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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상징’ 평양냉면, 어쩌다 갈등의 대상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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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What]평양냉면이 남북관계에 끼친 영향은
양념도 없고, 막장도 없는 슴슴한 국물, 부드럽다 못해 툭툭 끊기는 면발. 자극적인 함흥냉면과는 또 다른 매력이죠. 담백한 맛의 평양냉면 말입니다.
북한 평양의 항토음식 평양냉면은 해외에서 중요한 인사를 초대할 때마다 내놓는 북한의 자랑거리인데요. 정상회담의 숨은 공신이기도 하죠. 남북 정상들이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평양냉면을 자주 즐기고는 했으니까요. 꽉 막힌 남북관계가 풀리는 중요한 변곡점이 있을 때마다 그 현장에는 늘 평양냉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평양냉면이 독해졌어요. 오수봉 옥류관 주방장의 말 한 마디 때문입니다. 그는 최근 북한의 대외선전 매체 ‘조선의 오늘’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평양에 와 이름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전혀 한 일도 없다”고 막말을 퍼부었죠.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옥류관에서 오찬으로 평양냉면을 먹었던 문 대통령을 비난한 겁니다.
‘냉면 외교’가 ‘냉면 전쟁’으로 바뀌는 건 한 순간이었어요. 여당의 비판이 쏟아지면서 평양냉면이 가진 정치적 의미도 다시 돌아보게 됐죠. 남북 평화의 상징 평양냉면은 어쩌다 갈등의 중심에 서게 된 걸까요.
옥류관 평양냉면은 맛이 없다?
평양냉면이 처음부터 맛있다고 소문난 건 아니랍니다. 북한의 고 림동욱 전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2005년 6ㆍ15공동선언 기념행사 당시 남한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남측 손님들이 옥류관에 와서 두세 그릇씩 냉면을 먹고도 돌아서가서는 ‘맛이 별로다’라고 말했다”며 “남측 기자들이 그런 식으로 기사를 썼다”고 했어요. 이어 “당시 옥류관 종사자들은 이런 말을 듣고 ‘정성을 다해 대접했는데...’라면서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곤 했다”고 설명했죠.
평양냉면 맛에 반해 여러 그릇을 비우고도 냉전 이데올로기로 인해 정작 그 맛을 인정하지 않았던 과거 남측의 태도에 서운함을 드러낸 겁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금강산관광과 남북경협 등으로 남북관계가 가까워지면서 평양냉면도 남한에서 그 맛과 가치를 인정받게 됐죠.
“서울국수보다 맛있어” 남북 화해의 도구로
평양냉면이 남북 회담의 필수 코스가 된 건 2000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인데요.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의 대표 전통 음식점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먹었어요. 1960년대 8월 문을 연 옥류관은 평양 대동강 기슭에 위치한 2층짜리 한옥 건물로 600석 규모의 연회장을 보유하고 있죠.
김 전 대통령은 냉면을 먹은 다음날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잠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았나”라고 묻자 “평소 꼭 가봤으면 했던 옥류관에서 냉면도 먹었다”고 화답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옥류관은 명실공히 북한의 평양냉면 대표 맛집으로 유명세를 탔어요.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찾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옥류관을 찾았는데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평양국수랑 서울국수가 뭐가 다르냐”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은 “평양국수가 더 맛이 좋다”고 했어요. 역대 대통령들은 북한의 자랑 평양냉면을 치켜세우면서 자연스럽게 화해와 협력의 모드를 조성한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문 대통령도 2018년 4ㆍ27 남북 정상회담 메뉴로 평양냉면을 특별히 제안했어요. 맛도 맛이지만, 남북 평화라는 상징성을 고려한 것이었죠. 북한은 옥류관에서 사용하는 제면기를 뜯어내 통일각에 설치하고, 옥류관 수석요리사를 파견하며 정성을 들였어요. 물론 문 대통령도 옥류관 냉면 맛을 극찬했죠. 당시 영국 가디언은 “평화의 상징이 비둘기에서 평양냉면으로 바뀌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먹었던 냉면이 2년 뒤 탈이 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사실 돌아보면 조짐은 있었습니다. 2018년 9월 평양 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따라간 재계 총수들에게 현 북한 외무상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쏘아댄 일이 알려진 것이죠.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성과를 내놓으라는 압박으로 해석됐습니다. 거기에 옥류관 주방장까지 ‘말폭탄’을 쏟아내면서 평양냉면이 재차 구설에 오르게 된 거죠.
야당에서는 “평화를 내세운 냉면도 공짜는 아니었다”며 우리가 냉면값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요. 과연 평양냉면은 남북 평화의 상징으로서 끝까지 제 역할을 잘해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대로 정치적 분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까요.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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