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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증권, 배당사고 후에야 회수 프로그램 만들었다

입력
2018.05.08 17:31
22면

“우리사주 배당시스템 내부통제 미비가 최대 원인”

주식 입•출고 순서 뒤바뀌고

54분 지나서야 수습 시스템 작동

전산시스템 구축•유지 업무 70%

계열사 SDS와 계약 체결도 적발

지난달 삼성증권에서 ‘유령주식’ 배당 및 매도 사태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회사 내부에 사전 감지는 물론이고 사후 수습 시스템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는 사태 직후 직원들의 주식 처분을 막고 잘못 배당된 주식을 거둬들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동시키느라 1시간 가량을 허비해야 했다. 삼성증권은 이처럼 허술한 전산시스템의 구축ㆍ유지 업무 대부분을 계열사인 삼성SDS에 맡기고 있었다.

금융감독원은 8일 이같은 내용의 ‘삼성증권 배당사고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은 삼성증권의 우리사주 배당시스템에 대한 내부통제 미비가 사고의 최대 원인이라고 규정했다. 앞서 지난달 6일 삼성증권은 우리사주 직원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원’을 ‘주’로 잘못 입력해 발행주식 총수의 30배가 넘는 허위 주식(28억1,300만주)을 발행하는 배당 사고를 일으킨 바 있다.

금감원 검사 결과 삼성증권 배당시스템은 이러한 황당한 실수를 사전에 걸러낼 수 있는 장치가 부재했다. 원칙상 우리사주 주식 배당은 우리사주 조합장 계좌에서 주식이 출고돼 조합원 계좌로 입고되는 순서를 밟아야 하지만, 해당 시스템은 주식이 출고되지 않았는데도 조합원에게 주식을 나눠줄 수 있도록 짜여 있었다. 또 새로 발행된 주식은 예탁결제원의 진위 확인을 먼저 거쳐야 하는데도 예탁원을 건너뛴 채 바로 주식 거래가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유령주식 매도가 시스템적으로 가능했던 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우리사주조합이 결성된 다른 15개 상장 증권사의 배당시스템도 점검했는데 유사한 사고 발생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증권은 임직원의 부당한 주식거래를 막기 위한 계좌정지나 입고주식 회수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않았던 사실이 검사 결과 확인됐다. 회사가 주식이 잘못 배당된 것을 인지한 후에도 일부 직원들의 대량 매도를 막을 수 없었던 이유다. 금융사고에 대한 비상계획 마련을 의무화한 법규 위반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착오 배당이 발생하자 삼성증권이 임직원 계좌를 한꺼번에 막고 입고된 주식을 회수할 전산 프로그램을 즉석에서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계좌정지 프로그램은 착오 배당 후 37분이 지나서야, 입고주식 회수 프로그램은 한 차례 작동 오류를 거쳐 54분이 지나서야 각각 작동했다. 그 사이 삼성증권 직원 22명은 31분에 걸쳐 1,200만주 넘는 매도주문을 냈고 실제 500만주가량을 팔아 치웠다. 금융당국은 다만 직원들이 주식처분 과정에서 주식선물 거래와 연계하거나 외부자와 공모한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또 삼성증권이 최근 5년 간 전산시스템 구축ㆍ유지 관련 위탁계약의 72%(2,514억원)를 계열사인 삼성SDS와 체결한 사실을 적발, 공정거래위원회에 통보했다. 검사 결과 삼성SDS는 삼성증권 일감의 91%를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경쟁을 배제한 내부 일감 몰아주기 행태가 결국 전산시스템 부실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문제를 일으킨 우리사주 배당시스템 역시 삼성SDS가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사태 당시 주식 매도 주문을 낸 22명 가운데 고의성이 뚜렷한 21명을 이번 주 검찰에 고발하고, 조만간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회사와 관련 임직원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하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인 만큼 신속히 제재를 처리할 것”이라며 “관련 법규에 따라 최대한 엄정하게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당국 안팎에선 삼성증권에 기관경고 이상의 중징계가 내려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이날 “금감원 검사 결과에서 지적된 사항은 혁신사무국 및 외부인사로 구성된 혁신자문단을 통해 철저히 개선하고, 당국 제재 절차에도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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