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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생태] 사람 습격 현장에 남은 털 한 올... 범인은 바로 오소리였구나!

입력
2019.01.26 04:40
수정
2019.01.26 09:59
12면

 목ㆍ종별 특징 분류한 '동정키' 

 생태ㆍ고고학ㆍ과학수사에 활용 

 

 동물 목ㆍ종에 따라 털형태 달라 

 토끼털 표면은 긴줄무늬가 특징 

그림 3삵 털의 큐티클. 국립생태원 제공
그림 3삵 털의 큐티클. 국립생태원 제공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신고 호박마차를 타고 무도회장에 갔습니다. 반짝반짝 유리구두는 신데렐라의 상징인데 원래는 털 슬리퍼라고 합니다. 신데렐라가 탄생한 시대를 생각하면 사냥한 동물의 털로 만든 슬리퍼일 것인데, 어떤 동물의 털인지 궁금해집니다.

2, 3년 전 한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동물 털을 보낼 테니 어떤 털인지 알아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밤에 사람을 습격했다며 어떤 동물인지 밝혀서 방송한다고 합니다. 받아보니 길고 구불구불하며, 약간의 두께감도 있는 털로 일차적으로는 식육목 동물의 털로 보였습니다. 현미경으로 관찰해 본 결과 오소리 털이었습니다. 털만 가지고 오소리인 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동물 목과 종마다 털 형태 달라 

네, 오늘은 털 이야기입니다. 털은 케라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케라틴은 구조단백의 일종인데 피부, 모발, 손톱에 분포하며 세포 골격을 이루는 주요 구성성분입니다. 포유류의 털, 손발톱, 뿔 등은 나선형 구조인 α-케라틴, 조류와 양서류, 파충류의 피부, 깃털, 부리 등은 판상형 구조인 β-케라틴으로 머리털과 깃털은 좀 다르답니다.

동물의 털은 보온과 체형유지의 역할을 합니다. 털은 길고 뻣뻣한 털(guard hair)과 몸 구석구석에 난 가늘고 부드러운 구불구불한 털(fine hair)로 나뉩니다. 가늘고 구불구불한 털은 보온의 역할을, 뻣뻣한 털은 체형 유지 등의 역할을 합니다. 길고 뻣뻣한 털은 신기하게도 동물 종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이것이 하나의 표식(key)이 됩니다.

털의 구조를 한번 보겠습니다. 털 한올은 털끝과 모근이 있으며 털끝 부분인 윗부분은 실드(shield), 모근이 있는 아랫부분은 섀프트(shaft)라고 합니다. 그리고 겉표면에는 큐티클(cuticular scales)이 있으며, 털을 관찰, 분류한 네덜란드 학자 테링크(B.J. Teerink)에 따르면 속단면은 수질(medulla)과 피질(cortex)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목(order)과 종(species)에 따라 털 한올의 형태가 다릅니다. 그리고 수질과 피질, 큐티클의 형태도 목과 종에 따라 다릅니다.

이 정보들(표식ㆍkey)을 모아 분류를 하여 동정키를 만들면 이것을 대조해서 털 한올로 어떤 동물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저는 현미경을 이용하여 정보들을 분류했습니다. 큐티클은 주사형 전자현미경을, 속단면은 광학현미경을 사용하여 수질을 관찰합니다. 현미경으로 관찰한 털의 표면과 단면은 매우 예쁘며 또 다른 세상을 보는 듯합니다.

멧토끼 털의 단면. 국립생태원 제공
멧토끼 털의 단면. 국립생태원 제공

 ◇털의 공통 표식으로 동정키 만들어 

그럼 목별로 털을 훑어보겠습니다. 먼저 토끼목과 설치목의 큐티클입니다. 이 목들의 큐티클은 종별로 다른 만큼 특징이 많으며 예쁜 무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토끼목은 기다란 줄무늬 표면을, 설치목은 다이아몬드형 꽃잎 표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큐티클에서 특징이 잘 나타나는 부분은 털 뿌리에 가까운 섀프트 부분입니다.

다음은 속단면인데요, 토끼목과 설치목 모두 네모난 방들과 기왓장을 엎어서 겹쳐놓은 형태가 보입니다. 수질의 세포인데 안에 공기가 들어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이 있습니다. 속표면은 실드와 섀프트 부분을 보며 같은 털이라도 두 군데의 형태가 다릅니다.

식육목의 큐티클도 매우 예쁩니다.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식육목인데 이렇게 큐티클 형태가 예뻐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예쁩니다. 설치목들과 비슷한 다이아몬드형태 꽃잎 표면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수달과 삵의 털 표면이 실제 꽃잎 같아서 제일 맘에 듭니다. 속단면은 실타래가 엉킨 듯한 형태를 보입니다. 그러나 수달만은 희한하게도 입체적인 형태로 계속 보면 매직아이처럼 속단면 수질이 튀어나올 듯합니다.

