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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김현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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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순금, 세계의 진상(眞相), 정신의 곡예…’ 펼치는 페이지마다 문학 청년들을 설레게 하는, 훔쳐 쓰고 싶은 말들의 성찬이 펼쳐졌다. 글들은 텍스트보다 해석에, 작가보다 비평자의 이름에 눈길이 가게 했다. 27일은 문학의 자율성을 기치로 내건 문학과지성사의 창립 멤버인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고 김현(1942~1990)의 30주기다.
□ 창작자들이 은연중 문학평론을 폄하하던 1970, 80년대 김현의 문학평론 영토는 비옥했다. 그는 활발한 현장비평과 엄청난 생산력(비평집 9권, 프랑스문학 연구서 9권, 산문집 4권)으로 문학평론의 장르적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무엇보다 아카데미 밖으로 나오지 못하던 문학평론과 대중을 잇는 가교역을 했다는 점에서 그의 위치는 돌올하다. 한글 세대의 개성이 물씬 풍기는 ‘김현체’는 팬덤까지 형성했다. 유고집 ‘행복한 책 읽기’는 초판(1992년) 발행 후 지금까지 2만7,000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다. 문학평론집이 대개 800~1,000부를 찍어 문단ㆍ학계에서 유통되는 점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판매고다.
□김현 30주기를 맞아 계간 ‘문학과 사회’ 여름호가 추모 특집을 마련하고, 한국불어불문학회와 연세대가 8월 중 '김현의 프랑스문학 연구와 한국문학 비평’을 주제로 학술대회도 개최한다. 김현문학관(목포문학관 2층)을 운영하는 목포시도 10월 기념행사를 준비 중이다. 그는 유고집에서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 정신적으로 죽는다” 고 썼다. 그는 사라졌지만 그를 그리워 하는 이들이 있어 그는 죽지 않았다.
□”문학은 써 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 먹고 있다.”(‘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ㆍ1975) 김현의 문학관을 함축하는 문학적 경구다. 문학은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정치 권력이나 경제적 부의 획득 수단으로서는 별 쓸모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소용이 있다는 역설적 통찰이다. 이는 한 탁월한 문학평론가의 존재론적 고백이 아니라 부박해지기 쉬운 삶에 대한 성찰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나의 ‘쓰임’을 보여 주기 위해 강박적으로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기능과 효용과 가성비에 대한 열광이 시대적 조류가 된 지금 다시 김현의 글을 들춰보는 이유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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