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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의 입기, 읽기] 고쳐 입을까, 다시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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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서 구입한 점퍼가 하나 있다. 폴리에스테르 겉감에 솜 충전재도 살짝 들어 있고 손목과 허리에는 바람을 막는 리브(rib)가 붙어 있다. 플라이트 점퍼, 혹은 항공 점퍼라고 부르는 옷인데 원래 군용이었지만 일상 생활에 적합하게 살짝 개조해 놓은 제품이다. 요즘처럼 기온이 급격하게 변하고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 유용하기 때문에 몇 년 째 열심히 입고 있다.
오래 입다 보니 옷에 문제가 생겼는데 허리 리브 부분이 어딘가 걸렸는지 뜯어져 나갔다. 사실 리브는 쓰면 닳는 소모품이라 비싼 소재, 고급 제품 등의 경우 리브 부분을 교체해가며 입을 수는 있다. 그래서 이런 대체용 리브 중에는 울로 만든 고급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 브랜드 제품, 특히 세일 가격으로 구매한 항공 점퍼라면 리브 교체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일단 허리 리브 교체 비용을 알아보니 점퍼 구매 가격의 반이 넘는다. 간단한 수선이라면 직접 해볼 수도 있겠지만, 허리 리브는 옷을 뜯어내 다시 붙여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시도할 만한 일은 아니다. 다 제쳐두고 일단 재봉틀이 없는 게 문제다.
리브 부분을 제외한 옷 자체에는 거의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옷을 버리자니 너무 괜찮은 상태고, 고쳐 쓰자니 계산이 맞지 않는다. 이럴 때 딜레마에 빠진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사실 비용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에 더해 태도, 사회의 분위기, 시대의 흐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생각해보게 된다.
현대인에게 청결과 깔끔함은 중요한 덕목이다. 옷을 세탁하고 다림질을 하는 등 잘 관리하는 건 개인 위생뿐 아니라 사회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도 필수적이다. 패스트 패션이 자리를 잡으면서 이런 풍조에 가속도가 붙은 경향이 있다.
패스트 패션은 유행에 따라 등장했지만 사실 화려한 옷 말고도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본 아이템들도 내놓고 있다. 따라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열심히 관리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더 저렴한 경우가 늘어났다. 딱히 열심히 관리를 하지 않아도 늘 깨끗하게 옷을 입고 다닐 수가 있다. 옷에 문제가 생겨도 수선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 경우도 많다.
‘새 옷을 사지 말고 있는 걸 오래 입자’는 캠페인도 있지만 털이 나오는 구멍에 패치 스티커가 잔뜩 붙어 있고 기름때가 묻은 다운 재킷을 입고 다닐 수 있는 건 아직은 특수한 경우뿐이다. 아무리 복장 문화가 개성적으로 변하고 있어도 사무실에 입고 가기에는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사실 빈티지 캐주얼 계열이 유행하면서 등장한 변화를 즐기는 방식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 옷에는 입는 사람의 행동 방식과 버릇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드러난 특징들로 입은 이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낡고 더러운 옷 입기는 찢어진 청바지에나 허용되던 특수한 상황이었는데, 이런 변화 때문에 낡은 옷을 입는 시도가 여러 분야로 확대되었다.
또 물 낭비, 환경 오염 등의 문제가 이슈로 부각되면서 고쳐 입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 고쳐 입는 문화가 세련되려면 패셔너블함이나 단정함의 사회적 정의가 달라져야 한다. 최근엔 이왕 고쳐 입는 거 눈에 확 띄게 수선을 해 튀는 모양을 일종의 멋짐으로 여기는 움직임도 있다.
그래도 고쳐 입기는 아직 몇몇 개인의 취향이거나, 이제 막 시작되는 사회운동의 일부분일 뿐이다. 점퍼의 리브를 수선하지 않고 새로 구입했어도 그건 잘못한 일이 아니다. 환경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옷에 환경 부담금 같은 걸 물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개인이 가치를 두는 방향에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다만 이런 작은 작은 시도들이 이어지면 사회에서 발생되는 옷 쓰레기의 양이 대거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선택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해도, 고쳐 입기로 환경보호에 작은 도움을 보탤 수는 있겠다.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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