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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재개] “때밀이라고요? 이젠 고소득 전문직 ‘목욕관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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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목욕은 언제인가요?" 이 질문이 생경한 만큼 '잘 씻는 것'은 삶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화두였을지도 모릅니다. '목욕재개'는 ‘목욕을 다시 이야기한다’는 의미로, 이제 막 입문한 '초보 목욕커'의 눈으로 바라본 목욕 세계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대중목욕탕, 찜질방, 온천 등을 망라한 한국의 목욕 문화를 탐구하고, 습관적으로 씻는 목욕이 아닌 '더 잘 씻는 법'을 고민합니다.
20년 전만 해도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주는 사람에겐 이름이 없었다. 일터에서 그들은 종종 '때밀이', 조금 친하면 '언니', 혹은 단어도 아까운 듯 '어이!'라는 감탄사로 불리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 기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보람차게 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터.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그 많던 '때 밀어주는 사람'은 이름을 찾고 나서야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다.
시작은 2000년 11월 23일자 본보 ‘독자의 소리'에 실린 글 한 편이었다. “‘때밀이' 호칭 ‘목욕사’ 바꿨으면" 제하의 짧은 글에서 독자 김성규씨는 “직업이 다양화하면서 직업의 명칭도 인격화, 세련화하는 추세”라며 “때밀이라는 호칭을 '목욕사'로 바꾸는 것이 인격적일 것 같다"고 주장했다. 지난한 논의 끝에, 2007년 통계청 ‘한국표준직업분류' 개정안에 ‘목욕관리사'라는 새 이름이 등재됐다.
■ '때 미는 기술' 배우려고 전국에서 모여든 수강생
‘때밀이', ‘나라시', ‘세신사'…. 오래도록 명칭이 정제되지 않은 채 구전되었듯, 기술도 알음알음 전수되던 세신의 세계에도 직업전문학원이 등장했다. 지난 2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중앙목욕관리학원에서는 17년 경력의 조경애(54) 원장이 진행하는 ‘단기 특강'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2인 1조로 조를 이룬 8명의 수강생은 세신사와 손님 역할을 번갈아 가며 때 미는 연습에 한창이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들이 '전문 목욕인'이 되겠다며 강원도와 충청도 등 전국 팔도에서 기차를 타고 학원에 모였다.
때를 잘 밀기 위해 힘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 사람의 때를 온전하게 밀기 위해서 목욕관리사가 숙지해야 하는 연속 동작은 무려 150가지에 이른다. 이 동작은 물 흐르듯 끊기지 않고 이어지며, 한 번 지나간 곳은 다시 되돌아가는 법이 없다. 목 부위를 예로 들면, 왼쪽 귀 뒤부터 시작해 왼쪽 목선, 목 가운데, 오른쪽 귀 뒤, 오른쪽 목선을 지나 막힘없이 쇄골 아래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만 누워 있는 사람은 불편하지 않고, 때를 미는 사람은 힘이 들지 않는다.
'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라는 드라마 ‘미생'의 대사처럼, 세신 미생에게도 현장 경험이 절실하다. 학원 수업 과정을 듣다가도, 조건에 맞는 현장이 생기면 일을 하러 갔다 오기도 한다. 하루 일당을 받으며 대타로 일하는 목욕관리사를 '스피아(여분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spare'에서 유래)'라 하는데, 수습생에겐 한 명이라도 더 밀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된다. 성수기인 겨울철엔 하루 일당이 17만 원 선에 이른다. 수강생 김정훈(37)씨는 "목욕관리사의 공급이 부족해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며 "본업에 구애받지 않고 아르바이트 삼아 일할 수 있어 종종 스피아로 일한다"고 말했다.
마사지나 피부 관리 업계 종사자가 유입되면서 목욕관리업도 조금씩 전문화하는 추세다. 피부 미용을 전공하고 관련 업계에서 오래 일했던 정희경(31)씨는 이날 처음 수업에 참여했다. 정씨는 “피부 미용이든 목욕관리든 모두 몸을 가꾸는 전문 기술이라 생각한다"며 “현장에서 활용해 보기 위해 수업을 등록했다"고 말했다.
능숙해지면 매달 5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낼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난 것도 목욕관리학원이 성황을 이루는 이유다. 업소에 따라 다르지만, 재룟값 등 비용을 제하고도 초보도 월 300만 원 이상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조 원장은 “예전엔 ‘때밀이'라며 낮춰 부르곤 했지만, 세신 기술과 마사지법이 전문화되고 ‘목욕 산업'에 돈을 아끼지 않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목욕관리사도 전문 기술인으로 인정받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엘리트 목욕관리사가 될 거예요" 20대 목욕관리사의 포부
"일할 때는 즐겁고, 노력한 만큼 돈 벌 수 있는데 떳떳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지난 5일 중앙목욕관리학원에서 만난 20대 목욕관리사 정영수(26)씨는 때 미는 법은 물론 스포츠 마사지와 경락ㆍ스팀 마사지까지 배우기 위해 2개월째 수업을 듣는다. 대부분 학원 수강생이 열흘 남짓 단기 특강만 듣고 돈을 벌기 위해 현장에 나가는 것과는 달리, 정씨는 더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기 위해 현장 실습과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2년 넘게 회사에서 조직 생활을 경험했고, 요리 공부도 해봤던 정씨가 결국 안착한 곳은 목욕탕 구석을 지키는 세신 침대였다. 정씨는 "조직에 매이는 것보다 프리랜서처럼 일할 수 있으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좋다"며 "땀을 흘린 만큼 과실을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목욕탕에 나갔을 땐 작은 신장과 왜소한 체구 때문에 손님들의 미심쩍어하는 눈빛과 맞닥뜨리곤 했다. 정씨는 "신체 조건이 좋지 못해 위축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나만의 무기를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내세우는 강점은 섬세함과 서비스다. 건장한 체구의 세신사들이 시원하게 미는 걸 내세운다면, 정씨는 구석구석 꼼꼼하게 살피려고 노력한다. 거기에 마사지를 서비스로 얹어주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손님들도 끝나고 나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간다.
화려하고 멋있는 일을 좇기 쉬운 청춘이 목욕관리사를 업으로 삼는 결정을 하기 쉽지 않았을 터. 정씨는 "원래 실속을 중요시하고,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라 선택이 쉬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평소 직업관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은 없기 때문에 일하면서 즐거울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게 1순위요, 그렇지 않다면 일하면서 즐거움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씨는 "공사장 인부가 없으면 누가 발 뻗고 집에서 쉴 수 있겠느냐"며 "우리 사회가 특정 직업을 천하게 보는 시선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정씨의 목표는 ‘그저 그런 목욕관리사’가 아니라 '엘리트 목욕관리사'로 이름을 떨치는 것이다. ‘엘리트'라고 해서 특별한 자격이 있는 게 아니다. 즐겁게 일하고 연마한 기술로 모든 손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 유명세와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의미다. 사회 통념상 두 단어를 합친 조어가 낯설게 느껴짐에도, '엘리트 목욕관리사'라 또박또박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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