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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보헤미안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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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영화 ‘더 레슬러’였다. 미키 루크가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퇴물 프로레슬러 ‘랜디’ 역을 맡아 화제가 됐다. 루크라면, ‘나인 하프 위크’에 나온 왕년의 섹시스타였으나 약물과 성형 부작용 등 할리우드 스타라면 흔히(?) 겪을 만한 일들로 다 망가진 배우였으니 놀랄 일이긴 했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가장 반가웠던 건, 배경으로 깔리는 1980년대 록음악들이었다. 그리고 랜디의 일갈, “록음악은 커트 코베인이 다 망쳤어!” 1990년대 초 록음악의 지형도를 바꿨다는 밴드 너바나의 리더 코베인에게 이런 한방이라니!
□ 전설의 그룹 퀸이 등장하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러 간다는 건, 랜디의 일갈이 주던 묘한 감흥을 되살리는 일이다. 그래 봤자,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이 영화는 어차피 ‘아재 인증 영화’가 될 뿐이겠지만. 실제 이 영화는 아재용으로 충분하다. 퀸 멤버들 얼굴, 무대, 춤, ‘고음불가’ 영역에다 피아노 위 콜라 잔까지 묘사한 거야 그렇다 쳐도, 브라이언 메이의 약간 구부정한 포즈까지도 연기해 내는 걸 보고 감탄했다. 영화 보고 나면 다들 퀸 음악 다시 듣기에 여념 없다는 이유를 알 만했다.
□ “좋은 말, 좋은 생각, 좋은 행동.”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모를 젊은 시절의 아들 머큐리를 지켜보던 아버지가 꾸짖듯 내뱉는 대사다. 흔한 아버지표 잔소리 같지만 이 말은 조로아스터교의 핵심 가르침이다. 이 대사가 반복되는 건, 아마 머큐리의 투쟁을 잘 보여 주는 문구라 생각해서일 것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선악 이원론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지만, 선악투쟁에서 신의 뜻 같은 어떤 외적 필연성보다 선행으로 향하는 개인의 내적 선택을 중시한다. 머큐리의 음악은, 넌 선으로 향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 정체성 이야기는 ‘나다운 삶’이 화두로 떠오른 요즘 시대에 가장 잘 팔리는 문화상품이다. 시험점수 빼곤 딱히 다른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더 정체성에 매달리는 기이한 시대 덕이다. 아랍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나 세계적 팝스타가 되고서도 ‘그 안에는 겁쟁이 파키스탄 꼬맹이가 있다’는 소릴 들어야 했던 머큐리지만, 에이즈 발병 와중에도 ‘내가 누군지는 내가 결정한다’고 선언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문화상품이 아닌 ‘나다움’을 고민하는데 도움됐으면 좋겠다라고 쓰려니, 역시 이 영화는 아재 인증 영화인가보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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