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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경제’ 외친 문 대통령 “민주주의 향한 길 중단할 수 없다”

입력
2020.06.1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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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ㆍ10민주항쟁 33주년 기념사 전문 

 “더 큰 민주주의 향한 길 중단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지속가능하고 보다 평등한 경제는 제도의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6ㆍ10민주항쟁 33주년을 맞은 이날 서울 용산 남영동의 옛 치안부 대공분실에서 열린 기념식 기념사에서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공안당국이 민주인사들을 고문하던 ‘독재와 폭력’의 공간이었으나,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되면서 민주주의 공간으로 재탄생 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가 당연하다고 느낄 때일수록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해야 한다”며 “민주주의는 제도를 넘어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가정과 직장에서의 민주주의야말로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들에 대한 훈포장 수여도 이뤄졌다. 민주주의 발전 공로자에 대해 포장이 아닌 훈장이 수여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아래는 문 대통령 기념사 전문.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민갑룡 경찰청장 등 참석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민갑룡 경찰청장 등 참석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제33주년 6ㆍ10민주항쟁 기념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6·10민주항쟁의 그날, 우리는 민주주의를 함께 만들어냈습니다.

학생들은 앞장섰고, 회사원들은 손수건을 흔들고, 택시기사들은 경적을 울렸습니다. 어머니들은 전투경찰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었습니다. 온 국민이 함께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나무를 광장에 심었습니다.

그로부터 서른세 해가 흘렀습니다. 노동자들이 평등과 단결이라는 햇빛을, 시민들은 공감과 참여라는 햇빛을 나무에 비춰주었습니다. 청년들이 어머니, 아버지가 되면서 우리의 가정에 민주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인권을 돌아보게 되었고, 한사람 한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태로울 때 우리는 촛불을 들었고, 모두와 함께 천천히, 그러나 결코 방향을 잃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나무는 어느 나라보다 더 빠르게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나눔과 상생의 민주주의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만큼 국민 모두의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입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연대와 협력의 민주주의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만든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을 코로나 방역 모범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온 국민이 함께 만든 민주주의입니다.

6·10민주항쟁 서른세 돌을 맞아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해간 열사들을 기립니다. 33년 전, 6·10민주항쟁에 함께 했던 시민들과 그 이후에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모든 분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칩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 크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제는 남부럽지 않게 성숙했습니다. 서로를 위한 마음으로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를 이만큼 성장시킨 우리 국민 모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곳은 남영동입니다. 남영역 기차소리가 들리는 이곳은, 한때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리던 악명 높았던 곳입니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민들이 오가던 이곳에서 불법연행, 고문조작, 인권침해가 벌어졌습니다.

단지 민주화를 염원했다는 이유 하나로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공포와 치욕을 겪어야 했습니다. 김근태 민청련 의장은 전기고문을 비롯한 죽음을 넘나드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1987년 1월 14일, 이곳 509호 조사실에서 서울대 언어학과 스물두 살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에 숨졌습니다.

그러나 죽음같은 고통과 치욕적인 고문을 견뎌낸 민주인사들이 ‘독재와 폭력’의 공간을 ‘민주화 투쟁’의 공간으로 바꿔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신부님들의 용기로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고, 6·10민주항쟁은 남영동 국가폭력의 진실을 세상으로 끌어냈습니다. 이제 남영동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조성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6·10민주항쟁 기념식을 열게 되어 매우 뜻깊습니다. 이 불행한 공간을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것은 마치 마술같은 위대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엄혹한 시절을 이겨내고, 끝내 어둠의 공간을 희망과 미래의 공간으로 바꿔낸 우리 국민들과 민주 인사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오기까지, 많은 헌신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들께 훈포장을 수여합니다. 한분 한분, 훈포장 하나로 결코 다 말할 수 없는, 훌륭한 분들입니다. 시민사회와 유관단체의 광범위한 추천으로 선정되었고,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전태일 열사를 가슴에 담고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평생을 다하신 고 이소선 여사님, 반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고 박형규 목사님, 인권변호사의 상징이었던 고 조영래 변호사님, 시대의 양심 고 지학순 주교님, 5·18민주화운동의 산증인 고 조비오(철현) 신부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하신 고 박정기 박종철 열사의 아버님, 언론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고 성유보 기자님, 시대와 함께 고뇌한 지식인 고 김진균 교수님, 유신독재에 항거한 고 김찬국 상지대 총장님, 농민의 친구 고 권종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님, 민주·인권 변호의 태동을 알린 고 황인철 변호사님, 그리고 아직도 민주주의의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님과 해외에서 우리를 지원해주신 고 제임스 시노트 신부님, 조지 오글 목사님, 실로 이름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이며, 엄혹했던 독재시대 국민의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분들입니다.

