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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이 또한 약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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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완전 비핵화까지는 멀고 험한 길
‘맞바꿀 행동’이 확정되기 전까지라도
안보대비 태세와 경계 풀어서는 안돼
매끄러웠던 남북ㆍ북미 대화 가도에 큼직한 돌부리가 돋았다. 북한은 일방적으로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 연기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북 협상 자세를 강하게 견제하고 나섰다. 말로는 한미 연합훈련 ‘맥스 선더’를 문제 삼았지만, 이리저리 살펴도 그리 흠 잡기 어려운 훈련이어서 일종의 핑계로 들린다.
그렇다고 북한의 어깃장을 감정적 기복에 따른 공연한 심통이나 생트집으로 보기는 어렵다.그보다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검토를 거친 끝의 정책 결정일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 두 가지 요인을 고려한 것처럼 보인다. 중동 정세와 북중 교류 강화 움직임으로, 어딘가에서 서로 맞물려 있을 듯하다.
미국은 이달 들어 이란 핵 협정에서 탈퇴한 데 이어 지난해 말부터 공언해 온 주 이스라엘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단행했다. 두 행동은 시기적으로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대 중동 전략 측면에서 밀접한 연속성을 가진다.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레이트(UAE),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를 잇는 ‘친미 축’의 복원과 강화에 새삼스럽게 공을 들이는 모습이 그것이다. 그런 정책에 따라 빚어질 중동 정세 혼란이 미국에 미칠 실질적 영향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줄어들었다는 현실 인식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란과 팔레스타인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됐고, 미국의 관련 이해를 보장할 만한 범위 안이다. 지금도 꾸준한 ‘셰일 혁명’ 덕분에 미국은 더는 중동 석유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게 된 지 오래다. 현재 중동에서 고개를 드는 갈등이 훨씬 더 큰 충돌로 번지더라도 잃을 게 거의 없는 반면 최근 사우디나 UAE의 군비 증강 흐름에서 확인할 수 있듯, 누릴 것은 오히려 더 많아진다. 갈등의 확산에 대처할 군사ㆍ안보 능력도 충분하다. 한동안 신경을 쏟아야 했던 동북아 정세의 불안정이 최근의 북미 대화로 많이 잦아든 것도 그런 판단의 근거가 됐음직하다.
그러나 이런 중동 정세 변화를 북한이라고 모를까. ‘참수작전’을 비롯한 미국의 선제공격 장담이 현실감을 띠기는 어려워도 북한 권력 핵심의 심리적 불안을 자극할 수는 있었다. 그 불안은 중동 정세 불안정에 따라 상대적으로 줄게 마련이다. 조금은 가슴을 펴고 할 말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북한의 이런 자신감을 최근 두드러진 대중 관계 개선 움직임이 북돋워주었을 것 또한 물론이다. 중국의 적극적 지원 태세는 군사ㆍ안보적 보험인 동시에 그 동안 대화 자세를 강요해 온 국제적 제재의 벽을 여차하면 허물어 줄 대형 해머와 다름 없다. 따라서 현재 북한이 미국을 향해 던진 지적과 요구에는 그 동안의 북미 사전 협상 국면에서는 볼 수 없었던 힘이 실린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태도, 적어도 온갖 요구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자세에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다만 현재 북미 간의 부분적 주도권 조정 줄다리기와는 별개로 협상의 기본 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북미 정상회담에 파탄이 나서, 양측이 지난해의 대립구도로 돌아가봐야 어느 쪽에든 남는 게 없다. 북한의 어깃장이 큼직한 돌부리일 수는 있어도 협상가도를 가로막을 수준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더욱이 북미 협상이 구체적 ‘행동 대 행동 주고받기’로 타결되고, 문제 해결의 일정표가 짜이더라도 쉬이 안심할 수 없는 게 북핵 문제의 속성이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온갖 기대가 웃자라고, 앞 다투어 남북관계의 장밋빛 미래를 그리느라 바쁘다. 그런 풍조에 찬물을 끼얹어 현실 감각을 일깨우고, 과열된 분위기를 잠시 식힐 수 있다면, 북의 어깃장 또한 좋은 약이다.
일사천리였던 남북 화해 흐름에 잠시 잊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는 심각한 안보위협에 노출돼 있었다. 더욱이 북한 핵ㆍ미사일의 핵심 위협이, 한미동맹 이완이나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자동개입 차단 가능성에서 비롯한 것 아니던가. 아직 ‘행동의 합의’ 근처에도 이르지 않았는데 대북 관계 개선 방안을 짜내다 못해 대미 관계 후퇴까지 저울질하는 섣부른 논의가 고개를 드는 것은 정상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아직은 차분하고 냉정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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