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에어비앤비로 밥벌이 될까…‘제주댁’의 현실은?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중남미 장기 여행 후 서울 해방촌에 터를 잡았다. 죽어가는 재래시장 안쪽이었다. 개털 신세인 주제에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했다. 당시 겨우 얻은 전셋집은 손바닥만 했다. 한 개 층에 두 집이 놓인 구조였는데, 맞은편 집이 비어 있었다. 자동 반사로 무릎을 쳤다. ‘저곳에, 여행 중 만난 전 세계 방랑객을 초대하는 거야!’ 더불어 지인과의 유흥(!) 공간으로 굴려보자는 의지도 타올랐다. 매달 딱 하루, 원하는 대로 활용되는 상상을 했다. 클럽이 되고, 레스토랑이 되고, 술집이 되고, 때론 마음 해우소도 된다. 해방촌 에어비앤비는 말하자면, 부수입 창출보다는 사심을 채우기 위한 공간이었다. 그곳 월세가 40만원. 매달 에어비앤비가 이 밥벌이만 해준다면! 목표가 퍽 낮았다. 그래서 행복했다.
다소 낭만적인 에어비앤비 ‘제주댁’의 운명
제주에서 즉흥적으로 집을 골랐다. 농가주택이다. 월세를 세상에 뺏기는 가장 몹쓸 돈으로 생각하는 내가 ‘년세살이(해마다 임대료를 내는 시스템)’를 하게 된 것이다. 대신 손바닥만 한 해방촌 집의 약 6배 크기다. 좁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독채 2가구(안거리와 밖거리)가 마주보고 있다. 팔자에도 없는 방만 5개다. 왕년의 ‘댄스 플로어’로 삼지 않는 이상 공간이 흘러 넘쳤다. 집이란 자고로 거주인과 공생관계 아닌가. 사람이 숨 쉬지 않는 집은 썩는다. 안거리에서만 숨 쉬어도 호흡이 딸리는 우리···. 밖거리는 숨은 여행자에게 맡기리라. 낯선 여행자의 다양한 이야기로 채워가길 바랐다. 여행자를 통해 우리도 여행한다. 육지를 벗어나 이곳 섬까지 흘러온 에어비앤비 호스트로서의 운명, 제법 낭만적인 구실이었다.
살인적 제주 물가…밥벌이의 현실은 차가웠다
그러나 낭만보다 우선하는, 살인적인 제주살이 유지비를 충당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단순히 물가만을 언급하는 게 아니다. 기본 물가가 높은 것은 물론이고, 농어촌으로 구분되는 지역에 사는데도 오히려 도시보다 높은 가격에 물건을 사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로 시내에서 장을 볼 때면 흡사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마트를 싹 쓸어온다. 이성을 잃고 언제 필요할지 모를 생필품을 카트에 가득 쌓는다. 돈 먹는 하마, 기름보일러도 무섭다. 올해 초 유난히 추운 겨울이라 했다. 유류 탱크 호스의 눈금자가 내려갈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긴 애초에 글렀다. 집이 커진 만큼 뭔가로 채워 넣으려는 ‘지름신’이 강림했다. 농가주택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보기엔 참 운치 있다. 멋도 있다. 그러나 집을 상전으로 모셔야 했다. 매일 바람 잘 날 없다. 지붕 처마를 막아야겠네? 문고리도 바꿔야겠네? 타일 보수 좀 해야겠네? 손봐야 할 시리즈로 돈이 줄줄 새 나갔다. 부수입 생각에 눈이 시뻘개졌다. 우리 커플 못지않게 나태한 인부에게 맡겨 욕실과 화장실까지 완성하고 나니 본전 생각이 더욱 아득했다. 정신건강을 위해 평소 관심도 없는 명품 가방을 샀다고 치부했지만 위로되지 않았다. 그러기엔 출혈이 컸다. 에어비앤비는 생존을 위한 일부 도구였다.
우리의 주말은 언제입니까?
올해 2월 중순 에어비앤비를 오픈했다. 한겨울에 제법 예약이 들어왔다. 이런 농가주택을 누가 거들떠나 볼까 했건만, 반전이다. 집의 흠결을 삶의 추억으로 받아들인 손님 덕이다. 동시에 호스트로서의 충격도 빠르게 왔다. 주말에만 예약률이 치솟는 서울과는 전혀 달랐다. 아, 제주 전체가 관광지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여행은 주 7일제, 365일 논스톱이다. 여행자에게 주중과 주말 구분이 있을 리 없다. 이는 곧 우리는 주말을 박탈당하고, 매일 겁나게 열심히 청소에 매달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고백하자면 난 청소하기를 좋아하는 머슴 근성이 있는 사람이다. 해방촌 거주 당시 청소할 때마다 생각을 멈추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이 아름다운 노동도 계속 오래 지속하면…, 아니다. 청소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게 된다. 매일 시트를 갈다가 허리 디스크가 올 수도 있고, 물걸레 청소를 하다가 무릎 관절에 이상이 올 수도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집 마당을 보니 미용실이 연상됐다. 모든 빨래의 우선권이 타월과 시트로 넘어갔다. 어쩌지, 갈아입을 속옷이 없네.
당장 때려 치울까? 아직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는 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수고를 달래는 치료제가 있는 연유다. 손님이 체크아웃하자마자 방명록을 확인한다. 언젠가 책이 되는 꿈을 가진 비장한 포부의 공책이다. 자간과 행간마다 여행자의 숨결이 아로새겨져 있다. 손 글씨와 정성이 알알이 맺힌 그림이 페이지를 채워간다. 키득키득 거리기도 하고, 마음이 얼얼해지기도 한다. 머문 사람만 아는 진정한 타임캡슐이다. 오늘도 우리가 왜 이곳을 ‘빡세게’ 청소해야만 하는지 공책은 답한다. 이 비밀의 주인공, 여행자에 대해 좀 더 써 볼 예정이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