저는 거리와 광장에서 이분들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을 영광스럽게 기억합니다. 오늘의 훈포장은 정부가 드리는 것이지만,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역사와 감사하는 국민의 마음을 대신할 뿐입니다. 국민과 함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인고의 세월을 함께해오신 유가족 여러분께도 위로의 마음을 보냅니다. 정부는 앞으로도 예우를 다해 독립, 호국, 민주유공자들을 모실 것입니다. 애국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뜻이 후손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정부는 위대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념하는 데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18년부터 2․28대구민주운동과 3․8대전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3․15마산의거와 함께 4․19혁명까지 연결된 역사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반드시 4·3의 명예회복을 이루고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온전히 규명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합니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잘 정비되어 우리 손으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단체장을 뽑고, 국민으로서의 권한을 많은 곳에서 행사하지만,

국민 모두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지 우리는 항상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국민이 주권자입니다. 국가는 국민의 삶을 위해 존재하고, 언제나 주권자의 명령에 부응해야 합니다. 선거로 뽑힌 지도자들이 늘 가슴에 새겨야 할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두 날개로 날아오릅니다. 소수여도 존중받아야 하고, 소외된 곳을 끊임없이 돌아볼 때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합니다. 우리는 마음껏 이익을 추구할 자유가 있지만, 남의 몫을 빼앗을 자유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웃이 함께 잘 살아야 내 가게도 잘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하고 보다 평등한 경제는 제도의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실질적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가 당연하다고 느낄 때일수록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더 많이 질문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제도를 넘어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합니다. 가정과 직장에서의 민주주의야말로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입니다.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반복될 때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전진할 것입니다. 조급해서도 안 됩니다. 갈등과 합의는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릅니다. 이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처해있는 현실이 다릅니다. 현재를 위한 선택과 미래를 위한 선택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우리는 갈등 속에서 상생의 방법을 찾고, 불편함 속에서 편함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가치입니다.

평화는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민주주의로 평화를 이뤄야 합니다. 그렇게 이룬 평화만이 오래도록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의 민주주의를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힘겨운 상황 속에서 국민들 모두 서로를 배려하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민주주의 꽃인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유일한 나라입니다. 6·10민주항쟁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기적이 아닙니다. 3·1독립운동으로 시작된 민주공화국의 역사, 국민주권을 되찾고자 한 국민들의 오랜 열망이 만든 승리의 역사입니다.

16년 만에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게 되었고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기본체제를 헌법에 복원하게 되었지만, 우리 국민들이 이룬 가장 위대한 성과는 국민의 힘으로 역사를 전진시킨 경험과 집단 기억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결코 후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많은 민주주의, 더 큰 민주주의, 더 다양한 민주주의를 향해가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길은 중단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가 끊임없이 발전해가기 때문입니다. 지난 날과 같이, 우리는 잘 해낼 수 있습니다.

6·10민주항쟁 서른세 돌을 맞아, 정부도 ‘일상의 민주주의’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나무가 광장에서 더 푸르러지도록 국민들께서도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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