수달 털의 수질. 국립생태원 제공
수달 털의 수질. 국립생태원 제공

우제목은 큐티클이 모두 물결무늬이며 속단면은 불투명하게 수질이 차 있거나 합니다. 우제목의 털은 너무 평범해서 특징을 잡기가 어려운데요, 그 중에서 고라니, 노루가 좀 특이합니다. 큐티클 형태는 물결무늬로 단순하지만 속단면은 벌집 형태입니다. 털 전체가 속이 빈 벌집구조여서 털이 쉽게 꺾이고 구부러집니다. 속이 벌집구조로 된 빨대를 생각하시면 상상하시기 쉬울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두더지가 속해 있는 식충목이 있습니다. 두더지 털 만져보셨나요? 토끼털보다 굉장히 부드럽고 촘촘합니다. 두더지, 땃쥐 등을 포함한 식충목들은 크기도 작아서 털이 굉장히 가늘고 짧은 탓에 눈에 잘 보이지 않아 관찰이 힘든 점이 있습니다. 그래도 나름 특징이 있어요. 큐티클은 기다란 다이아몬드 형태의 꽃잎이며 속단면은 둥글넓적한 세포방들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이것만 봐도 ‘식충목 털이구나’라고 알 수 있지만 종 수준까지는 털 형태가 비슷해서 판별이 쉽지 않습니다. 또 하나, 털 한올의 형태가 얇은 부분, 굵은 부분이 반복되어 있어 이것도 식충목만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털 단면은 대부분이 둥근 원형 혹은 타원형입니다만 신기하게도 설치목과 토끼목의 털 단면은 다양합니다. 원형과 타원형 외에 적혈구형, 네귀정방형, 네귀직방형 등이 있습니다. 비단털들쥐와 멧토끼가 네귀정방형, 네귀직방형인데 털 한올이 이런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렇게 털의 형태적인 정보를 모아 목별, 종별로 분류하여 체계화하면 항목에 따라 공통된 표식이 보입니다. 이것을 동정키라고 하는데 형태적인 특징 하나만으로도 동정키가 나와서 종 분류가 대부분 됩니다.

 ◇동정키는 주로 생태조사에 활용 

그럼 이렇게 체계한 동정키는 어디에 사용할까요? 앞서 설명했듯이 털 하나로 어떤 동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생태조사에 많이 이용이 됩니다. 야생동물들의 흔적 조사는 발자국, 똥, 털 등으로 합니다. 털이 떨어진 곳에서 시작해 다른 곳에 같은 털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면 동물이 어느 방향, 어느 경로로 다니는지, 이동이나 서식반경을 알 수가 있고요. 이 털이 어떤 동물의 털인지도 이렇게 동정키로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육식동물의 똥에서 나온 털로 어떤 동물들을 먹었는지 섭식분석도 가능합니다. 이렇듯 생태조사에서 털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생태조사 외에 지질ㆍ고고학 연구에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화 ‘쥬라기 공원’처럼 호박 등에 들어있는 털이 어떤 동물의 털인지도 동정키로 알 수 있어 그 시대의 동물상과 생태 등을 아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과학수사에도 사용이 되는데요. 동물의 털은 수사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데, 털 형태를 조사해 범인을 잡는 과학수사가 해외에서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야생동물 털로 털 장식 등을 만들려는 밀렵이 횡행하고 있는데요, 밀렵꾼들을 소탕하기 위해서도 털 동정키가 큰 역할을 합니다. 유전분석을 하면 바로 알 수도 있지만 말라버리거나 털뿌리가 없는 털이라면 유전분석으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를 보완하기 위해서도 형태적인 특징으로 구축한 동정키가 필요합니다.

두더지 털의 수질. 국립생태원 제공
두더지 털의 수질. 국립생태원 제공

 ◇동정키는 과학수사에도 결정적 단서 제공 

과학수사가 나와서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일본에서 반려동물로 페렛(식육목 족제비과의 포유류)을 키우던 사람이 페렛을 학대해 죽였습니다.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용의자는 검거가 되었는데, 증거 확보를 위해 용의자의 집을 샅샅이 뒤졌지만 집은 이미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카펫을 뒤져서 동물의 털로 보이는 것을 찾았습니다. 이 털들을 현미경 분석을 통하여 동정을 한 결과 페렛의 털임이 밝혀져 용의자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털 동정키를 이용하여 범인을 잡은 사례였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례가 있습니다. 언젠가 민가에 있는 닭장에서 닭들이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어떤 동물이 들어가서 물고 죽이고 했다는데 다행히 그 동물의 털이 닭장 틈새에 끼어있어서 그 털을 받았습니다. 닭 주인 입장에서는 억울하죠. 어떤 동물이 그랬는지 빨리 잡고 싶었을 겁니다. 털을 받고 현장도 가 보았습니다. 수사관이 된 듯했습니다. 야산 비탈에 있는 민가의 닭장은 비어있었고 주변은 논밭에 뒤로는 산이고 흔히 보는 시골 풍경이었죠.

현미경으로 분석하고 동정키로 대조해 본 결과 그 털은 개의 털이었습니다. 삵이 범인일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빗나갔던 것입니다. 이후 다시 현장에 가 보니 근처에 개들이 몇 마리 어슬렁대고 있었습니다. 근처에서 키우는 개들인지 떠돌아다니는 개들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 개들이 범인이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개털이라는 과학적 증거가 있었음에도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범인을 잡지는 못했습니다. 개들에게 “닭을 잡아간 것이 너희들이지? 자백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증거는 있지만 자백을 받을 수 없으니 우습고도 슬픈 해프닝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등줄쥐 털의 큐티클. 국립생태원 제공
등줄쥐 털의 큐티클. 국립생태원 제공

처음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 동정키를 가지고 신데렐라의 털 슬리퍼의 털을 살펴 본다면 어떤 동물의 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신데렐라는 과연 어떤 동물의 털로 만든 슬리퍼를 신고 무도회에 갔을까요?

이은옥 국립생태원 융합연구실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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