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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고 있는 여자 나중에 구하자는 세상에서 책 잘 팔리면 무슨 의미있나”

입력
2018.07.30 17:55
수정
2018.07.30 21: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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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새 장편 ‘해리’ 출간

“대구희망원 사건 등 실화를

하나의 이야기로 짜깁기

진보의 탈을 쓴 위선과 싸워야”

공지영 작가가 새 장편 '해리'를 냈다.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공지영 작가가 새 장편 '해리'를 냈다.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침묵은 죄’라고 깊이 새기고 사는 것 같은 소설가 공지영(55). ‘공지영스러운’ 새 장편 ‘해리’를 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재벌과 가진 자들의 횡포가 극심해진 사회에서는 간단한 말로도 진보나 민주의의 탈을 쓸 수 있고, 그게 돈이 된다는 걸 체득한 사기꾼이 대거 몰려 온다.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싸워야 할 악은 진보와 민주주의의 탈을 쓴 엄청난 위선이 될 것이다.” 30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공 작가는 새 소설을 이렇게 간추렸다. 교묘한 위선이 솔직한 악(惡)보다 치명적이라는 인식.

소설엔 진보적이어서 존경 받는 신부와 정의로워서 사랑 받는 장애인 보호시설 대표가 위선의 화신으로 나온다. 둘은 착한 이들의 연민하는 마음, 악한 이들의 탐욕하는 마음을 쥐고 흔든다. 작은 인터넷 언론사 기자가 둘의 악행을 캐는 게 소설의 줄기다. 이름이 이해리인 장애인 시설 대표가 해리성 인격장애를 앓는다는 설정으로 이 시대 위선자들이 너무도 간편하게 얼굴을 바꾸는 행태를 꼬집었다. 공 작가가 원래 생각한 소설 제목은 ‘거짓말’이었다. 공 작가는 “악인들의 위선과 사기의 도구로 SNS가 쓰이기 때문에” 이해리의 페이스북 화면을 삽화처럼 소설에 넣었다고 했다.

이해리가 봉침을 놓고 신부와 한 몸이라는 얼개는 ‘전주 봉침 목사 사건’과 비슷하다. 공 작가는 봉침 목사와 무리를 비판해 송사에 휩싸였었다. 공 작가는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거의 다 실화이지만, 수집한 실화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짜깁기한 것”이라고 선을 긋고, “대구희망원 사건은 실화를 그대로 다루었다”고 했다. 소설에서 가톨릭의 비리를 들추는 공 작가는 가톨릭 신자다. “소설을 먼저 읽은 주변 독자들이 (가톨릭을 비판한 부분에 대해)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다. 그 만큼 우리 사회가 전방위로 부패하고 있다는 걸 거꾸로 느꼈다.”

서재훈 기자
서재훈 기자

이날 기자간담회엔 기자들이 ‘많이’ 참석했다. 소설보단 공 작가의 ‘입’에 이목이 쏠렸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배우 김부선씨를 거짓말쟁이로 몰 때, 공 작가는 ‘용감하게’ 김씨 편을 들었다. 이 지사의 열혈 지지자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공 작가를 사납게 공격하고 소설 불매 운동을 벌였다. 공 작가는 흔들리지 않았다. “작가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소리 지르는 어린아이 같은 존재다. 확신을 갖고 한 일이다. 한 사람이 울고 있는데, 부당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새 작품을 내기 얼마 전이라고 해서 신중하게 하고 그럴 수는 없었다. 지나가다 맞고 있는 여자를 봤는데 나중에 구하자고 하는 세상에서 책이 잘 팔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공 작가는 고은 시인 성폭력 의혹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는 “고 시인과 술을 마셔 본 적이 거의 없어 아는 게 없다. 그 일에 대해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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