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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브랜드 편의점도 출점 제한 ‘제살깎기 경쟁’ 막는다

입력
2018.08.16 04:40
수정
2018.08.16 09:3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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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증하는 국내 편의점 점포수. 신동준 기자
급증하는 국내 편의점 점포수. 신동준 기자

‘한집 건너 한집’이란 말이 나올 만큼 무분별한 편의점 출점으로 가맹점주들이 서로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벌이는 폐해를 막기 위해 편의점 브랜드 간 근접 출점을 제한하는 제도가 다시 부활될 것으로 보인다.

근접 출점 제한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기존 메이저 편의점 업체들은 정부의 변화된 입장을 반기는 눈치지만, 군소 편의점 업체는 정부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시장진입을 막고 있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과거 편의점 업계의 근접 출점 자율규약을 부당 공동행위로 규정해 금지했던 공정거래위원회가 입장을 180도 바꾼 데 대한 비판도 나온다.

15일 중소벤처기업부와 공정위에 따르면, 중기부는 조만간 편의점 간 근접 출점 제한을 ‘자율규약’ 형태로 시행하는 방안을 포함한 ‘소상공인ㆍ자영업자 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근접 출점 제한의 거리 기준은 80m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주무부처인 공정위와 협의해 특정 지역에 새 편의점을 낼 때 다른 브랜드 편의점과도 일정 거리 이상을 두도록 하는 출점 제한을 업계 자율규약 형태로 추진할 것”이라며 “오는 20일쯤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도 “업계 자율규약 안이 확정되면 부당 공동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면서 과잉 출점을 해소할 방안인지 심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재도 편의점 업계는 같은 업체 가맹점끼리는 250m 출점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다른 브랜드 간에는 별다른 규정이 없어 불과 수십m 안에 또 다른 편의점이 생기고, 심지어 같은 건물에 2, 3개 편의점이 경쟁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편의점 수는 올 초 4만개를 넘어서며 포화상태에 이르러 영업이익률도 급감하고 있다.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것은 가맹점주들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편의점 점주는 “2년 사이 100m 안에 편의점 2개가 더 생기면서 하루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과거 편의점 업계는 1994년 ‘신규 편의점 출점 시 기존 점포 80m 이내에는 열지 못한다’는 자율규약을 만들었지만, 공정위가 2000년 이를 부당 공동행위로 판단하면서 규약을 무효화했다. 2012년에는 공정위가 모범 거래 기준을 만들어 250m 이내 신규 편의점 출점을 금지했지만, 이마저도 기업활동 제약 우려가 있다며 2년 만에 폐지됐다. 공정위로선 이번에 업계가 마련한 자율규약을 인정할 경우, 과거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는 셈이다. 정부 방침에 따라 원칙 없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업계 자율규약이라지만 한국편의점산업협회 비회원사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현재 편의점산업협회 회원사는 CU(씨유),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씨스페이스 등 대형 5개사다. ‘위드미’에서 이름을 바꾼 뒤 공격적으로 점포 수를 늘리고 있는 이마트24는 아직 공식 입장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자율규약에 동참하면 성장세가 꺾이며 존폐 위기에 몰릴 수 있고, 자율규약을 반대할 경우 과당경쟁의 주범으로 낙인 찍혀 기업 이미지가 악화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다른 군소업체들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는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중소 편의점 업체 관계자는 “대기업들은 점포 수를 늘릴 만큼 늘려 괜찮겠지만 중소 업체들은 사업 기회가 막혀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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