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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장면으로 남은 ‘우리 대통령’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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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새벽 구속됐다. 헌정 사상 네 번째 전직 대통령의 구속 장면은 사저 앞을 지키던 사진기자들의 카메라에 그대로 포착됐다.
사진기자들이 기록한 무수한 역사적 장면 속에서 대통령은 다양한 모습의 피사체로 등장한다. 구속되는 범죄 피의자의 굴욕적인 역할부터 영광스러운 순간의 주인공 역할까지 모두 그들의 몫이었다. 더없이 따뜻한 한 사람의 인간이자 때론 비극의 당사자로서 보도사진에 기록된 그들 모습은 하나같이 ‘포토제닉(Photogenic)’하다.
한국사진기자협회는 매년 ‘한국보도사진전’을 열고 국내 사진기자들이 포착한 사진 중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을 선정해 영원한 기억으로 남기고 있다.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 없는’ 역대 수상작들 속에서 ‘우리 대통령’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1 대통령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5ㆍ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울먹이는 유족 김소형씨에게 다가가 위로를 건네며 안아주었다. 이 사진은 54번째로 열린 올해 한국보도사진전에서 특별상 격인 ‘한국보도사진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사진상’으로 선정됐다. 유족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위로하는 대통령의 모습 위로 5ㆍ18 민주화 운동을 외면해 온 지난 9년의 세월도 함께 겹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특유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2004년 12월 그는 이라크 아르빌에 주둔 중인 자이툰 부대를 전격 방문했다. 당시 대통령의 깜짝 방문에 장병들은 환호했고 대통령은 장병들을 와락 껴안으며 감격해 했다. 장병들에게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정말 기쁘다”라고 말한 노 전 대통령은 떠나는 지프에 올라 말없이 눈물을 훔쳤다.
당시 ‘동방 계획’이라는 암호명으로 극비리에 진행된 자이툰 부대 방문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다. 쿠웨이트에서 이라크 아르빌까지 왕복 4시간 40분간의 여정은 실제 전쟁터를 헤치고 가야 하는 험로였고 우리 군과 미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청와대 전속 사진사였던 장철영씨는 2016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출발하기 직전 대통령이 예정에 없던 기념촬영을 지시했다” 면서 “귀국길인 줄 알았던 비행기 안에서 그가 직접 자이툰 부대 방문 계획을 알린 다음에야 기념촬영의 의미를 알았다”라고 회고했다.
임기를 마치고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귀향한 노 전 대통령은 한 마디로 평범한 시골 아저씨 모습이었다. 당시 소탈한 점퍼 차림의 전직 대통령이 동네 가게에 들러 담배를 입에 문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면서 ‘노간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폼난다’는 의미의 일본어 ‘간지’와 노 전 대통령의 성 ‘노’를 합한 합성어지만 ‘노’를 영어 ‘No’로 해석해 ‘폼이 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사진이 촬영된 지 채 석 달이 안 돼 서거했다.
#2 역사적 순간 완성한 지도자
2000년 6월 13일 그가 북한 지도자와 나눈 악수는 한반도뿐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도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순안공항까지 직접 영접을 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두 손을 맞잡았다. 마주 보며 환하게 웃는 남북정상의 모습은 남북의 화합과 교류, 평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3 분풀이의 표적이 된 전직 대통령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화 운동과 최초의 문민정부를 이끈 업적에도 불구하고 IMF 경제 위기를 초래한 대통령으로 더 선명하게 기억된다. 임기 후인 1999년 6월 일본 방문 직전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웃는 그의 얼굴에 얼룩진 붉은 페인트는 그에 대한 분풀이였다. 당시 달걀을 투척한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된 박의정씨는 훗날 언론 인터뷰에서 “달걀을 던진 가장 큰 이유는 김 전 대통령이 IMF 때문에 5,000명 이상이 자살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4 전직 대통령의 또 다른 이름 ‘피의자’
1995년 2천억 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에서 16시간의 첫 조사를 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은 관계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귀가했다. 전직 대통령의 무기력한 귀가 장면은 제32회 한국보도사진전 뉴스 부문 금상으로 선정되며 역사의 교훈으로 남았음에도 그 후 3명의 전직 대통령이 같은 장면을 되풀이하고 말았다.
이듬해인 1996년 1월 23일 환자복을 입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병원 창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찰이 그를 내란 수괴, 내란 목적 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 한 날이었다. 앞서 검찰의 소환에 불응했던 그는 교도소에서 단식투쟁을 하다 서울 송파구 국립경찰병원 특실로 이송됐다. 단식 투쟁이 중단된 후에도 입원 생활은 계속됐고 입원 한 달 만에 커튼을 걷고 바깥세상을 내다보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은 당시 초망원 렌즈를 갖추고 잠복 중이던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경남 합천에서 압송된 지 50여 일 만에 공개된 전직 대통령의 표정에선 비뚤어진 권력의 무상함이 엿보였다. 당시 교도소 대신 경찰병원에서 머무는 동안 전직 대통령을 위해 지출된 비용은 4,500만원에 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31일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검찰의 호송차에서 올림머리를 풀었다.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당한 대통령이자 구속된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의 불명예까지 얻은 그는 담담한 듯, 체념한 듯 무표정했다. 한국사진기자협회는 국민을 배신한 전직 대통령의 몰락 순간을 대상으로 선정했다. 한편, ‘피플 인 더 뉴스(People in the news)’ 부문 최우수상에는 박 전 대통령에게 파면 선고를 내린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머리에 헤어 롤을 꽂은 채 출근하는 장면이 선정돼 묘한 대조로서 역사에 기록됐다.
#5 비극의 당사자로서 퇴장하다
2009년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백원우 당시 민주당 의원이 “사죄하라. 어디서 분향을 해”라고 외쳤다.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정치보복에 대한 항의였고 상대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었다. 그로부터 9년 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 의혹 등 검찰 수사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34일 만에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참사 당시 7시간의 행적에 대한 의혹이 여전히 분분한 가운데 그가 보인 눈물은 진정성을 의심받기 충분했다. 수면 위로 떠 오른 그의 ‘불통과 무능’은 훗날 탄핵과 정권의 몰락이라는 비극을 가져오고 말았다. 국정농단 사태로 국민의 하야 요구가 거세던 2016년 11월 29일 박 전 대통령은 그와 관련한 세 번째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과했다. 이날 자신의 거취를 국회 합의에 맡기겠다고 밝힌 그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대신 ‘청와대’라고 쓰인 장막 뒤로 조용히 퇴장했다.
#6 예비 대통령도 주인공
예비 대통령들이 국민과 소통하는 장면 또한 역사적 에피소드로서 한국보도사진전에 기록됐다. 2012년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 문재인 대통령은 한 행사에서 종이를 말아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와 눈을 맞췄다.
2004년 4ㆍ15총선 지원 유세에 나선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한 손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이른바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한 선거에서 그는 손이 아플 정도로 많은 유권자와 악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의 ‘붕대 투혼’은 주요 선거 때마다 등장하며 선거에 임하는 절박함과 진정성을 호소하는 데 활용됐다.
어린아이가 이명박 전 대통령(당시 서울시장)의 코를 쥔 사진은 44회 한국보도사진전에서 대상에 선정됐다. 그해 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만큼 인물이 지닌 역사적 가치에 비중을 둔 선택이었다. 이 장면은 훗날 미국산 쇠고기 파문 당시 ‘MB, 미국 소에 코 잡혔네’와 같은 패러디 물로 변신하기도 했다.
54번째로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올해 한국보도사진전은 4월 3일까지 계속된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성기자 poe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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