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정부가 R&Dㆍ인력 양성 지원… 대ㆍ중소기업 기술 생태계 구축을”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1. 소비자서 경쟁자 된 중국
반도체 기술 난도 높이지만
중국이 인수합병 통해 흡수
첨단 제품 위협할 시기 다가와
#2. 중국 추격 어떻게 늦추나
기술인력 해외 유출 우선 막고
반도체ㆍ기계ㆍ바이오 융합 필요
규제완화로 해외 공장 되돌려야
#3. 경쟁력 위한 내부 협력 강화
미래산업 대ㆍ중소 기업 상생해야
기업가ㆍ노동자 더불어 가야 성공
정부ㆍ개인 아닌 중간 영역 중요
중국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태양광발전, 전기차 배터리, 조선업 등 한국의 주력산업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지금은 위기 수준이지만 적절히 대비하지 못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 주력산업이 ‘중국 주력산업’이 되며 우리는 중국의 하청기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한국일보는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한 단계 도약할 방안을 찾기 위해 22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력산업 경쟁력에 사활 걸어라’를 주제로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우리나라 산업정책의 최고 현장책임자인 박건수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이 축사를 했고, 중국 산업전문가인 은종학 국민대 중국학부 교수가 기조발제를 맡았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협력실장의 사회로 진행한 토론에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김정우 의원(더불어민주당)과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이사가 참여했다.
사회=최근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가 한국 특집을 다뤘다. 그동안 ‘패스트 팔로어’(신속한 추격자) 전략을 추구해 성장한 한국 기업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주요한 이유로 중국을 꼽았다. 중국이 ‘소비자’에서 ‘경쟁자’로 올라서며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신산업을 발굴하고, 새로운 연구개발(R&D) 등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재근=중국은 태양전지를 가장 먼저 따라왔다.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태양전지를 제조하기 위한 웨이퍼(실리콘 원판)는 하루나 이틀이면 된다. 중국이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한 액정표시장치(LCD)는 만드는 데 1주일 걸린다. 요즘 주력하고 있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는 10일 정도면 완성품이 나온다. 따라오기가 어렵지 않은 분야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 칩은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50일이 넘게 걸린다. 그만큼 기술의 난도가 높다. 경쟁을 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술 난도가 낮을 수록 빨리 따라오기 때문에 어떻게 난도를 높이느냐가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전략의 핵심이다. 중국은 과감하다.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내수시장을 만들어준다. 게다가 과거 우리가 반도체 생산 초기에는 앞선 업체의 제품을 눈으로 확인하며 하나하나 개발했다면, 중국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인수ㆍ합병(M&A)하며 빠르게 따라온다. 우리 초기보다 여건이 훨씬 좋다. 지금 반도체 분야에서 대비하지 못하면 LCD가 역전당한 것처럼 한순간에 패권을 뺏길 수 있다.
안기현=중국은 메모리 반도체 최대 소비 국가이지만 외국 기업에 의존하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 의지도 강하고 투자도 대규모다. 시간의 문제이지 언젠가는 한국을 위협하는 시점이 올 것이다. 반도체는 첨단 산업이지만 국내 종사자가 17만명으로 절대 적지 않다. 매년 1만명 정도 신규 고용도 창출한다. 만약 반도체 산업이 위축된다면 산업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국 반도체를 위협하는 시점을 가능한 한 뒤로 미루는 것이다. 기술과 인력 등 핵심 자산을 지키면서 말이다. 아예 추격 가능성을 없앨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지만 그러기는 힘들어 보인다.
사회자=어떤 방식으로 중국이 우리를 추격할 시간을 늦출 수 있을지 궁금하다. 현장에 계신 분들이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신다면.
