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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만든 약의 유혹... 죽음의 문턱서도 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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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친구가 건넨 약이 구렁텅이로…
출산 후 통증 완화해준다고 복용
알고보니 한때 필로폰 대용 약물
“옥살이ㆍ이혼 후에도 마약에 손 대
10년 끊었지만, 몸은 기억하더라”
#2 끝없는 자기 합리화 때문에…
필로폰 투약 후 과속하다 큰 사고
장애 3급 판정에도 의존증세 심각
“온갖 이유를 다 대면서 약을 하니
끊겠다고 해도 가족들이 안 믿어”
이모(44)씨는 올해 군 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아들(23)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려고 한다. ‘엄마는 마약과 약물에 빠졌던 사람’이라고. 재작년 아들이 입대하기 전 털어놓으려 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수년 전 자신의 마약 범죄 사실이 낱낱이 적힌 공소장을 아들이 안방에서 본 것으로 짐작한다. 모르는 척 하고 있는 아들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다.
이씨는 20대 초반 아들을 낳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 2년 동안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통증을 완화해줄 것이라며 친구가 건네 복용한 ‘누바인(염산날부핀)’이 그를 구렁텅이로 빠트렸다. 누바인은 향정신성 의약품이자 응급환자용 진통제로, 환각성도 있어 한때 필로폰 대용 약물로 쓰였다. 누바인에 중독된 이씨는 “그게 없으면 벽을 ‘쾅쾅’ 치고 방바닥을 구를 만큼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3년 동안 그 약을 끼고 살았던 이씨는 결국 처방전 없이 누바인을 장기간 사용한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 8월의 집행유예를 받았다.
약물 중독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선고 보름 뒤 이씨는 필로폰을 접하게 됐다. 친구가 물에 탄 필로폰을 줬다. 이씨는 누바인인 줄 알았다고 했지만 법정에 또 섰다. 결국 징역 8월의 실형이 선고됐고, 앞서 집행유예 형량까지 더해져 1년4개월 동안 옥살이했다.
이씨 남편은 누바인에 더해 필로폰 투약 사실까지 알게 되자 격분했다. 수감 중인 이씨에게 면회도 가지 않았다. 남편은 2002년 겨울 출소한 이씨에게 이혼 요구서를 들이밀었다. 이씨는 거부할 수 없었다. 이씨는 이사를 갔고, 연락처도 바꾸면서 약을 끊고 보험설계사로서 새 삶의 의지를 키웠다. 그러나 이씨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나면서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씨에게 돈을 조금씩 빌려간 친구는 필로폰 주사기로 갚으려 했고, 2014년 9월 이씨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또 다시 빨려 들었다. 마약의 늪에서 벗어나려 노력한 10여년 세월이 처참히 무너졌다. “세월이 그렇게 지나도 그게 눈 앞에 보이니 심장이 뛰었다. 몸의 기억은 강력했다.”
김모(50)씨도 투약과 참회를 반복하고 있다. 과거를 지우려고 처절하게 살고 있다. 1993년 어느 새벽, 비가 세차게 내리던 경기 이천시 한 도로에서 큰 교통사고가 났다. 25세 남성은 그날로부터 두 달이 지나고서야 병원 중환자실에서 겨우 눈을 떴다. 가슴 밑으로는 몸이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소변도 호스로 빼냈고, 밥도 혼자 먹을 수가 없었다. 몸무게는 38㎏까지 빠졌다.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그의 팔뚝 혈관에는 주삿바늘이 하루에 서너 번씩 꽂혔다. 남성은 믿기 힘든 현실을 직시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스스로를 약물 의존자라고 밝힌 김씨를 지난달 26일 서울 선유도역 인근 한 식당에서 만났다. 그는 사고 당일의 악몽을 떠올렸다. “필로폰을 투약하고 환각 상태로 차를 거칠게 몰았어요. 속도 계기판 바늘이 튕겨져 나갈 만큼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빨리 내달리는지도 그때는 몰랐어요.” 김씨는 여자친구가 살던 서울 흑석동에서 마약에 취해 강원 원주시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사고 후유증으로 장애3급 판정을 받은 김씨는 13년간 병원을 드나들며 고통스러운 재활치료를 받았다.
김씨가 약에 빠진 계기는 이렇다. “동네 선배가 소개한 부산 사는 형이 알고 보니 약 파는 사람이었어요. 처음에는 열 번 정도 공짜로 주더니 나중에는 ‘지금 물건이 없다. 돈이 좀 필요하다’라며 본격적으로 팔았어요.” 한창 때는 한번에 무려 10g(1회 투약량은 0.03g)을 사두고 기분 내킬 때마다 나눠서 투약할 때도 있었다.
죽음의 문턱으로 떠민 마약을 김씨는 멀리하지 못했다. 그는 교통사고 뒤에도 네 번이나 징역형을 받았다. 약물 의존증세가 심각했던 김씨는 멈출 수 없었다. 이씨는 심지어 마약만은 손대지 말라던 아버지가 9년 전 세상을 등진 날에도 그랬다. 이씨는 “이래서 약이 무서운 겁니다.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를 하게 만들어요. 슬프면 슬퍼서, 기쁘면 기뻐서 해야 한다고. 온갖 이유를 다 대면서 약을 하니까 끊겠다고 선언해도 가족들조차 믿어주지 않게 됩니다.”
그는 6개월 전 자신의 마약 의존성을 인정했다. 약을 끊으려는 사람들 모임에 참여하면서 치료의지를 키우고 있다. 김씨는 “악마가 만든 약(필로폰)과 단절하고 미국의 누나 집에 가보고 싶다. 거기서도 마약할 것 같다고 절대 못 오게 했었다”고 말했다. 그 자신도 마약을 안 하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아들이 약에 빠질 때마다 부엌 식탁에 앉아 눈물을 훔쳐낸 어머니(74)의 뒷모습과 마약 사이에서 김씨는 또 흔들릴지 모른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글 싣는 순서>
1 도돌이표: 절망과 참회의 악순환
2 상상 초월: 청정하지 않은 대한민국
3 좀 이상해: 개운치 않은 수사와 재판
4 마약 양성소: 전문가 키우는 교정시설
5 보름 합숙: 쉽지 않은 재활의 길
6 갈 곳이 없다: 취업과 치료 거부하는 사회
7 일본 가 보니: 민간이 주도하는 재활센터
8 재사회화: 극복하고 있어요 응원해 주세요
특별취재팀=강철원ㆍ안아람ㆍ손현성ㆍ김현빈ㆍ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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