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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을(乙)의 담합, 가격 협의 없으면 제재 안 한다

입력
2018.01.22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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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하도급거래 공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하도급거래 공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은 중소기업들의 공동사업은 담합 제재를 하지 않기로 했다. 협동조합 설립과 원ㆍ부자재 공동 구매 등을 최대한 권장해 을(乙)인 중소기업이 갑(甲)인 대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공정위 취지다.

21일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중소기업협동조합 공동사업 가능행위 예시’안을 제출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중기협동조합의 공동사업 중 어디까지를 담합금지 규정의 예외로 인정할지 구체적 사례를 열거한 것”이라며 “관련 개정안이 통과되면 고시로 제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은 중소기업들이 협동조합(비영리법인)을 결성해 공동구매ㆍ생산ㆍ판매 등 공동사업(협동)을 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은 사업자단체의 공동행위(담합)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중소기업이 조합을 결성해 공동사업을 추진하다 담합으로 처벌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전체 중소기업(354만개) 중 조합에 가입한 기업은 2.0%에 불과한 상태다.

이에 공정위는 중기협동조합의 공동사업에 대해서는 담합 제재를 적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전해철 의원안)을 추진해 왔다. 작년 말 여야도 이에 잠정 합의했다. 이후 공동사업이 너무 폭넓게 인정되면 “담합에 따른 가격인상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번에 담합 예외 공동사업의 구체적 예시를 제시한 것이다.

예시안에 따르면 먼저 공정위는 조합이 원ㆍ부자재를 공동으로 구매하는 행위는 담합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 또 ▦물품을 공동보관ㆍ운송하고 ▦인력ㆍ시설 등을 공동으로 사용해 물품을 생산하는 행위도 허용하기로 했다. 이들 행위의 담합 여부는 경쟁제한(수요 측 시장지배력 증가에 따른 생산ㆍ거래량 감소)과 효율성 증대(가격인하)를 고려해 판단하는데, 그간 공정위는 대부분 "담합 소지가 있다"며 허용하지 않았다. 작년 한국박스산업협동조합(골판지상자 제조사)도 원재료(원단)와 최종재(상자) 시장을 동시 장악한 대기업에 맞서 원단 공동구매를 추진하다 불허됐다.

물론 조합이 공동으로 판매가격을 협의ㆍ결정하는 행위는 지금처럼 담합으로 계속 제재한다. 조합이 공동으로 생산량을 줄이거나 판매가를 결정하는 경우 등이다. 그러나 조합이 공동 생산한 물품의 판매 촉진을 위해 공동판매장을 운영하거나 공동판촉 활동을 펴는 행위 등은 담합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

공정위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조합의 공동사업이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종ㆍ지역별 조합 결성→공동사업→규모의 경제→중복공정 간소화 및 비용절감→경쟁력 강화’의 선순환도 예상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최근 “강한 중소기업이 많은 나라들의 공통점을 보면 협동조합ㆍ클러스터 등을 통한 중기간 네트워크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미국ㆍ독일ㆍ일본 등은 조합의 공동사업에 대한 담합 예외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일부 중소기업들은 공동판매까지 허용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반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동구매ㆍ물류 등을 통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해도 판매 단계에서 조합원들이 ‘각개전투’ 가격 경쟁을 하면 비용절감 효과가 소멸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조합의 가격협의(공동판매)는 담합이 아닌 ‘생존’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환 부산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중소기업이 제 값에 물건을 팔 수 있다면 고용ㆍ세금 증대 효과도 더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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