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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우선주차구역은 왜 분홍색일까… 색깔로 성별 가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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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조례 ‘분홍색 실선ㆍ마크’… 전문가 “개인 다양성 침해”
아동 동반 남성도 이용 가능한데‘성차별적 공간’ 오해 부르기도
주차장에 들어서면 출입구와 가까운 쪽에 설치된 ‘여성우선주차구역’이 눈에 들어온다. 자세한 안내 문구가 없어도 분홍색 구획선과 ‘치마 입은 사람’ 픽토그램만 보면 여성을 위한 주차 공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눈에 잘 띄고 의미 전달이 빠르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분홍색으로 여성주차구역을 표시하는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다. 색깔로 성별을 양분하는 고정관념이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데다 여성에게만 ‘주차 명당’을 제공한다고 느끼는 남성 운전자들의 반감까지 더해지면서 분홍색은 점점 불편한 색깔이 되어가고 있다. 주차장 운영 주체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적용할 법도 한데 왜 죄다 분홍 일색일까?
서울시 조례가 그렇게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09년 ‘여성행복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여성우선주차장을 도입하면서 ‘분홍색 실선과 여성 마크’를 주차장 설치 및 관리 조례 제25조로 규정했다. 치마가 그려진 여성 마크 도안은 별도 서식에서 정한 그대로다. 해당 조례에 따르면 주차 대수 규모 30대 이상 주차장 운영자는 전체의 10% 이상을 여성우선주차구역으로 설정해야 한다. 지하 주차장에서의 여성 대상 범죄를 예방하고 유아를 동반한 여성이나 임산부를 배려한다는 취지다. 그런데 서울시는 왜 하필 분홍색을 택했을까?
‘여자는 분홍’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따른 결과다. 최근 개선되고 있는 성 인식 수준으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서울시의 설명이 그렇다. 서울시 주차계획과 관계자는 27일 “2009년 당시만 해도 색깔로 성을 구분하는 고정관념이 존재했고, 다른 주차구역으로부터 여성 주차구역을 구분하기 위해 분홍을 자연스럽게 채택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사실 분홍색 구획선은 눈에 잘 띄고 색깔로 인한 불편사항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분홍’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까?
젠더 문제를 다뤄 온 전문가들은 색깔로 성별을 구분하는 고정관념이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김연주 서울시 여성정책담당관 젠더자문관은 “분홍은 ‘예쁨’ 또는 ‘화려함’의 통념을 넘어 ‘여자다움’으로까지 연결되기도 한다”면서 “색을 통해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에 대해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있고, 불편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기준 서울시내에 설치된 분홍색 여성우선주차구역이 4만6,000여 면에 달하는 만큼 ‘분홍=여성’을 강요하는 환경에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나진경 서강대 심리학과 교수는 26일 “주위에 주어진 정보들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우리 인식과 태도에 영향을 주는데, 성별과 관련한 안내판의 경우 개인의 성 고정관념과 태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여성우선주차장은 금남의 구역이 아니다. 아동을 동반한 남성도 이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성 우선’이라는 명칭에 분홍색까지 더해지며 여성만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굳어져 왔다. 이런 이유로 출입구와 가까운 분홍색 주차 공간은 종종 ‘성차별적 공간’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위반 시 처벌 규정이 없고 일반 남성 운전자 차량이나 업무차량이 여성우선주차구역을 점령하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여성들의 불만도 크다.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여성가족정책실을 비롯해 서울시 내부에서도 분홍색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어 왔다. 특히, 서울시의 정책 방향을 자문하는 ‘더 깊은 변화 위원회’가 지난해 여성우선주차장에 적용된 분홍색이 부적절하며, 여성 외 다양한 교통 약자를 위한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색상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조례를 개정해야 하는 데다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는 등 다양한 문제가 겹쳐 보류된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기존 여성우선주차장의 분홍색을 모두 바꿀 수 없는 만큼 일단 최근 추진 중인 ‘임산부배려주차장’에 보라색을 적용하기로 했다”면서 보라색을 택한 이유에 대해선 “성 평등을 뜻하는 색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점차 허물어지는 색깔 고정관념
‘여자는 분홍, 남자는 파랑’이라는 고정관념이 아직 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로 인한 성차별 문제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공공시설물의 색상을 채택하는 과정에도 성별로 인한 차별을 줄이려는 노력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경기 시흥시는 여성뿐 아니라 유아 동반 남성, 노약자, 임산부, 몸이 불편한 사람 등 다양한 교통 약자를 위해 2013년 ‘배려주차장’을 도입했다. 연보라색을 적용한 주차면 안쪽에는 치마 입은 여성 대신 유모차 미는 사람, 임산부, 노약자를 그려 넣어 ‘여성만을 위한 공간이 아님’을 강조했다. 시흥시 관계자는 연보라색에 대해 “남성의 색인 파란색과 여성의 분홍색을 합친 ‘중성 색’”이라고 밝혔다.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남녀를 구분한 화장실 안내판 역시 뿌리깊은 성별 고정관념의 산물이지만 점차 색깔을 통일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서울시도 이달 초 본청과 시민청, 도서관에 있는 화장실 안내판을 단색으로 전면 교체하고 시 산하기관과 공공시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는 “화장실의 색상 구분은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성별 고정관념의 대표적 사례”라며 “주변의 흔한 고정관념에서부터 벗어나 보고자 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또한, “색상 외에도 ‘여성은 치마, 남성은 바지’라는 통념까지 바꿔보고 싶었지만 이마저도 없애면 마땅히 남녀를 구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색상만 통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정예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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