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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의 입기, 읽기] 롱패딩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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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을 누벼 안에 솜 같은 걸 넣는 겨울용 방한복은 오래 전부터 있긴 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퍼퍼(Puffer) 혹은 퀼티트 다운 재킷(Quilted Down Jacket) 등으로 부르고 한국에서는 패딩이라고 하는 옷의 유래는 확실하게 있다. 1930년대 에디 바우어(Eddie Bauer)라는 사람이 겨울 낚시를 갔다 저체온증으로 죽을 고생을 한 다음 거위 털을 넣은 패딩을 개발했다고 한다.
가로줄 혹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누빔 자국이 있고 올록볼록해서 모 타이어 회사 마스코트 같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듣는 패딩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멋진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서 멋지다는 말의 의미 자체가 달라지게 된다. 즉 기능성을 일종의 장식으로 가져오는 것을 넘어 이제는 실용적인 옷 그 자체가 패셔너블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지극히 실용적인 옷이 멋지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변화가 찾아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스포츠 스타가 있다. 인기 프로 스포츠 스타들이 경기장에서 인터뷰를 하거나 잠시 주변을 돌아다닐 때 스포츠 양말에 슬리퍼를 신고 커다란 롱패딩을 입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이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면서 사람들은 절제와 엄격함 대신 실용과 편안함이 만들어 내는 멋에 익숙해지게 된다.
그리고 최근의 큰 변화는 스트리트 패션의 부상이다. 오랜 기간 지속돼 온 착장의 룰을 지키기 보다는 실용과 파격을 선호하는 거리 패션이 하이 패션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멋진 옷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미감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 요란한 프린트 티셔츠와 후드, 오버사이즈 패딩과 운동화가 고풍스러운 디자이너 하우스의 캣워크에 등장하게 됐다.
이런 경향은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옷을 입는다기 보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는 ‘난 상관 안해(I Don’t Care), 각자 잘하자(Self-Care)’라는 시대의 흐름에서 왔다. 그러면서 한 때 패션 테러리스트의 조합이라고 여겨진 것들이 이제는 새로운 신선함의 아이템이자 자신을 보다 자신 있게 드러내는 아이템이 되고 있다.
이렇게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패딩은 오랫동안 사랑 받아 온 제품이다. 모직 코트 같은 옷으로 감당하기엔 이곳의 겨울 바람은 너무나 차갑다. 그렇기 때문에 캐주얼 차림은 물론이고 정장 위에도 후드에 털이 달리고 풍선처럼 빵빵한 패딩을 입었다.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서구식 정장이 어차피 이곳의 날씨를 고려해 만든 옷도 아니고 적당하게 조합해 새로운 룰을 만들어 정착하면 되는 일이다.
외국에서 스포츠 스타의 모습을 보며 패딩이 패셔너블하게 받아들여졌듯, 한국에는 아이돌 스타가 있다. 추운 겨울에도 얇고 가벼운 무대 의상을 입기 때문에 잠깐 돌아다니려 하면 뭐라도 입어야 하고, 완벽하게 세팅한 화장이나 옷 매무새가 흐트러져도 안 된다. 그런 용도에 오버사이즈 롱패딩이 딱 맞다. 외국의 퍼퍼 유행과 약간 다른 줄기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패딩을 입는 방식은 실용성이라는 공통점 아래서 하이 패션의 흐름과 만났다.
이런 따뜻한 옷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 또 있는데 바로 교복을 입는 학생들이다. 단일화된 교복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견이 있겠지만, 여하튼 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이 교복으로 겨울을 보내려면 적합한 대책이 필요하다. 교복 위에 입는 방한 의류 유행은 더플 코트에서 시작해 패딩 점퍼, 그리고 이제 롱패딩으로 변했다. 보다시피 점점 더 가볍고 따뜻한 옷으로 바뀌고 있다. 단순한 유행의 흐름이라기 보다는 진화하고 있는 효과적 겨울 나기 전략처럼 보인다.
물론 겨울 패딩은 비싼 편이고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과시욕에 따른 부작용은 패딩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교육을 통해 해결해야 할 소양의 문제다. 그리고 비용 부담이 문제라면 저렴하게 보급할 방법을 만드는 게 ‘등골 브레이커’니 하는 말을 붙여 추위를 막는데 하등 도움도 안될 죄책감 같은 걸 불어 넣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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