안기현=후발국이 선진국을 따라잡는 길은 결국 기술과 사람이다. 우리 기술인력이 중국으로 가지 못하도록 지켜야 한다. 관련 분야에 창업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산업이 전혀 다른 산업과 융합하는 시대다. 반도체와 자동차가 결합해 자율주행차가 된 것처럼 반도체와 기계나 바이오산업이 융합할 수도 있다. 이런 융합산업이 발전하면 각 분야 퇴직자 같은 전문인력이 창업할 수 있는 신산업도 생겨날 것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소재 부품 장비 분야 중소기업들이 성장하기 위해 정부의 도움도 필요하다. 최근 대기업들이 협력사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기업 힘만으로는 어렵다. 또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기업이 투자해야 성장 동력이 생긴다. 못하게 막는 게 능사가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 소통을 통해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
박재근=불행히도 지난 10년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 정책이란 게 전혀 없었다. 대기업 특혜라는 비판을 의식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표면적으로는 대기업 산업으로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수많은 중소ㆍ중견기업들이 엮여 있고 대학의 인력 양성 시스템과도 직결돼 있다. 요즘 서울대의 반도체 석ㆍ박사가 30명이 안 된다. 국가 연구개발 지원이 없으니 전공 교수도 줄어들고 있다. 중국은 LCD 사업을 본격화하며 20개 대학에 수천억원 짜리 연구센터를 하나씩 지어줬다. 학생들이 LCD 분야 석ㆍ박사 공부를 하니 논문도 많이 나온다. 중국과 기술 격차가 남아 있을 때 선제 투자로 기술 우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IT 산업 특성은 한번 제품의 성능이 높아지면 그 아래 제품은 살아남을 수 없다.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지난 10년간 우리 대기업은 중국 등 해외에서 공장을 확장했는데, 이제 중국이 따라오니 국내 투자로 전환하려 한다. 정부는 규제완화 등으로 이런 기업을 적극 포용해야 한다. 5세대(G) 이동통신이 상용화돼 데이터 전송속도가 10배 이상 빨라지면 메모리 반도체 용량이 100배 커져야 한다. OLED도 고해상도가 돼야 한다. 우리만 가진 기술인데, 더욱 발전시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사회=정부가 지원하는 R&D와 인력 양성 지적을 많이 해줬다. 국제적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력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김정우=R&D 분야 재정 투입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은데, 과거 10년은 문재인정부가 아니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곧 발표될 텐데 내년 처음으로 국가 R&D 예산이 20조원 이상 편성된다. 정부가 반(反)기업 정서를 가졌다는 지적도 바로 잡고 싶다. 지금까지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기업 참여를 배제했지만, 현 정부 들어 스마트시티 소프트웨어 분야에는 대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과거 정부는 수소자동차는 현대자동차에서만 만든다는 이유로 수소차 보급에 소극적이었지만, 지원을 확대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주력산업 추격을 뿌리치려면 세 가지 점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우선 ‘우리 주력산업은 무엇이고, 미래 신산업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이다. 반도체가 미래엔 주력산업이 아닐 수도 있고, 지금 신산업이 주력산업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누구도 어떤 분야가 미래 주력산업이 될지 확신할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두 번째는 대기업과 중소ㆍ중견기업이 상생하는 산업 생태계 구축이다. 이 문제는 규제 혁신으로 풀어가야 한다. 규제혁신은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은 데 여ㆍ야가 이달 안에 처리하기로 합의를 했다. 꾸준하면서도 빨리 하도록 노력하겠다. 세 번째 기업뿐 아니라 노동자를 같이 고려해야 한다. ‘인더스트리 4.0’을 앞서 추진한 독일은 공정 자동화로 줄어드는 일자리를 보완하기 위한 추가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우리는 후발주자의 이점을 살려 기업과 노동자를 동시에 고려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노동자를 고려하다 보면 규제혁신이 더뎌질 수 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업가와 노동자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사회=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틸의 저서 ‘제로 투 원’이란 책이 생각난다. 우리가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수평적 진보를 해왔다면, 앞으로 필요한 것은 무(제로)에서 무언가(원)를 만들어 내는 수직적 진보를 이뤄야 한다. 수직적 진보를 통해 중국과 사활을 겨루는 수준이 아니라 중국을 뛰어넘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종학=기업만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이노베이션(혁신)을 많이 얘기하는데, 이 말을 세상에 퍼뜨린 것은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다. 그는 “혁신과 함께 경제가 성장하면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생기고, 혁신동력이 둔화하고, 그대로 두면 사회주의가 이긴다”고 생각했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와 혁신이 계속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비관적이었지만, 그 결론이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정부와 개인이 아닌 중간적인 영역에서 능동적인 장을 열어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키우는 게 ‘슘페터의 저주’를 극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