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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아직 절반의 연휴가, 책읽기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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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이래 최장 연휴’의 절반이 지났다. 외국어도 독파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긴 연휴의 절반은 지났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닷새가 있다. 남은 기간 쉽게 읽지 못했던 책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책 읽고 쓰는 전문가들에게 연휴 끝에 뿌듯함을 남길만한 책을 추천 받았다.
대다수 온라인 서점이 10일부터 책 배송을 시작하지만 포기하긴 이르다. 교보문고는 남은 기간 내내 전국 32개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예스24는 6일부터 순차배송을 시작한다. 전문가들에게 아래 세 가지에 따라 책 추천을 받았다.
1) 닷새 남은 연휴에 맘먹고 독파할 고전
2) 온 가족이 대화 나눌만한 ‘핫’한 신간
3) 이 사람 뜰 겁니다. 주목하는 신인 작가
정유정 소설가
1.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우주의 탄생과 별들의 삶과 죽음을 담은 책은 워낙 두껍지만, 먼지처럼 태어난 인간의 찰나적인 삶을 생각하게 한다. 소설 쓰는 사람 못지않은 유려한 문장이 좋다. 과학서이지만 문학적 철학적 사유를 느낄 수 있다.
2. 콜슨 화이트헤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영미 도서상을 휩쓴 책이라 ‘어떤 책이길래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하고 읽었는데, 의외로 장르소설, 모험소설의 요소가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 주는 주제를 담고 있는 소설은 인종차별 서사로도, 인종 사냥꾼 얘기로도 볼 수 있다.
3. 소설가 홍준성. 천명관과 김언수의 계보를 잇는, 입담이 엄청 좋은 작가다. 게다가 젊다. 홍준성이 쓴 장편 ‘열등의 계보’는 가풍이 ‘인생무상’인 어느 한 가문의 4대에 걸쳐 찾아 헤맨 열등의 알고리즘을 그린다. 추석 연휴에 우리 가문의 존립에 대해, 때 아닌 위기의식을 느끼면 읽어보시라.
조남주 소설가
1. 조지오웰 ‘1984’.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에서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책. 그런데 남의 나라 일이라고 웃으며 넘길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국정원 댓글공작, 언론장악문건,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 몰랐던 일도 아닌데 뉴스를 보면서 새삼 매번 놀란다. 디스토피아는 의외로 가까이 있다.
2. 최지은 ‘괜찮지 않습니다’. 연휴 동안 어떤 파일럿 프로그램이 등장할지, 인기 예능프로그램이 스페셜 편성될지 기대되기보다 두렵다. 여성을 꼼꼼히 뜯어보고 점수 매기고 대상화하고 배제하는 방송을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보고 싶지는 않다. 너무 익숙해진 일상과 대중문화 속 여성혐오를 말하는 책.
3. 소설가 김혜진. 단편집은 쉬엄쉬엄 읽는 편인데 김혜진 작가의 ‘어비’는 단숨에 읽었다. 넓으면서 예리하고 냉정한데 유머러스한 소설들. 최근작 ‘딸에 대하여’는 어느 날 딸과 딸의 동성연인과 같이 살게 된 엄마의 이야기다. 인물들이 모두 이해되면서도 안타까워 읽는 내내 한숨을 쉬었다. 김혜진 작가의 다음 소설이 궁금하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1.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죽음에 대한 이 얇은 책은 죽을 때까지 다시 읽게 될 책이니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긴 책일지도 모른다. 명절 연휴에 하필 죽음에 대한 책이라니. 그러나 평소에는 매일 조금씩 죽어가느라 경황이 없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는데,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언제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죽어감을 멈출 수 있단 말인가.
2. 황석영 ‘수인’(1,2권). 제목이 '수인'인 것은 그가 스스로 갇힘으로써 더 크게 열고 나오기를 원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감옥의 이름은 '역사'다. 이런 식으로 살고 썼던 작가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상황이 달라졌으니 그의 삶을 그대로 반복할 수는 없겠으나, 거인의 어깨 위에서 출발하는 뒷세대에게는 또 그 나름의 책임이 주어질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갇혀야 비로소 열고 나올 수 있을까.
3. 김상혁 시인. 독서시장에서 좋은 시집들이 많이 읽히고 있지만 어떤 시집은 지금보다 좀 더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1년 전에 나온 그의 두 번째 시집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에는 매혹적인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시가 꼭 이야기(서사)를 담을 필요는 없지만, 이야기를 할 거라면 바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한 시집이다. 타인의 기쁨과 슬픔에 진실한 관심이 없으면 이야기가 발생하지 않지만, 단지 그것만 있으면 예술로서의 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는 다 해낸다.
박준 시인
1.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전 10권). 1993년 1권 남도답사로 시작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한반도 곳곳을 돌아, 10권 서울까지 왔다. 반갑게 귀향을 하는 마음으로 혹은 쓸쓸하게 귀양을 가는 마음으로 읽어도 좋을 책.
2.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82년에 태어난 김지영. 이 주인공을 통해 작가는 우리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숱한 부당함을 고백하고 또 고발한다. 이때의 82년은 통일신라의 시기인 882년이 아니고 구한말인 1882년도 아니다. 1982년이다. 처참하다.
3. 최지인 시인. 절망을 절망이라 말하는 시인의 정직함에는 정한 아름다움이 곧잘 스며드는 법이다. 첫 시집 ‘나는 벽에 붙어 잤다’가 최근 나왔다.
박형욱 예스24 MD
1. 양정무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1~4권). 너무 어려워서 혹은 방대해서 가까이하기 어려웠던 미술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는 책이다. 예술뿐 아니라 역사, 정치, 경제 등을 아우르는 접근으로 인류사를 읽는 복합적인 눈을 가질 수 있다.
2.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9,10편). 이 책 읽는데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할 것 같지 않다. 읽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기분을 느낄만한, 읽은 후에는 전혀 다른 서울을 만나게 해줄 책이다. 추석 연휴, 가족들과의 도시여행을 계획해볼 수도 있을 듯.
3. 박숙자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책에 대해, 생활 문화사에 대해 관심을 둔 독자라면 눈 반짝이며 읽을만한 저작을 선보인다. ‘책읽기’로 사회, 문화를 읽어내는 시각이 흥미롭고, 그것이 나아가 지금 우리의 ‘책읽기’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의 글 속에서는 책도, 책을 읽는 그들도, 우리도, 모두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듯하다. 대표작은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속물 교양의 탄생’.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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