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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사건 정점에 박근혜”... 뒤집힌 1심

입력
2018.01.23 17:06
6면

‘블랙리스트’ 항소심 선고

조윤선 징역 2년 법정구속

김기춘 징역 4년… 1심보다 중형

재판부 “다른 견해 표현한 문화를

억압ㆍ차별하면 전체주의 길 열려”

박근혜의 직권 남용ㆍ위법 행위 질타

지난해 1월 20일 김기춘(왼쪽)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자동차를 타고 가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월 20일 김기춘(왼쪽)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자동차를 타고 가고 있다. 뉴시스

‘문화ㆍ예술계 지원배제(블랙리스트)’ 사건 핵심 피고인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항소심에서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 받았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모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1심 판결을 뒤집고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사건 ‘정점’에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조영철)는 23일 “정부가 자신과 다른 견해를 표현하는 문화를 억압하고 차별하는 순간 자유민주주의 길은 퇴색되고 전체주의 길이 열린다”며 김 전 실장에게 1심(징역 3년)보다 무거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조 전 수석에게는 징역 2년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1심에서 무죄로 봤던 부분(김기춘 1급 공무원사직관련 직권남용 등ㆍ조윤선 블랙리스트관련 직권남용 등)을 대부분 유죄로 판단하면서 형이 높아졌다. 나머지 피고인들은 1심과 같은 형을 선고 받았다.

박 전 대통령 공모 여부에 대해서도 소상히 밝혔다. 재판부는 “문화 예술계가 좌편향 돼 있어 바로 잡아야 한다는 대통령 인식에 따라 좌파에 대한 지원 배제 정책 기조가 형성됐다”며 “그에 따라 김 전 실장이 지원 배제 계획과 실행방안을 마련했고 대통령은 관련 보고를 받고 승인했다”고 짚었다. 블랙리스트 사건 ‘정점’을 김 전 실장으로 한정했던 1심과 달리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이 공범이라고 적시했다.

1심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관련 문건을 보고 받고 승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도 공모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었다. 박 전 대통령이 2013년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대수비)에서 ‘국정지표가 문화융성인데, 좌편향 문화ㆍ예술계가 문제가 많다’는 취지로 발언한 점, 2015년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비서관에게 고교 은사가 보낸 편지를 주며 “‘창비’ ‘문학동네’ 등 문예지는 예산이 증액됐는데 보수 문예지는 예산이 축소됐으니 해결하라”고 지시했다는 점 등을 인정하고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보고 내용이 어떤 절차와 방식을 거쳐 어느 정도까지 대통령에게 보고됐는지 알 수 없다”고 봤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언급한 ‘좌파 배제, 우파 지원’을 “보수주의를 표방해 보수 성향 국민의 지지로 당선된 박 전 대통령이 정부의 정책기조로 강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밝혀 논란을 빚었다.

항소심에서는 박 전 대통령 행위가 헌법과 법률 위반에 해당된다며 1심 논리를 180도 뒤집었다. 재판부는 “정부 비판적인 개인과 단체에게 권력의 최고 정점인 대통령과 그 보좌진이 직접 나서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장기간 지원배제 불이익을 주는 등 위법행위를 한 것은 문화 예술계 뿐 아니라 국정 전 분야 통틀어서도 전례 없는 일”이라며 “국정 최고책임자의 직권을 남용한 행위인 동시에 위헌 위법 부당한 행위”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박 전 대통령 주요 혐의 가운데 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 혐의를 상급심 법원에서 명시적으로 유죄 판단한 만큼 막바지 단계인 박 전 대통령 1심 재판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5일 열리는 박 전 대통령 재판에 검찰이 이번 판결문을 추가 증거로 제출해 혐의 입증에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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