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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였나 물으니 4시간씩 답… 세월호 부모들 사연 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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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소설가’ 김탁환
고교 10곳 찾아 학생들과 토론
“그게 소설을 쓴 계기였단다”
끈질긴 기억은 저항이고 개혁이다. 2014년 4월 16일을 잊지 않는 것도 그렇다. 불순한 기억일 뿐이라고, 그러니 기억할 필요 없다고 을러메는 목소리에 글로 맞선 ‘세월호 소설가’ 김탁환(49). 지난달 1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전국 고등학교 10곳을 다니며 세월호를 이야기했다. 4년 전 제 나이였던 세월호 아이들을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듣고 싶어서, 희생자 304명이라는 숫자 말고 ‘사람으로’ 기억하라고 당부하고 싶어서다.
8일 서울 도곡동 중앙대사범대부속고등학교 도서실. 1, 2학년생 80여명이 김 작가를 만나려 모였다. 김 작가의 세월호 중∙단편집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2017∙돌베개)를 읽고 토론을 마친 뒤였다. “학교가 강남에 있다 보니 수업시간에 세월호 이야기를 하는 게 엄청 조심스럽다. 학부모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얼마나 참여할지 선생님들끼리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이 모였다.” 한 교사의 전언이다.
김 작가는 절절한 사연들이, 짓눌려 있다 터져 나온 말들이 어떻게 소설이 됐는지를 들려 줬다. “2016년 세월호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를 진행할 때 세월호 아이들의 부모님을 초대했다. ‘어떤 아이였나요?’ 첫 질문에 답을 4시간씩 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은 아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야기를 그만하면 다시 죽을 것 같아서 그런 거였다. 이야기를 듣고 아파 본 적 있는가. 나는 매번 사나흘 몸살을 앓았다.” 몇몇 아이들 눈에 눈물이 고였다. “부모님들 만나면 2014년 4월 15일에 찍은 아이들 사진을 보여 준다. 수학여행에서 선보일 춤 노래 연습을 하는 모습, 활짝 핀 벚꽃 앞에서 웃는 모습… 그 때가 제일 슬펐다. 그 슬픔이 너무 힘들어 고 김관홍 잠수사를 초대했다. 조금 쉬어 가려고 한 건데, 김 잠수사도 4시간 넘게 이야기를 그칠 줄 몰랐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소설로 쓰기로 했다.”
‘아름다운…’에 실린 소설 8편은 함께 있는 것으로 서로를 고통에서 건져 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함꼐 있는 게 아름다움이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절망이 더 깊어진다. 한 명이라도 옆에 있어 주면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을 살리는 거다.” 김 작가는 그렇게 이야기를 맺었다. 김 작가가 이야기하는 동안 아이들은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몰래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김 작가의 말대로 “아이들은 어디를 가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 봤다. “2014년 4월 16일은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날이었다. 서울로 오는 길에 뉴스를 봤다. 조금 슬프긴 했는데, 이렇게 큰 일인지는 모르고 지냈다.”(1학년 이○○) “4년 전 부모님을 따라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분향소에 가서 헌화했다. 신나서 뛰어 놀았다. 왜 그랬을까…”(1학년 김○○) “세월호 참사를 잘 몰랐다. 사회가 잘못 대처한 여러 사건들 중 하나인 줄만 알았다. 희생된 학생들과 동갑이다. 내가 그들 위해 한 게 없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라도 그들의 아픔을 깊이 새기고 살아야겠다.”(2학년 윤○○)
김 작가는 세월호 만남을 시작하기 전인 4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고통과 상처를 되새겨 누군가를 자라게 하는 게 소설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의 소설은 할 일을 다 한 게 아닐까.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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