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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이는 노인 일회용기저귀에 병원 몸살

입력
2018.10.09 04:40
수정
2018.10.09 09:3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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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요양병원 창고에 노인 기저귀가 쌓여 악취가 진동합니다. 의료폐기물 업체가 벌써 3주째 수거해가지 않고 있어요. 업체 측은 소각 처리 능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고 해서 병원 창고에 임시로 기저귀를 쌓아두고 있는데, 이제 공간이 부족합니다. 기저귀는 갈수록 쌓이고 의료폐기물 처리도 못하는데, 도대체 어쩌라는 겁니까.” (A요양병원 병원장)

8일 한국의료폐기물공제조합 홈페이지에는 이 같은 항의성 민원이 다수 올라와 있다. 현재 의료기관에서 배출되는 일회용 기저귀는 발생단계부터 전용 용기에 담아 밀봉해 의료폐기물로 처리해야 한다. 결핵 등 감염병이 의심되거나 다제내성균(3가지 이상 항생제에 듣지 않는 균)을 보유한 환자의 분변이 묻은 기저귀를 일반폐기물로 소각했을 경우 토양 오염으로 인한 전염병 확산 등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비용을 많이 들여 엄격히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폐기물을 소각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한계에 도달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료폐기물 배출량은 지난 2013년 14만7,000톤에서 지난해 20만7,000톤으로 43.7% 늘었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10만8,000톤을 넘었다. 그러나 의료폐기물 처리 업체는 전국 13곳에 불과하고, 이들은 지난해 허가 받은 처리용량의 15%를 초과한 양을 소화했을 정도다. 더 이상 폐기물을 받을 여력이 없는 상태다. 이러다 보니 일부지역에선 업체들이 의료폐기물을 수거해가지 않거나 처리 가격을 올려 의료기관과의 갈등도 끊이지 않는다.

[저작권 한국일보]의료폐기물_신동준 기자/2018-10-08(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의료폐기물_신동준 기자/2018-10-08(한국일보)

이런 와중에 요양병원들을 들끓게 한 건 환경부가 지난 7월 입법예고한 ‘폐기물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다. 요양병원 등 의료기관이 아닌 노인요양시설(요양원 등)에서 발생된 일회용 기저귀 중 설사ㆍ구토ㆍ혈변 등 감염병 의심 증상이 있는 환자 등에서 발생되는 일회용 기저귀가 아니면 의료폐기물에서 제외하고 일반폐기물로 소각 처리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노인 환자가 많은 요양병원이나 일선 의료기관들이 “우리도 ‘분리 배출’을 허용해 달라”고 들고 일어선 것이다. 손덕현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수석부회장은 “의료진이 상주하지 않는 요양시설에 비해, 의료기관들은 감염병 의심환자를 구분해 폐기물을 배출하는 게 더 용이하다”고 말했다.

시행령 개정안의 모호한 규정을 두고도 말들이 나온다. 노인요양시설에서 ‘감염 위험성이 있는’ 기저귀만 별도로 분리해내 의료폐기물로 처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대학병원들도 환자들의 다제내성균 감염 여부를 구분하기 어렵고, 구분하려면 인력과 비용을 추가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의료폐기물로 일괄 분류하는 실정”이라며 “요양시설이든 병원이든 현장에서 적용하기 쉽도록 감염병 구분 규정이 세세하게 마련되지 않으면 분리배출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승희 의원도 “의료폐기물 발생량을 줄이려고 환경부가 요양시설부터 일반폐기물로 처리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기저귀의 감염 위해성에 관한 조사도 없고 구분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며 “복지부가 기저귀를 비롯한 의료폐기물 처리에 따른 감염위해성 연구 조사를 실시하고, 의료폐기물이 보다 친환경적으로 처리되도록 멸균처리시설 확대도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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