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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을 권리’ 스스로 찾아나선 판매직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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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3시 고급 화장품 매장이 모여 있는 서울 시내 한 유명 백화점에서 작은 변화가 감지됐다. 그동안 고객이 없어도, 자신을 위한 빈 의자가 버젓이 있는데도 줄곧 서서 대기하던 판매직 직원들이 하나둘씩 의자에 앉기 시작한 것이다. 고객이 없는 동안 의자에 걸터앉아 재고 물품을 확인하고 매출 전표를 정리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당연하지만 이전엔 볼 수 없었던 이 같은 장면은 역설적이게도 정부의 무성의와 사 측의 의지 부족이 만들어냈다.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열악한 근로 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동자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전국 유통업체에서 근무하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서비스 노동자들은 오후 3시를 기해 ‘의자 앉기 공동 행동’에 돌입했다. 노동자의 앉을 권리를 스스로 찾기 위한 공동 행동은 이날 이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백화점이나 면세점 등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매장에서 일하는 판매직 직원들은 깔끔한 겉모습과 달리 각종 족부 질환이나 혈관계 질환에 시달려 왔다. 엄지발가락이 휘는 ‘무지외반증’을 비롯해 제때 화장실을 가지 못해 생긴 방광염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객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챙기는 유통사의 근무지침에 따라 고객이 없어도 서서 대기해야 하고 매장을 비울 수도 없는 근무 환경 때문이다.
서비스 노동자들은 이처럼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을 줄곧 요구해 왔다. 그러나 유통사의 개선 의지는 희박했다. 본보의 5월 24일자 보도(얼마나 아팠을까... 구두 속에 꽁꽁 숨긴 판매직 노동자의 일그러진 발) 이후 정부가 뒤늦게 의자 비치 현황과 휴게시설 등에 대한 실태 점검에 나섰지만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정부가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대형 유통매장에 의자를 비치하도록 한 지 10년이 다 되도록 의자에 앉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돼 왔다.
서울 시내 백화점에서 일하며 이날 행동에 참여한 김모씨는 “원래부터 의자가 있었지만 한 번도 앉아보지 못했다”라며 “계속 서서 일하는 게 오래 할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앉아서 일하면 다리에 무리도 덜 가고 해서 회사도 더 오래 다닐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국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선전부장은 “서비스 노동자들은 앉을 권리, 쉴 권리, 존중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채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으며 일하고 있다”면서 “앉을 권리 쟁취를 위한 공동 행동을 시작으로 휴게실과 화장실, 창고 시설의 개선과 감정노동자로서 보호받을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혜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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