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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Biz리더] 주식거래 수수료 ‘0’ 파격 서비스… 월가 뒤흔든 ‘로빈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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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의 심장부 월스트리트에서 금융업자들의 탐욕을 성토하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street)’ 시위가 한창이던 2011년. 월가에서 일하면서도 시위에 적극 공감하는 두 청년, 블라디미르 테네브(32)와 바이주 바트(34)가 있었다.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 동문인 두 사람은 고객들이 주식을 사고팔 때마다 받아낸 수수료로 고액 연봉과 퇴직금을 챙기는 증권업계에 분노했다. “이들의 권력을 모조리 회수해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
귀족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을 도왔다는 중세 영국의 의적(義賊) 로빈 후드를 떠올리게 하는 두 사람은 2014년 자신들이 개발한 모바일 주식거래 애플리케이션(앱)에 ‘로빈후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앱 사용자에게 수수료 없는 주식 매매를 가능케 한 이 앱의 캐치프레이즈는 ‘주식 거래 1건당 10달러를 내는 일을 그만두라’였다. 증권업 면허를 받았지만 여느 경쟁사처럼 영업점을 두거나 리서치 보고서를 발행하는 비용을 줄여 고객에게 무료 거래 혜택을 부여한 것이다.
로빈후드는 출시 4년 만에 앱 이용자 400만명, 거래 종목 1만개, 주식 거래액 1,500억달러의 성과를 내며 월스트리트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유명 래퍼 스눕독과 제이지의 투자로 로빈후드의 인지도는 더욱 높아졌다. 테네브는 “스눕독을 비롯한 초기 엔젤투자자들은 기존 금융산업에 대한 우리의 반항심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뒤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이끄는 스라이브캐피털, 러시아 출신 벤처투자자 유리 밀너의 DST글로벌 등도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이제 로빈후드의 기업가치는 60억달러(6조7,800억원)로 불어났다. 두 창업자는 회사 지분의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각자의 자산이 10억달러(1조1,300억원)에 이른다.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라
로빈후드의 성공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적극적 지원이 있었다. 실제 로빈후드 이용자 400명 중 절반 이상이 18~34세 이용자다. 이들은 성장기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금융계의 적나라한 치부를 목도한 이들이었다. 내로라하는 투자자들이 신생 온라인 증권회사에 거액을 투척한 이유가 장래 미국 사회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들의 열렬한 호응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건 불문가지다.
로빈후드의 또 다른 인기 비결은 압도적인 편의성에 있다. 앱을 다운받고 주식을 매매하는 데까지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도 장점이다. 테네브는 “기존 증권사들은 엔지니어 직원이 없기 때문에 앱을 내놔도 속도가 느리고 멋진 사용자 환경을 만들 능력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로빈후드에선 온라인 쇼핑을 하듯이 주식을 매매할 수 있다. 그래서 수십 개 종목을 한두 주씩 사서 모으는 방식의 소액 포트폴리오 투자자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기존 증권사에서 이런 투자를 하려면 많게는 수천 달러의 수수료가 들게 마련이다. 온라인 증권사라고 해도 거래 한 건에 4.95~6.95달러의 수수료가 붙기 때문에 부담이 만만치 않다.
로빈후드는 수수료 수익을 과감히 포기하는 대신 영업점, 리서치 보고서, 분석 도구 등을 없애 비용을 최소화했다. 운영비는 예치금의 이자 수익으로 충당하고 있다. 로빈후드 출시 후 4년 동안 이용자들이 절약한 수수료 비용은 10억달러 이상으로 추산된다.
