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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부디 ‘백만 번째 삶’을 살았던 고양이기를

입력
2019.05.30 16:32
올해 봄, 함께 살던 열여덟 살 고양이 대장이 떠났다.
올해 봄, 함께 살던 열여덟 살 고양이 대장이 떠났다.

내게 올해 봄은 잔인했다. 열여덟 살, 함께 살던 나이든 고양이 대장이 떠났다. 길에서 6년을 살다가 함께 살게 된 아이라서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는데 진료했던 수의사 선생님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최소 열여덟 살. 스무 살일 수도 있는 노묘. 크게 아픈 곳 없이 천수를 누렸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데 위로가 되지 않는다. 대장은 떠났고, 나는 남았다.

반려동물과 살고, 길고양이를 돌보다 보니 아이를 떠나 보낸 경험이 있고, 펫로스 책도 출간한지라 관련 주제로 종종 강연을 한다. 나이든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 늘 최선일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한 선택이니 자책하거나 심하게 후회하지 말고, 나이든 존재를 돌보는 노동은 노력의 양이나 간절함과 상관없이 결과가 정해져 있으니 자책하지 말고, 충분히 슬퍼하고 행복하게 기억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정작 나는 매번 이별의 순간에 흔들린다. 닥쳐오는 속도 때문에.

떠나기 전 3일간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었지만 일주일 전만 해도 나와 함께 골목을 어슬렁거리던 아이다. 더 뒤로 가면, 고작 넉 달 전에 식욕이 떨어지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건강했고, 지병도 없었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아이는 떠났는데 이렇게 복기나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지만 그게 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이든 동물의 4개월은 인간으로 치면 1년도 넘는 시간이고, 아이들과 살면서 만남과 헤어짐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으면서도 매번 이렇게 힘들다.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대장은 나와 함께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대장은 나와 함께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가장 많이 흔들린 순간은 떠나기 이틀 전이었다. 안락사를 고민했다. 스스로 먹지 못하고, 배변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심한 고통을 호소하면 보내주자고 평소에 안락사 기준을 세워두었다. 그 기준에 다 부합하지도 않고, 움직이지 못한지 고작 하루가 지났는데 아이가 짧게나마 고통으로 몸을 떨 때면 흔들렸다. 그냥 두면 며칠은 이런 고통을 견뎌야 할 텐데 며칠이 아이에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다.

어차피 죽음은 피할 수 없이 코앞까지 와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는 것일 뿐 아이도 알까? 몇 년 전 치사율 높은 병에 걸린 어린 고양이를 돌봤는데 떠나기 전 며칠 동안 나는 아이의 눈빛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본 것 같았다. 반면 19년 간 함께 살았던 반려견은 큰 고통 없이 서서히 노쇠해 가는 과정에서 다가온 죽음에 대한 인식은 없어 보였다. 철학자 레이먼드 게이타는 <철학자의 개>에서 자신의 나이든 반려견의 눈빛에 “죽음의 필연성에 대한 비애감이 배어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고 표현했다. 반려인으로서 반려견이 죽음의 필연성에 대한 비애감을 느낀다고 여겼지만 철학자로서 개가 그걸 느꼈을 리가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나는 대장의 눈빛에서 봤다. 가족과의 이별을 직감한 애잔함을. 이별을 직감했다면 죽음의 필연성도 인식한 것일 터였다. 대장이 죽음을 인식하고 있다면 그의 생각을 존중하면서 앞으로의 선택을 함께 고민해보자 하는 사이, 아이는 이틀을 가족과 함께 있다가 큰 고통 없이 스스로 떠났다.

나무에 오르기를 좋아하던 대장의 모습.
나무에 오르기를 좋아하던 대장의 모습.

대장이 떠나고 가족에게 대장은 어떤 의미였나 생각했다. 딸이었고, 동생이었고, 삶의 동반자였고, 선물이었고, 스승이었고…. 그렇다면 대장에게 우리는 어떤 의미였을까. 사노 요코의 글과 그림을 좋아하는데 그 중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오래 전에 처음 읽고 눈물을 뚝뚝 흘린 책이다. 백만 번이나 고양이로 태어났던 얼룩 고양이는 왕, 뱃사공, 여자아이, 할머니 등 백만 명의 사람을 만나 함께 살았고 사랑 받았지만 죽을 때마다 그들과 헤어지는 것이 슬프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백만 번째 도둑고양이로 태어났을 때, 마침내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게 되었다. 얼룩고양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살았고, 좋아하는 고양이를 만나 새끼도 낳고 함께 늙었다. 어느 날 사랑하는 고양이가 죽자 백만 번의 낮과 밤을 울던 얼룩 고양이는 사랑하는 고양이 옆에서 잠든 후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

떠난 나의 대장아, 너의 삶도 얼룩 고양이처럼 ‘백만 번째 삶’이었기를.
떠난 나의 대장아, 너의 삶도 얼룩 고양이처럼 ‘백만 번째 삶’이었기를.

떠난 나의 대장을 비롯한 모든 나이든 개와 고양이가 얼룩 고양이처럼 이번 삶이 백만 번째 삶이면 좋겠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존재로 태어나, 누구보다 자기의 삶을 사랑하고, 자기보다 더 사랑하고픈 존재를 만나,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사랑하다가 떠나는 삶이기를 바란다. 그게 모든 존재의 이유이자, 목적이 아닐까.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철학자의 개>, 레이먼드 게이타, 돌베개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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