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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삶이 있는 풍경] 불 꺼진 구멍가게

입력
2017.08.22 16:08

동네 구멍가게가 얼마 전 문을 닫았다.

뚜벅이로 집 바깥을 오갈 때면 어김없이 지나치는 곳인데 며칠 전부터 문이 잠겨있는가 싶더니, 어느 날 밤 귀갓길에 물건이 모두 치워진 채 텅 빈 가게를 보게 되었다. 대여섯 평쯤 되는 조그만 곳인지라 치워지는데 한나절도 걸리지 않은 모양이다. 어인 일인가 하는 생각에 지나칠 때마다 자주 시선이 간다. 자주 들르던 곳은 아니었다. 4년 째 동네주민으로 살면서도 기껏 대여섯 번 정도나 들렀을까. 소주 몇 병에 과자 부스러기 정도밖에 산 적 없는 손님인 탓에 솔직히 말해 그리 깊이 정이 들지는 않았다.

인근에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비롯해 재래시장과 대형마트까지 있고, 더구나 골목 여기저기 24시간 불을 밝힌 편의점들도 즐비하다 보니 구멍가게를 찾는 일이 많지 않았다. 허나 얕은 인연에 비해 아쉽고 서운한 심정이 자꾸 일렁인다. 있을 때 자주 다닐 걸 하는 오지랖도 며칠 사이 덩달아 솟는다. 가만히 ‘아쉽고 서운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가게 내부의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은 고색창연하기보다는 다소 너저분하게 보였다. 진열된 물건들도 모양새 없이 엉성하게 매대를 차지했다. 계절 따라 과일이나 채소류 같은 농산물도 늘 있었지만 오래도록 팔리지 않아 신선한 느낌이 부족했다. 음료수 몇 병들고 카드를 내밀었다가 “여기는 카드 안 되는디”하는 주인장의 심드렁한 대답에 꼬깃꼬깃한 현금을 꺼낸 드린 적도 있었다. 일흔 세월 족히 채우셨을 두 주인 내외분은 친절과는 거리가 멀었다. 손님이 오거나 말거나 한결같이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두 눈만 깜박거리셨다. 손님이 들끓을 만한 별다른 이유를 찾기 어려운 아주 ‘낡은’ 곳이었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거기 있던 가게를 지나갈 때마다 흘깃 거리며 주인 내외를 살피던 지난 시간들이 있었기에 마음이 ‘짠’해지는 느낌을 아쉬움과 더불어 지울 수가 없다.

언젠가 구멍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아무 생각 없이 “어르신! 여기 ***는 있어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어찌 보면 당연히 있을 물품이었는데도 허접한 구멍가게로 여겨 미심쩍은 마음에 섣불리 던진 질문이었다. “우리 집도 있을 건 다 있슈우” 하는 주인어른의 대답이 심쿵하게 들려왔다. 미안한 마음을 품은 그날 이후 가게 앞을 지나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가게 안을 눈 여겨 살피게 되었다. 같은 자리에서 27년 동안 가게를 해 왔다는 주인어른은 새 세대의 흐름에 치여 곧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를 운명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을 터, 속없이 던진 내 질문에 맘 상하지는 않으셨을지 죄송스럽기만 하다.

긴 세월 골목을 지키며 동네주민들의 생필품을 제공하고 자신의 생계를 가꾸어왔을 두 주인내외였다. 엊그제는 주인 할머니를 길가에서 우연히 만나 이제 가게 문을 닫았다는 말씀을 직접 듣기도 했다. 아직 전원이 켜 있는 커피 자판기 불빛만 덩그러니 놓인 구멍가게 터에서 당신들의 지난 세월이 어땠을지 가만히 생각해본다. 속으로나마 조용히 인사를 드리고 싶다.

“호연마트 주인내외 어르신! 그동안 참 수고하셨습니다!”

임종진 사진치유공감 아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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