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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그녀’ 성공은 예고편… 동남아는 한국 영화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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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에 영화 수출·합작 등 활발
中 한한령 이후 새 성장동력으로
인구 4위 인니는 최고 핫한 시장
제작사 CJ E&M·쇼박스도 진출
연간 관람횟수 0.4회 성장여지 커
# CJ E&M이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제작사와 합작한 공포 영화 ‘사탄의 숭배자’가 최근 410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인도네시아 영화 중 역대 4위에 해당하는 흥행 성적이다. 지난 11일 열린 인도네시아 최고 권위의 영화 시상식에서는 13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촬영상, 미술상, 시각효과상 등 7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일본과 말레이시아, 폴란드 등 45개 국가와 판권 수출 계약도 맺었다.
# 베트남에서는 역대 박스오피스 흥행 10위권에 한국 영화가 3개나 올라 있다. ‘수상한 그녀’를 리메이크한 ‘내가 니 할매다’(2015)가 2위, 베트남과 한국의 첫 합작 영화인 ‘마이가 결정할게2’(2014)가 3위, ‘걸 프롬 예스터데이’가 지난 7월 개봉해 크게 인기를 끌며 역대 흥행 7위에 새로 진입했다.
세계 2위 영화 시장인 중국의 한한령에 가로막힌 이후 동남아시아가 한국 영화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중 갈등은 해소 단계에 접어들고 있지만, 다른 업종들과 마찬가지로 영화계 역시 정치적 이슈에 민감하고 규제가 심한 중국 시장의 불안정성을 깨닫게 됐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게 동남아 시장이다. 단순히 중국 시장의 보완재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미래 시장이다.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인도네시아
동남아 중에서도 인도네시아는 요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나라다. 올해 CJ E&M은 ‘사탄의 숭배자’ 외에도 한국 영화 ‘수상한 그녀’를 리메이크한 ‘스위트 20’을 박스오피스 7위에 올려놨다. ‘스위트 20’은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는 외국 영화 원작임에도 인도네시아 영화 시상식 9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지난해 개봉한 첫 합작 영화 ‘내 마음의 복제’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받으며 현지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CJ E&M 인도네시아 사업 부문 관계자는 “양국 합작 영화의 성공이 잇따르면서 인도네시아 제작자들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해 제작사, 배급사 등과 협업을 논의하는 등 공동 제작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CJ E&M은 2013년 ‘늑대소년’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영화 배급 시장에 진출해 총 35편의 한국 영화를 소개했고, 4편의 로컬 영화를 제작했다.
쇼박스가 첫 동남아 진출국으로 택한 곳도 인도네시아다. 내년 초 첫 합작 영화 ‘포에버 홀리데이 인 발리’를 선보인다. 한국의 아이돌 스타가 인도네시아 대학생의 도움으로 발리를 여행하는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아이돌그룹 엠블랙의 천둥과 인도네시아 10대 스타 케이틀린 할더맨이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쇼박스는 “현지에서 지지도가 높은 장르인데다 K팝의 인기를 반영한 캐스팅이라는 판단에 공동제작에 나서게 됐다”며 “앞으로도 동남아 현지 파트너들과의 프로젝트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극장 사업자들의 발걸음도 빠르다. 인도네시아에선 현지 사업자 ‘21시네마’가 수십 년간 스크린을 독점해왔다. CGV는 공격적인 투자를 펼쳐 올해 극장 사업자 2위로 올라섰다. CGV의 진출로 전체 스크린수도 급증했다. 앞서 중국과 베트남 등에 극장을 연 롯데시네마도 인도네시아와 미얀마에 새로 진출, 한국 영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점유율 확대를 꾀하고 있다. 콘텐츠뿐 아니라 인프라까지 진출하는 전략이다.
한국 시장 포화, 동남아 시장 급성장
이처럼 한국 영화 업계가 해외로 눈을 돌리는 건 한국 영화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는 2014년 연 매출액 2조원대에 올라선 이후 정체 상태다. 연간 관객수도 2억명에서 늘지 않고 있다. 1인당 연평균 관람횟수는 4.2회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면 핵심 관객층인 20~30대 인구는 줄어들고 있어 미래 전망이 어둡다. 영화 업계는 해외 진출을 ‘야심’보다는 ‘생존 전략’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남아는 투자 가치가 큰 영화 시장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수만 세계 4위에 해당하는 2억5,830만명이고, 전체 인구의 절반이 25세 이하 청년층이다. 성장 잠재력이 크다. 스크린수도 2012년 710개에서 지난해 1,300개로 늘었다. 연간 총 관객수 또한 2012년 5,540만명에서 지난해 1억800만명으로 5년 사이 두 배 폭증했다. 시장 규모는 지난해 2억8,080만달러로 2012년 대비 1.8배 늘었다. 그럼에도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횟수는 0.4회에 불과하다. 아직도 성장할 여지가 크다.
베트남은 9,500만명 인구를 바탕으로 동남아 국가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나라다. 2012년에 15편에 불과했던 현지 영화 제작 편수가 지난해 41편까지 늘었고, 영화 시장이 해마다 20%씩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는 연 매출 1억2,700만달러로 2012년 대비 2.6배 증가했다. CGV와 롯데시네마가 일찌감치 진출해 극장 인프라도 탄탄하다.
CJ E&M 관계자는 “동남아는 영화 시장 규모에 비해 뛰어난 창작자와 원천 스토리가 부족하다”며 “한국 영화의 창의력과 그간 축적된 노하우를 기반으로 각 나라별 정서에 맞는 현지 영화를 제작하는 전략이 성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대표적 성공사례가 ‘수상한 그녀’다. 이 작품은 중국에 이어 베트남,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에서 차례로 리메이크되며 한국 영화 업계의 해외 진출에 선봉장 역할을 했다. 진출할 때마다 각 국가의 정서에 맞는 접근법을 구사했다. 중국에선 뮤직비디오 같은 구성으로 영상미에 공을 들였다. 코미디 장르가 강세인 베트남에선 현지 유머 코드를 적극 활용했다. 이슬람 문화권인 인도네시아에선 남녀의 음주 장면 등을 수정했다. 콘텐츠 현지화 전략에 따른 과감한 각색은 흥행으로 이어졌다. 5개 국가 박스오피스 매출액만 780억원이다. 완성작 수출(16개 국가)과 판권 판매(3개 국가)를 합친 매출액 4억원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성과다.
CJ E&M은 더 나아가 현지 콘텐츠 개발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 영화 ‘사탄의 숭배자’가 그런 경우다. CJ E&M 관계자는 “해외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나 자국 콘텐츠 보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장기적으로 현지 시나리오 비중을 늘려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동남아를 너머 눈독 들이고 있는 시장은 터키다. CJ E&M은 올해 5월 현지 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다음달에 첫 합작 영화 ‘이별 계약’을 개봉한다. 관계자는 “터키는 세계 2위 드라마 수출국인 콘텐츠 강국으로,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과 유럽 진출의 교두보가 될 매력적인 시장”이라며 “‘수상한 그녀’와 ‘스파이’의 터키판을 기획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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