계 회사에서 브랜드 관리와 전략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롤스로이스라는 브랜드에 큰 관심이 가더군요. 차 자체를 넘어 창업자인 찰스 롤스와 헨리 로이스의 제품 철학과 정신이 절 매료시켰습니다. 벤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1931년 롤스로이스는 벤틀리를 인수했죠. 그래서 벤틀리에도 흥미가 갔습니다. 롤스로이스가 선택한 브랜드니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할 것이라 확신했죠.
조: 언제부터 차를 수집하게 됐나요?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산 차는 무엇인가요?
와: 처음엔 롤스로이스 클래식카를 사러 유럽에 갔는데 일본에는 판매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이유인즉 유럽은 클래식카를 소유한다기보다 잠시 대신 맡아둔다는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지금 누가 어떤 차를 어떻게 갖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죠. 그런데 이 차가 일본이나 중국 등으로 나가면 추적이 불가능하니 아시아인에게 안 팔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들의 클럽에 가입해 정보를 공유하고 신뢰를 얻은 뒤에야 구입이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세이코를 그만두고 당시 갖고 있던 1천만엔 넘는 주식을 미국으로 건너가 팔았습니다. 그리고 1988년에 1960년대에 나온 벤틀리 컨티넨탈 S를 샀습니다. 당시 디자인적으로나 성능 면에서나 시대를 앞서갔던 차죠.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 클래식카 구매 대행과 수리, 복원, 재판매 등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데,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조: 잠시 뮤지엄을 둘러봤는데, 아주 근사합니다.
와: 와쿠이 뮤지엄은 2007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 차를 수집하기 시작했을 땐 단순히 그 브랜드가 좋아서였는데, 모으다 보니 사명감 같은 게 생겼습니다. 미래의 차는 하이브리드나 전기, 수소 등 새로운 동력으로 움직일 겁니다. 내연 기관의 자리는 점점 줄겠죠. 1969년 12월 세이코가 쿼츠 시계를 발표하는 순간, 앞으로 기계식 손목시계도 차츰 없어질 것이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내연 기관은 자동차의 시작입니다. 1900년대의 대표적인 문명이자 유산이죠. 이 위대한 유산들을 잘 관리해서 후세에게 전해주고자 와쿠이 뮤지엄을 만들었습니다. 클래식카는 사유 재산이라기보다 문화재에 가깝습니다. 당연히 보존해야 하고 다음 사람이 잘 관리를 해야겠죠. 모든 차를 운행할 수 있도록 정비하고 복원 중입니다. 의뢰를 받아 수리해주기도 합니다. 과거가 없으면 미래도 없으니까요.
조: 컬렉션 자랑 좀 해주시죠.
와: 전 역대 롤스로이스에서 팬텀Ⅱ를 가장 최고로 꼽습니다. 디자인으로나 성능으로나 1929년에 나온 차치고 혁신이라 할 수 있었죠. 이건 클럽에서도 정설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곳에도 있습니다. 벤틀리 초기 모델인 3ℓ(1924년)와 1928년 르망 24시 우승을 거머쥔 ‘올드 마더 건(Old mother gun)’도 있지요. 이 차는 1927년에 생산된 벤틀리의 첫 번째 4.5ℓ 모델이자 역사상 아주 중요한 차입니다. 가격으로만 따지면 5억엔 이상 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전 이 차로 2008년 10월 이탈리아의 유명한 내구 레이스인 밀레 밀리아(Mille miglia)에도 출전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인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시라스 지로가 케임브리지 대학교 유학 시절 탔던 벤틀리와 그의 아버지가 탔던 롤스로이스 25/30hp 스포츠 살롱도 있습니다. 일일이 나열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랍니다.
조: 얼마 전 새로운 프로젝트도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와: 수집만 해서는 헤리티지를 이을 수 없습니다. 죽은 차를 가진 건 의미가 없어요. 와쿠이 뮤지엄의 팩토리에는 숙련된 타쿠미(장인)가 모든 차가 달릴 수 있도록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최근엔 복원과 코치빌딩을 시작했습니다. 60년 전 만들어진 롤스로이스 실버 쉐도우를 현대적으로 복원 중입니다. 전 세계에 현존하는 실버 쉐도우 중 달릴 수 있는 차는 거의 없습니다. 엔진을 새로 손보고 젊은 사람들도 좋아할 만한 기능을 추가할 겁니다. 그들도 클래식카를 좋아하면 좋겠습니다.
조: 코치빌딩(다른 차의 엔진과 차대를 기반으로 특별히 주문한 자동차를 설계하고 만드는 것)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어떤 차를 만들고 있나요?
와: 1953년에 생산된 벤틀리 R 타입을 기반으로 벤틀리 엠비리코스(Embiricos)를 오마주한 차를 제작 중입니다. 아시다시피 두 차의 인연은 아주 깊죠. 1930년 그리스인 레이서 안드레 엠비리코스는 프랑스인 조르주 폴랭이 디자인한 쿠페를 타고 다녔는데, 유려한 공기역학적 디자인에 차체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차는 세계 2차대전 이후 만들어진 벤틀리 R 타입 콘티넨탈에 깊은 영감을 주었죠. 올해 초 와쿠이 뮤지엄 내 디자이너가 디자인 작업을 마쳤고, 지난 5월부터 작업에 들어가서 현재 10% 정도 진행됐습니다. 의뢰를 받아서 작업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진행 중입니다. 완성까지 약 3~4년 정도 예상합니다. 이 차는 와쿠이 뮤지엄의 정신을 대표하는 새로운 차가 될 겁니다. 일본에서 코치 빌딩을 하는 곳은 오직 여기뿐입니다.
조: 일본엔 와쿠이 씨 같은 클래식카 수집가가 또 있습니까?
와: 그럼요. 일본엔 자동차 문화가 오래전부터 형성돼서 클래식카 개러지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도쿄에도 많은데 땅값이 워낙 비싸서 다들 고민이죠. 그래서 와쿠이 뮤지엄을 확장해 클래식카 수집가들과 공간을 공유할 계획도 있습니다. 부지 확보를 위해 카조시와도 우호적으로 이야기 중입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벤틀리 마크 Ⅵ 그리고 영국의 유명한 코치빌더 뮬리너(H J Mulline)가 매만진 롤스로이스 팬텀 Ⅴ 투어링 리무진의 뒷자리에 앉아 시승했다. 모두 60세를 넘긴 노령이었지만 와쿠이 뮤지엄 장인들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 괄괄한 성능을 과시했다. 팬텀 Ⅴ의 편의 기능은 제대로 작동했고, 마크 Ⅵ의 뒷자리 시트는 고급 소파에 파묻힌 듯 푹신하고 편안했다. 와쿠이 씨의 박물관은 살아있다.
사이타마=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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