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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블록체인 민주주의’ 실험 중

입력
2018.07.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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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미디어 기술 출현 이후 혁명적 변화 역사

인터넷은 노무현 대통령, SNS는 오바마 대통령 탄생 주역

블록체안 공화국 에스토니아 탈린에 위치한 전자시민증 사무실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블록체안 공화국 에스토니아 탈린에 위치한 전자시민증 사무실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블록체인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먼저 파도를 맞은 건 경제 영역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중고생까지 비트코인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는 위험 신호가 울린 지 이미 오래다. 가능성만큼이나 부작용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블록체인을 향한 열기는 뜨겁다.

모두가 경제에 미치는 여파에 놀라고 있을 때 한국일보가 주목한 건 정치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블록체인은 정치 영역도 뒤흔들 조짐이다. 새로운 미디어 기술 출현 이후 전세계가 혁명적 변화를 겪었던 역사에 주목하는 이들이 먼저 뛰고 있다.

1989년 소개된 월드와이드웹(WWW) 기술이 인터넷 대중화의 길을 열자 세계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최대의 변화에 휩쓸렸다. 우리나라에서도 2002년 참여정부의 탄생은 인터넷 미디어 시대의 등장과 떼놓고 설명하기 힘들다. 민주주의 열망이 분출되던 공론의 장이 오프라인 광장에서 인터넷 토론게시판 ‘다음 아고라’로 바뀌면서 새로운 권력이 탄생했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당선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앞서 1920년대 뉴미디어로 등장한 라디오의 힘을 간파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노변정담(爐邊情談)으로 미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4선 장기집권에 성공했다. 1960년대 대중화한 텔레비전은 40대의 존 F. 케네디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물론 블록체인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이들의 꿈은 단순한 권력교체 너머에 있다. 15세기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 발명이 민주주의의 초석이 됐던 것처럼 블록체인이 불평등 문제와 인권 사각지대가 사라진 신세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이상이다. 마치 신문ㆍ잡지의 전성기였던 19세기에 여성의 투표참여를 비롯해 참정권이 비약적으로 확대됐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 전세계에선 정보통신기술(ICT)에 정통한 젊은이들이 앞다퉈 ‘블록체인 민주주의’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뛰어들고 있다. 호주의 신생정당 플럭스는 시장경제 원리를 접목한 ‘투표권 거래제’로 대의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미 실리콘밸리에서는 투표권을 위임하도록 한 ‘리퀴드 민주주의’ 실험이 한창이다. 일본 등지에서는 블록체인 암호화폐를 활용해 새로운 사회운영 제도를 설계하는 ‘크립토(Crypto) 민주주의’가 태동하고 있다. 인터넷이 정보만 담을 수 있는 미디어였다면 블록체인은 정보와 가치를 함께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블록체인은 기존 민주주의의 보완재로도 유용하다. 스페인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이 정당민주주의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 최대의 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가짜뉴스’ 를 블록체인 기술로 잡으려는 이들도 있다.

이미 블록체인 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나라도 적지 않다. 러시아의 위성국가로 독립의 역사가 채 30년도 안 된 에스토니아는 국가시스템 전체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전환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핀란드는 기본권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는 ‘경제적 기본권’ 보장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물론 세계 각지에서 이뤄지고 있는 블록체인 민주주의의 실험이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여정이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블록체인 민주주의의 선구자가 되어 제도를 디자인하는 이들은 한결 같이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은 오로지 깨어있는 시민의 몫”이라고 말한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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