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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 남는 김정은의 ‘180도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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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화해 메시지’ 기점으로
남북ㆍ북미회담 약속, 南공연 칭찬
광폭 외교 행보로 이미지 정치
‘정상국가 지도자’ 자리매김 위해
치밀한 계산 속 국제고립 탈피 노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달라졌다. 밖으로는 핵 무력을 자랑하고, 안으로는 숙청을 감행하며 ‘매드맨’(미치광이)으로 불리던 그였다. 올해 들어 신년사를 기점으로 대남 화해 메시지를 발신하기 시작하더니, 남북ㆍ북미 정상회담 약속을 연달아 잡았다. ‘자본주의 날라리풍’이라던 남한 공연을 칭찬하고, 걸그룹 ‘레드벨벳’을 입에 올리는 유연함을 보였다. 정상(正常)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라는 분석과 함께 준비된 전략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남측 예술단 공연 ‘봄이 온다’를 관람한 김 위원장은 “내가 레드벨벳을 보러 올지 관심들이 많았는데, 원래 모레(3일 공연) 오려고 했으나 다른 일정이 생겨 오늘 왔다”고 했다. 남한 걸그룹 이름까지 훤히 꿰뚫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동시에 남쪽 대중문화도 편견 없이 대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이어 “문재인 대통령께서 합동공연을 보셨는데 단독공연이라도 보는 게 인지상정”이라며, 외교 기본 원칙인 상호주의를 강조하기도 했다. 정상 국가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란 분석이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달 방북한 대북특별사절단에게 “대화 상대로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남한 예술단에 보낸 찬사도 이례적이다. 2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짧은 기간에 성의껏 훌륭한 공연을 준비해가지고 왔다”며 사의를 표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같은 날 김 위원장의 공연 관람 사실을 1면 전면에 걸쳐 보도하며, 부인 리설주가 공연을 보며 박수치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 8장을 실었다. 자본주의 예술을 날라리풍이라며 비난, 배격해온 것을 생각하면 180도 다른 태도다.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닌 치밀한 계산 하에 나온 발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신년사에서만 해도 “혁명적인 사회주의 문화예술의 힘으로 부르주아 반동문화를 짓눌러 버려야 하겠다”고 자본주의 문화에 적개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에 대해 “이미지 정치에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며 “정상적인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치밀하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변신은 최근 광폭 외교 행보와 맞닿아 있다. ‘폭군’으로 굳어졌던 이미지를 바꾸면서 동시에 국제적 고립 탈피를 꾀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는 이유다. 지난달 김 위원장 외교 달력은 문 대통령 대북특사단 접견(5일), 방중(25~28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장 접견(30일) 등으로 채워졌다. 또 4, 5월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조만간 북러, 북일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난해 11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찾은 쑹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돌려 보내며 국제 사회와 담을 쌓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리설주를 외교 무대에 대동하고, ‘노동당 위원장’ 대신 ‘국무위원장’ 직함을 앞세우는 것도 정상 국가 면모를 강조하기 위함이란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그의 변신이 철저한 계산 하에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핵 무력 개발 및 완성까지 속도감 있는 진행을 보면 북한이 명확한 로드맵을 짜고 일을 추진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한반도의 급격한 정세 변화를 “북한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김 위원장이 매드맨 딱지를 뗄지도 관심이다. 외교적 고립을 택하면서 핵ㆍ미사일 개발에 몰두해 온 북한은 지난해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쏘아 올리며 급기야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곧바로 김 위원장을 “병든 강아지(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을 비하하는 말)”라고 조롱했다. 김 위원장은 고모부 장성택, 이복형 김정남 등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정적을 제거하며, 위험하고 예측을 불허하는 인물로 굳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데니스 로드맨의 열성팬이라는 점 때문에 사회주의 지도자답지 않게 내적으로 자본주의를 동경하는 철부지 이미지도 있었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지도자’라는 프레임으로 김 위원장을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캐릭터 오판으로 상황을 완전히 달리 읽을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일종의 경고다. 박원곤 교수는 “일부에서 매드맨이라고 표현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듯하다”며 “2012년 집권 이후 실수를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뛰어난 학습능력을 바탕으로 전략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로 성장했다”고 평했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도 “김정은 위원장 체제에서 구축한 브레인 그룹과, 본인의 전략적 감각을 바탕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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