◇75번의 거절, 출발은 쉽지 않았다
로빈후드의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테네브와 바트는 그들 자신이 밀레니얼 세대다. 스탠퍼드대에서 각각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이들은 2008년 대학원에 다니면서 샌프란시스코 소재 무역회사에 근무하다가 “둘만의 회사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2011년 뉴욕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두 사람은 헤지펀드와 은행을 대상으로 ‘고(高)빈도 매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크로노스리서치’를 창업했다. 바트는 “크로노스리서치는 우리의 영적 기반이 된 회사”라고 말한다. 이때 만든 소프트웨어나 개발 툴이 로빈후드를 만드는 토대가 됐다는 얘기다. 당시 두 사람의 관심사는 증권시장의 미래를 선도할 기술이었다. 종이 증권을 들고 객장을 찾던 시대를 지나 모든 금융거래가 뉴저지의 데이터센터를 통해 이뤄지는 현실에서 가장 빠르고 자동화된 주식매매 시스템을 누가 보유하느냐가 성패를 가를 걸로 내다봤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획기적 프로그램들이 쏟아졌지만 월가 터줏대감들의 입지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바트는 “자동거래 시스템으로 거래 비용이 대폭 줄었는데도 금융사들이 과도한 이익을 거두는 폐단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듬해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이들은 ‘로빈 후드’가 되기로 결심했다. 모든 이들이 거래 수수료 부담 없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온라인 주식매매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은 것이다.
로빈후드 앱이 정식 출시된 건 2014년 12월. 투자 유치가 쉽지 않다 보니 개발에 2년 6개월이 소요됐다. 무료 주식거래라는, 시장 질서를 흔드는 파격적 시도에 누구도 선뜻 돈을 꺼내놓지 않았다. 테네브는 “구글벤처스로부터 300만달러를 투자 받기 전까지 벤처캐피털 75곳으로부터 거절 당했다”고 돌아봤다. 시작은 힘들었지만 일단 서비스를 내놓자 일이 순조롭게 풀렸다. 서비스 시작 한 달 만에 고객 10만 명을 확보한 것이다.
◇진화하는 로빈후드 서비스
로빈후드는 초기 투자 유치부터 ‘수익 구조’에 대한 의구심에 시달렸다. 두 창업자가 꺼내든 대응 카드는 ‘부분 유료화 모델’이다. 지난해 내놓은 프리미엄 서비스 ‘로빈후드 골드’는 매달 일정액을 내면 시간외 거래(개장 전 30분간, 마감 후 120분간)가 가능하다. 투자 정보가 확실하다면 장외에서 주식을 선점하거나 매각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골드회원은 마진거래도 할 수 있다. 마진거래는 매매대금의 일정 비율을 증거금으로 예탁하는 조건으로 증권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매매를 하는 신용거래다. 월정액이 많은 회원일수록 로빈후드가 빌려주는 액수도 커진다. 월 40달러를 내면 8,000달러를 차입할 수 있다.
로빈후드 골드 서비스는 철저한 이용자 분석에서 비롯했다. 바트는 “우리는 사용자 리서치팀을 통해 고객과 수시로 소통하는 한편 이들의 사용 패턴과 정보를 분석해왔다”며 “이 과정에서 보다 다양한 주식 거래를 원하는 이용자 수요를 파악해 만든 것이 로빈후드 골드 서비스”라고 말했다. 이 서비스를 통해 늘어난 이용자가 전체의 17%에 달한다.
로빈후드는 나아가 지난해 초 가상화폐(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거래 서비스를 내놨다. 물론 거래 수수료는 없다. 대표적인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매수자와 매도자 모두에게 1.4~4%의 거래 수수료를 받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로빈후드 창업자들이 붙들고 있는 초심은 ‘보다 많은 사람에게 더 효율적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다짐이다. 테네브는 지난해 이렇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의 요구다. 시장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나, 내 기술은 시장 요구에 부합하나, 우리는 이것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나. 모두 처음의 다짐을 잊지 않고 실행해야 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다. 어떤 회사가 초심을 정확히 지켰는지가 드러나는 데 1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본다. 로빈후드가 나온 지 4년이 지났으니 남은 6년 동안 계속 나아가겠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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