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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원 값어치 할까? 영화 속 비틀스의 '골든 슬럼버'

입력
2018.02.08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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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골든 슬럼버’에서 택배기사 건우(강동원(가 살인사건에 휘말려 놀라는 모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골든 슬럼버’에서 택배기사 건우(강동원(가 살인사건에 휘말려 놀라는 모습.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위기의 비틀스, 그리운 우정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의 3대 명반으로 8집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1967)와 흔히 ‘화이트 앨범’이라 불리는 10집 ‘더 비틀스’(1968), 12집 ‘애비 로드’(1969)가 꼽힌다.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등 네 멤버가 횡단보도를 걷고 있는 재킷 사진으로도 유명한 ‘애비 로드’엔 특히 사연이 많다. 비틀스의 마지막 녹음 결과물인 데다 구성이 독특하다. ‘애비 로드’는 LP나 테이프로 치면 B면에 실린 9번 트랙 ‘유 네버 기브 미 유어 머니’부터 16번 트랙인 ‘디 엔드’가 메들리로 엮였다. 기승전결을 갖춰 한 곡처럼 이어지는 점이 특이하다.

메들리 중 귀 기울여야 할 곡은 ‘골든 슬럼버’다. 매카트니는 1분 31초 분량의 곡에서 “한때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었어”란 구절을 네 번이나 반복한다. 매카트니가 가사를 썼는데 멤버들의 불화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빠져 해체 위기에 놓인 팀에 대한 안타까움처럼 들린다. 황금의 선잠(Golden Slumbers)이란 뜻의 노래에서 네 사내가 수년간 쌓아온 우정과 영광은 일장춘몽처럼 비쳐 더 아련하다. 이 곡은 “매카트니가 비틀스 초기 그의 아버지 집에 놓인 옛 자장가(‘크래들송’) 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뒤 뒤늦게 녹음한 작품”(음악평론가 김작가)이다.

영국 밴드 비틀스의 앨범 '애비로드' 수록곡인 '골든 슬럼버'가 동명 영화에 활용됐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영국 밴드 비틀스의 앨범 '애비로드' 수록곡인 '골든 슬럼버'가 동명 영화에 활용됐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사용료 2억원 이상… ‘명품 조연’ 출연료 수준

비틀스의 ‘골든 슬럼버’를 활용한 동명 한국 영화가 14일 개봉한다. 일본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느닷없이 요인 암살범으로 지목된 택배기사 건우(강동원)가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담겼다. 7일 언론 시사를 통해 베일을 벗은 영화에는 ‘골든 슬럼버’의 멜로디가 흐른다. 건우가 과거를 떠올릴 때나 그의 도주를 돕는 동창과 엮이는 장면에서다. 비틀스 노래가 한국 영화에 합법적으로 사용되기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틀스의 노래는 사용 허가가 잘 나지 않을뿐더러 음악 사용료가 높기로 유명하다. ‘골든 슬럼버’ 제작사인 영화사 집은 콧대 높은 영국 애플코퍼레이션(비틀스 저작권 관리 회사・미국 정보통신기업 애플과는 무관)에 어떻게 곡 사용 승낙을 받아냈을까. ‘골든 슬럼버’ 제작 관계자에 따르면 ‘골든 슬럼버’ 음악 사용료로 2억원 이상 들었다. ‘명품 조연’이라 불리는 주연급 배우들의 한 작품 ‘몸값’이 쓰인 셈이다. 유명 팝송이 영화에 삽입될 때 대체적으로 지급되는 사용료(3,000~5,000만원대) 보다 8배 이상 높다. 한국 영화 사상 한 곡 기준 가장 높은 저작권료가 쓰였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유명 영화음악감독에 따르면 국내 히트곡은 1,000만원대에서 사용료가 정해진다.

“원곡과 분위기 비슷하면 사용 불허”

비틀스의 곡 사용 허락을 받아도 활용 규칙이 까다롭다. 원곡은 쓸 수 없다. 영화에는 매카트니의 목소리가 담긴 원곡이 아닌, 가수 강승윤과 이하이가 각각 리메이크해 부른 노래만 나온다. ‘골든 슬럼버’ 관계자는 “비틀스 원곡은 영화에서 쓰인 선례가 없다더라”고 말했다. ‘골든 슬럼버’의 사용 허가는 작곡자인 매카트니가 직접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코퍼레이션은 원곡과 비슷한 느낌으로 리메이크를 하면 곡 사용을 불허한다.

영화계에서 곡 사용료 협상은 창작자(기획사)와 제작사 사이 개별적으로 이뤄진다. 창작자가 곡 사용료 협상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라 곡을 헐값에 넘기지 않아도 된다.

방송에선 체계적 집계 시스템 부재 ‘몸살’

영화와 비교하면 방송에서의 곡 사용료는 턱없이 낮다. 구조의 영향 탓이 크다. 방송에서의 곡 사용료는 개별 협상이 아닌, 방송사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 등 저작권 관리 위탁 단체의 협상으로 이뤄진다. 방송사가 음저협 등에 연간 사용료를 지급하면, 저작권 관리 위탁 단체가 창작자에 사용된 곡 수와 시간 등을 토대로 수익을 나눈다. 사용료는 방송사의 연간 매출 등을 기준으로 책정된다. 지상파 방송사가 저작권관리 단체에 내는 사용료는 각 사별로 수십억 원대로 추정된다.

구조가 이렇다 보니 불합리한 상황도 벌어진다. 15년째 음악 기획 일을 하고 있는 중소 음악기획사 이사는 “KBS, MBC 등 방송사 파업으로 라디오에서 파업 전보다 몇 배 많은 곡을 튼 거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이미 연간 사용료가 정해져 있으니 사용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게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 음악은 셀 수 없이 많다. 사용료 징수의 편리를 위해 저작권 관리 단체에서 방송사와 단체 협약을 하는 방식을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방송사가 지급하는 사용료를 더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음저협에 따르면 지난해 방송사가 낸 연간 사용료는 방송사 매출의 0.63%다. 2.5%인 프랑스의 4분의 1수준이고, 1.0%의 일본과 비교해도 낮다.

부실 집계 문제는 더 심각하다. 프로그램이 많아 사용된 곡 집계가 빠지는 일이 잦고 사용료 분배 관련 고소와 고발이 끊이지 않는다. 방송에서 쓰인 곡 집계를 모니터링 업체에 의존하는 탓이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미생’, ‘응급남녀’ 등 11개 드라마에서 사용된 곡의 저작권료가 창작자에 지급되지 않아 문제로 지적됐다. 음저협은 “케이블 방송사의 140여개 채널 중 프로그램에 사용된 곡명이 적힌 큐시트(진행표)를 제공하는 곳이 40개도 안 된다”고 밝혔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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