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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대기] 김성용 야탑고 감독, 2002년 ‘8강 기적’에 이은 우승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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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우승을 처음 해서 뒷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성남 야탑고의 초대 사령탑으로 팀을 이끈 20년째 제45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창단 첫 우승을 이끈 김성용(47) 감독은 3일 본보와 통화에서 멋쩍게 웃었다. 그는 축하 인사를 받고 감사 인사를 전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참 힘든 시간이 많았는데, 학교 관계자 분들과 주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아 지금의 영광을 이뤘다”며 “한 주가 시작하는 4일부터 본격적으로 인사를 다니느라 바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성남 지역 고교 팀 최초의 우승인데다가 경기도를 통틀어서도 오랜 만에 우승(2005년 수원 유신고 이후 처음)이라 더욱 기쁘다”고 덧붙였다.
야탑고는 지난 1일 봉황대기 결승에서 충암고를 2-1로 꺾고 전국 대회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04년 황금사자기, 2011년 대통령배, 2013년 청룡기에서 결승에 올랐지만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던 아쉬움을 풀었다. 김 감독은 “예전 결승에 올라갔을 때는 투수가 좋으면 타자가 좋지 않는 등 투타 밸런스가 안 맞았지만 올해 봉황대기에서 밸런스가 잘 맞았다”며 “이번 결승에서는 선수들과 ‘독하게 해보자’고 했다”고 밝혔다.
사실 김 감독은 올해 ‘초록 봉황’을 기대하지 않았다. 선수들에게도 ‘지는 것도 성장 과정으로 여기면서 우리가 왜 졌는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봉황대기에서 경기를 거듭할수록 팀이 다듬어졌고, 선수들도 더욱 똘똘 뭉쳤다.
“모든 선수가 우승 공신”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김 감독은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은 전성재(3년)는 타격 감이나 시즌 타율도 좋지 않아 근심이 가득했는데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까 달라졌다. 2학년 주동욱(내야수)도 원래 주전 멤버가 아니었지만 기대 이상의 역할을 했다”며 “투수는 좌완 이승관(3년)이 당연히 잘해줬고, 1학년 안인산도 위기 때 셋업맨으로 큰 도움을 줬다”고 칭찬했다.
서울고와 8강에서 88개를 던진 에이스 신민혁(3년)을 이튿날 쉬게 한 것도 ‘신의 한 수’가 됐다. 신민혁은 하루 휴식을 취한 덕분에 결승에서 구원 등판해 1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헹가래 투수’의 기쁨을 누렸다. 김 감독은 “(신)민혁이는 시즌 초반 노히트노런을 하는 등 많이 던져 팔 상태가 안 좋았지만 결승에서 큰 일을 했다”면서 “준결승에서 쓰더라도 결승에 올라가면 승산이 없다고 보고 3위를 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아꼈다”고 설명했다.
1995년 실업 팀 제일은행 해체 후 야구를 내려놓은 김 감독은 홍익대에서 코치로 1년간 지도자 경험을 쌓고 1997년 야탑고 지휘봉을 잡았다. 20년 만에 ‘우승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달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2002년엔 13명의 선수로 팀을 꾸려 전국 대회에 나가는 등 해체 위기도 겪었지만 그 해 3학년 오재원(두산)과 2학년 윤석민(KIA)을 필두로 봉황대기 8강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김 감독은 “당시 ‘13인의 전사’라는 표현도 들었다”며 “팀 해체 위기 소리를 들었지만 봉황대기에서 13명으로 일을 내고 다시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고 돌이켜봤다.
김 감독은 “사령탑 초창기에는 열정만 믿고 선수들에게 무리한 운동을 시킨 탓에 결과를 내지 못했다”며 “경력이 쌓이고, 야구 공부도 하면서 체계적인 운동 시스템을 만들어 지속적인 강 팀을 유지하려는 틀을 잡았다. 봉황대기 2연패에 도전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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