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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청와대 뜻대로... 원세훈 재판 전원합의체에

입력
2018.01.23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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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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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선거법 위반 결국 파기환송

고법선 25개월간 결론 안 내려

정권 바뀐 뒤에야 다시 유죄 인정

2012년 국가정보원 정치ㆍ대선 개입사건 항소심 선고를 전후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와 박근혜 정부 청와대간 석연찮은 교감이 22일 문건으로 드러나 롤러코스터 같은 댓글사건 재판 경과와 판단 대목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18대 대선 국면에서 벌어진 국정원 댓글부대 운용의 내부 몸통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14년 9월 11일 1심에서 국정원법 위반 혐의(정치 관여)만 유죄가 인정돼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핵심인 선거 개입 혐의는 무죄가 났다. “국정원 직원들이 여당 지지, 야당 비방활동을 하긴 했지만 특정 후보를 당선ㆍ낙선시키는 선거운동의 목적성, 계획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당시 “술은 마셨는데, 음주운전은 아니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는 정권의 정통성을 상실하지 않아 안도했다. 이미 박근혜 정부 국정원은 2013년 4월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댓글수사 압수수색 등을 방해하고 직원의 법정 위증 리허설도 하면서 원 전 원장의 선거법 ‘무죄’를 받아내려 총력을 다해 뛰었다.

그러나 1심 선거법 무죄 판결에도 불안을 떨칠 순 없었던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2015년 2월 9일 서울고법의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문건을 보면, 청와대는 법원행정처에 ‘항소 기각’을 기대한다며 선고 전망을 문의했다. 이에 행정처는 “재판부 의중을 우회적 파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1심과 달리 예측이 안돼 불안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2심은 청와대가 우려했던 선거법 위반까지 인정했다. 원 전 원장이 실형 3년을 받고 법정 구속되면서 청와대 입장에선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동시에 세간의 시선은 청와대로 쏠렸다. 고법은 1심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심리전단 안보5팀 직원의 이메일 첨부파일(시큐리티ㆍ425지논)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이는 선거법 위반 유죄 판단에 핵심 증거로 작용했다.

청와대는 매우 당황했다.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은 행정처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우 전 수석은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으면 상고심을 조속히 진행하고, 대법관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달라”고 했다. 항소심 선고 하루 만에 작성된 행정처 문건에는 ‘대법원에 기록 접수 전이라도 특히 법률상 오류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며 신속 처리’라고 적힌 것을 보면 행정처는 각별히 신경 쓴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청와대 뜻대로 원 전 원장 사건은 그 해 4월 10일 전원합의체(주심 당시 민일영 대법관)에 실제로 회부됐다. 드러난 문건 속 정황에 비춰 대법원이 청와대 의중을 살펴 전원합의체 회부 요구를 들어준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그 해 7월 대법원은 ‘청와대 희망대로’ 대법관 13명 전원일치로 두 파일 속 계정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며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행정처 문건에는 ‘두 파일로 인정되는 사실관계는 너무나 구체적’이라고 돼있다. 선거법 위반 혐의의 핵심 증거를 빼라는 취지였다.

그 뒤 석연찮은 일은 또 벌어졌다. 대법원에서 사건을 받은 서울고법(부장 김시철)은 무려 25개월이나 결론을 내지 않았다. 파기환송심 치고는 이례적으로 오랜 기간이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이 파면 당하고 정권이 바뀐 지난해 8월이 돼서야 고법은 다시 선거법 유죄를 인정했다. 두 파일의 증거능력은 인정되진 않았지만 검찰이 제시한 추가 증거가 영향을 줬다. 원 전 원장이 불복하면서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판사 출신의 중견 변호사는 “문건 내용과 선고결과만 보면 대법원이 정권에 굴종했다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라고 전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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